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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지는 육체

ns
2023. 03. 08





살면서 귀신을 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한 적 없다. 소원은 더더욱. 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서로를 인식한 채로 같이 살게 되리라고는 이 지구상 누구도 바란 적 없을 것이라고 함부로 단언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저 유령과 함께다. 

저 옆에 얌전히 서 있는 귀신이 주인공이다.

처음 이사왔을 때 집주인은 다른 곳에 비해 싼 가격인 집값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고 매물이란 말은 없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생각하며 짐을 옮기고 가구를 들이는 동안 아무 일 없었다.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은 종종 꿈에 등장했다. 나는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라 그걸 계속 이상하게 여겼지만 잠자리가 바뀌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했다. 뭔가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괜찮다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나자 속옷이 축축했다. 야한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이 나이 먹고 몽정이라니. 우스워서 폐에 자꾸 바람이 찼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매번 찌뿌둥하게 일어나게 되니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막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을 무렵부터 귀신이 눈에 보였다. 

처음에는 요즘 자주 있다는 주거침입 범죄자인가 하고 몰래 식칼을 꺼내 들고 와 누구냐고 소리질렀지만 귀신은 대답이 없었다. 마치 자신이 보이냐는 듯 반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웃고 마는 것이었다. 얌전히 식칼을 있던 곳에 돌려놓고 귀신 앞에 와 서자 그 귀신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끔뻑, 했다. 말도 한마디 없이.

개꿈인가 싶어 그냥 다시 일찍 잠들었더니 누군가 영혼을 붙잡고 흔들어 깨우는 느낌에 고통스레 눈을 떠보니 아까 전 그 귀신이 내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기겁하고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으나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눈뜬 나를 쳐다보던 귀신은 아까 낮처럼 또 갸우뚱한 얼굴이더니 이내 한참 웃음을 머금고 하반신을 가리켰다.

“이거 빼주게.”

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멍청하게 누워 있으니 귀신은 잠깐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요 며칠 밤사이의 일을 알아챘다. 속옷이 젖은 이유는 몽정도 아니고 이 귀신 새끼 때문이었다. 나는 겨우 입만 뻐끔거리며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뭐, 뭐해?”

“보면 모르냐? 너 여자 친구도 없어?”

“있는데 그거랑 지금 이거랑 무슨 상, 무슨 상관인데 이 미친 귀신아!”

귀신아! 하고 소리치자 들은 귀신은 내가 칼이라도 휘두른 듯 상처입은 표정을 했다가 다시 웃었다. 뭐야. 귀신은 귀신이라는 말 듣기 싫어하나. 생각할 힘이 없었다. 몸에 힘을 막 줬는데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결릴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입 말고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으로 힘을 쭉 뺐다. 귀신은 알아서 행동했다. 질량 하나 없는데도 무게가 두배로 느껴졌다. 내 몸 위에 올라타서 눈을 찌푸리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움직였다. 귀신은 울었던가. 나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귀신이랑 잤다.



“진짜 제발 좀...”

“좋다며.”

“내가 언제? 자기 맘대로 내 바지 벗겼잖아!”

“세웠잖아.”

“귀신이면서..”

또 그 표정이다. 내가 주먹이라도 휘두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정. 어이가 없어서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귀신은 나를 바라보더니 침대에 털썩 누웠다.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다. 

“방값 싼 거 너 때문이냐?”

“그럴 수도.”

“여기 살던 다른 놈한테도 그거.. 그런 거 했어?”

“음.”

“아, 했냐고.”

“하고 싶으면.”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는 내쪽을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귀신은 중얼거렸다. 갑자기 흥미가 다 사라진 듯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나는 속으로 부적, 팥, 염주, 십자가, 소금 같은 것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가까운지 제일 효과가 좋은지 생각했다가, 잘 알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 탓에 나도 입을 다물고 있자 귀신은 누웠던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소금, 십자가, 염주, 팥, 부적, 그런 거 전부 소용없어. 전에 살던 사람들이 종류별로 다 해 봤거든.”

“그래도 안 사라졌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귀신은 말했다. 귀신이 말하는 게 다 들렸다.

“응. 안 사라지고 오래오래 여기 있었어.”

“집세 내.”

코앞으로 뻗은 내 손바닥을 기가 차다는 듯 바라본 귀신은 손을 쳐내려는 듯 자기 손을 휘둘렀다가 주먹을 쥐고 내렸다. 닿을까 그러는 건지 닿지 않을까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귀신은 내 속을 알아도 나는 귀신 속을 알 수 없다.

“인마. 내가 너보다 여기 먼저 살았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정신을 차리니 또 속옷이 축축했다. 찬물로 속옷을 빨면서 이건 몽정인지 사정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수전을 쓰다듬듯 물을 끄고 나자 손이 새빨갰다. 손끝이 저렸다.


그 뒤로 귀신은 종종 집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말을 걸기도 했고 한참을 쳐다보기만 하기도 했다. 나는 유령을 무시하려고 했으나 눈에 보이는 탓에 자꾸만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마주치면 유령은 웃었다. 웃는 유령이란 게 무서워야 했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웃는 유령의 얼굴에 대고 베, 혀를 내밀었다. 

하고 싶으면, 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횟수가 줄긴 해도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밤에 날 멋대로 깨워 바지를 벗겼다. 유령이 날 눈 뜨게 해 섹스하는 날은 이상할 정도로 유령은 사람 같다. 무겁다. 만질 수 있었다. 온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귀신은 울었던가. 내 몸까지 귀신의 부피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마치 하나처럼.

그러나 그 탓에 나는.

눈밑이 푹 꺼졌다.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었다. 눈을 떠도 저 얼굴이 있고 눈을 감아도 저 얼굴이 있다. 말없이 가만히 있는 얼굴이 위태로웠다.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구석에 무릎을 모은 채 쪼그려 앉아 바닥 어딘가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눈빛이 퍽 간당간당해서. 시선이 길을 잃을 듯해서. 이미 여기 없는 사람인데도 다시 사라질 것 같아서. 발로 차도 찰 수 없지만 어쩐지 무게가 느껴져서. 그 질량을 손에 쥐어 보고 싶어서.

방구석에 붙박인 탓에 유령은 내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홀로 있어야 했다. 이미 한참을 혼자였는데도 유령은 외로워했다. 줄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면 유령은 밉지만 아주 싫지 않게 골초, 너 그러다 빨리 죽어, 하고 투덜거렸다. 너를 만나고 양이 늘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너 요즘 정신이 어디 팔린 것 같아.”

“아. 아, 어. 미안. 미안해.”

“아니라고는 안 하네. 이제 그만 만나자.”

이상한 건 내 쪽. 여자 친구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떠나가는 뒷모습을 아주 멍청하게 쳐다봤다. 뛰쳐나가 붙잡을 수 없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엔 분명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세웠는데 이젠 이 빌어먹을 유령의 만져지지 않는 손길이 아니면 서지 않았다. 비참했다.

차이고 한참 뒤에 집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울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 헤어졌다.”

“누구랑?”

“여자 친구. 너 때문에 차였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그 말을 읊조리듯 토해냈다.

그날 하루종일 유령은 벽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사이인 거다. 서로에게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사이. 곁에 있으면 있을수록 손해밖에 보지 않는 사이.

다음날엔 부동산에 갔다. 적당한 집이 있어 당장 가려다 지금 집 주인이 보증금이 조금 부족해 바로는 어렵다고 했다. 준비되는대로 연락을 달라고 한 뒤 집에 돌아오자 진이 쪽 빠졌다.

어느새 유령은 벽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신발을 벗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게?”

“어. 너 없는 데로 확 가버리게.”

“왜?”

왜? 하고 묻는 유령의 얼굴은 어린애처럼 아주 천진했다. 그 얼굴에 대고 몇 살에 죽었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기억 안 나? 너 만나고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냐. 나는 살아야 할 거 아냐.”

여기서 왜 떠나지 못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애인이라도 죽었는지. 아님 애인에게 죽었는지. 어째서 이런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도 그러나 없지도 않은 형태로 존재하는지.

그때 귀신은 어떤 표정이었더라.

“갈 거면 그냥 가지 이미 죽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까지 말할 건 또 뭐야. 살고 싶으면 살아! 그래. 가! 아예 가버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난 듯 서운한 듯 벌컥 소리를 지르고 옷장 뒤로 사라진 유령을 한참 바라보다 욕실로 들어갔는데 눈을 떠 보니 바싹 마른 타일 위에 누워 있었다. 자세 탓에 어깨가 결렸고 추워서 목이 잠겼다.

자, 봐라. 니가 과연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거짓말로라도 그렇다고는 하지 못할걸. 인간이라면.

인간이 아니었지.

눈에 보이는 실체 없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두고 싸우려니 여간 막막한 게 아니었다. 옷장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니 먼저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결국엔 비가 미친 듯이 쏟아붓는 어느 날 제 풀에 못 이겨 침대 위로 기어올라와 있는 유령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끝났다. 유령은 그날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 새벽 내내 나를 쳐다보았다. 가위에 눌렸는데 유령이 나를 억지로 깨웠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겨우 일어난 내 앞에 멀뚱히 정좌하고 앉아서는 기가 허하니까 밥이나 잘 먹고 다녀라, 몸보신이라도 해라, 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다 지 때문인 줄도 모르고.

이 집에 지금 나랑 얼굴 마주 대고 얘기하는 자기도 육신 없는 영혼이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입맛이 없었다.

분명 여기 매여 있는 존재인데. 질량도 부피도 무게도 촉감도 온기도 습기도 없는 무기질인데. 그런데도 한껏 인간 같고 제대로 알 수 있다. 말을 나누고 서로의 숨을 삼켰다. 잔뜩 느껴지고 충분히 감각된다. 그래서 자꾸만 나를 두고 떠나버릴 것 같다. 나는 여기 있는데 혼자서 없어져버릴 것 같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데. 외로웠다. 둘이 있는데도.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빨간불로 바뀐 줄도 모르고 신발을 질질 끌며 횡단보도를 건너다 갑자기 멈춰선 차 탓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노성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정신이 빠져 서둘러 도망쳤다. 한참을 걷고 나니 지금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오른손목이 시큰거렸다.

“인대가 늘어났으니 조심하세요. 물리치료 받고 가시고요.”

병원에서 단단히 매준 보호대 차림으로 물리치료는 생각도 없이 돌아왔다. 열쇠를 잃어버린 줄만 알고 주머니를 한참 뒤지다가 다시 병원까지 되돌아갔다 왔다. 열쇠는 안주머니에 있었다. 문을 겨우 열고 들어서자 저 유령은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눈동자 없는 눈동자가 내 오른손으로 향했다.

“다쳤어?”

“응.”

“어쩌다가?”

“넘어져서.”

“조심 좀 하지.”

“어.”

귀신이 보기에도 한참이나 얼이 빠진 것 같은지 그 뒤로 유령은 말이 없었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유령이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한이 들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온기 없는 보호대에 감싸인 손목이 자꾸만 시큰거렸다. 귀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쪼그려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가 잠에 들 때까지도.

이제 떠나야겠다.


유령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자 집 어디에도 유령은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벽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옷장이나 문 뒤, 싱크대 아래, 티비 뒤에도 없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던 유령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귀신이 없어졌는데도 제정신으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오히려 더 이상해졌다고 한다. 밥을 먹다 잠들기도 하고 세 시간이나 욕조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누군가의 전화는 꼭 두 번 이상 울려야지만 받게 됐다. 

유령의 이름도 몰랐다. 유령에게도 이름이 있나. 유령이 사람이었을 시절의 이름. 귀신은 나를 매번 다르게 불렀다. 니노미야. 니노. 카즈나리군. 카-즈. 니노미. 니노. 나는 그때마다 야, 또는 너, 귀신, 유령 따위로밖에 부르지 않았다. 이제 와서 유령의 이름을 알고 싶다.

이제 와서.

있으나 없으나 잠도 잘 못 자고 입맛도 없고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사는 게 별로면

그러면 그냥 같이 있어도 되잖아. 한 번 정도는 모른 척해줘도 되잖아, 그런 말은.

왜 없어졌어?

왜 사라졌어?

왜 떠나갔어?

나 너 없인 살 수 없어.

귀신이 이 방구석에 붙박여 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눈물이라는 뼈⟩,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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