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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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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18.







우리집 기생충을 소개한다.

이름

니노미야 카즈나리.

나이

나보다 한개 반 아래.

직업

없음. 학교 휴학. 개백수. 일자리 없음. 구직활동 중단.

하는 일

집에서 티비 켜고 예능 평론하기. 쇼쿠레포에 특히 박하다. (하루 두끼 먹으면 많이 먹는 사람이면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가서 사먹을 것도 아닌데)

사람이 얼마나 안 자고 게임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는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꼴에 플스 터질까 5시간 25분마다 손을 대 본다)

파라싸이트 반지하 가족 송강호도 피자 박스를 접는데 이자식은 전단지조차도 쳐다보지 않는다. 

입는 옷

맨날 똑같다. 내가 보다못해 옷이나 좀 사라고 하면

그때마다 니노미야는 말한다.

돈없으.

(돈없다는 놈이 플스는 어디서 갖고 온 거냐? 훔친 거면 집 나가라 나 공범 되니까) (그리고 돈 없다면서 게임 씨디는 맨날 한두개씩 늘어난다. 그거 사서 돈이 없는 거냐고 하면 소파에서 갑자기 죽은 척 한다. 난 기가 차서 헛웃음만 뱉는다. 이제 따질 수 없다)

서류상으로 우리 집에 사는 사람은 나 혼자뿐. 집세 내는 것도 관리비 내는 것도 내 통장. 그런데 떨어지는 머리카락 종류는 반드시 두 개. 장 볼 때 계산해야 하는 입도 두 개. 뭐란 말인가? 이 불청객은.

공과금을 다 털어 내고 난 날 나는 소리쳤다. 니노미야가 있어서 특별히 방해된다거나 살림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만 고려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동거인에 대해서 매일 생각해야 하는 게 싫었다.

“니 집 가라고!”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점프를 이불 삼아 덮은 채 햇빛을 맞고 있던 니노미야는 반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느에?”

그 한 음절도 대답이 될 수 있다면.

“가라고 니네 집으로! 너 집!”

솔직히 말하자면 왜 그렇게 열이 받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그날 분명 어디선가 먼저 심기가 거슬린 곳이 있을 테지만.

“집 읍서요..”

“본가 가면 되잖아!”

“홋카이도인데 어떻게 가요?”

“뭐?”

“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니노미야는 본가가 홋카이도라서 갈 수 없다,라는 말을, 집앞 슈퍼에 달걀이 다 떨어져서 못 샀다,라는 식으로 했다. 

나는 다음날 현관에서 문고리를 노려보며 열쇠를 허공에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형 열쇠 바꿔도 소용없어. 나 열쇠 없이 문 따는 법 배웠거든”

열쇠고리를 만지작대는 내 앞에서 니노미야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열쇠를 한 짝 더 만들어 직접 손수 하사할 일따위 없다는 걸 잘 안다.

“상관없어. 다 뜯고 돈천만원 써서 도어락 쓸란다.”

“어 그럼 나 베이비파우더 날려서 번호 네 자리 열릴 때까지 육십일 번 누른다.”

그 소리를 들으니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니노미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저녀석이라면 진짜로 한다. 수상하게 여긴 옆집 주민들에게 신고당해도 경찰을 마주보곤 우리집인데 도어락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비밀번호를 까먹어가지고 해 보고 있다는 개뻥을 줄줄 뽑아낼 거다. 저녀석이라면 육십일 번은 물론이고 백 번도 시도해 볼 테다.

“장갑 끼고 누를 거야 미친새끼야 열자마자 물티슈로 박박 닦고”

“그리고 여덟 자리로 할 거야!”

이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방금 전까지 눈을 반만 뜨고 있던 놈이 갑자기 방긋 웃어버리는 걸 목격했기 때문에.

“고마워 여덟 자리라고 알려줘서.”

절대로 일곱 자리 해야겠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신발을 마저 신었다.


그렇다.. 이새낀 집도 밸도 뭣도 아무것도 없이 내 집에 얹혀 사는 거다. 아니 집이 없어서 내 집에 무전취식 중이시다. 뻔뻔하기가 아주 얼굴이 윗층 아저씨 벤츠 사이드미러보다도 빛날 거다.

차마 니노미야를 길바닥에 내다 버리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첫번째.

난 아침잠이 많은데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 빵보다 밥인 건 언제 알았는지 모르겠다. 수저는 한짝. 저기 방엔 아침상을 차려놓고 다시 잠든 등짝이.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는데 어딘가 괘씸하다. 설거지는 내가 밖에 나가도 집에 있는 사람 몫이다. 1교시가 없는 날은 둘 다 한참을 퍼져 있다 같이 먹게 되지만.

그러나 난 등교하고 니노미야는 집에 있다. 왜냐면 개백수니깐. 알바따위도 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돈을 벌라고 했더니 돈이 필요 없으니까 딱히 일하지 않아도 된단다. 돈이 왜 필요 없냐면서 월세 반띵하랬더니 전세면서 왜 월세인 척이냔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생활비 반띵하란 말엔 모른 척 눈을 뒤집었다. 내가 검지중지 쳐들고 코앞으로 걸어가자 그제야 도가니에서 딱소리 내며 내 앞에 아주 가벼운 무릎을 전시했다. 내가 밥해드리잖아영. 아아앙. 징그럽다 치워라.

내가 학교에서 강의 듣고 팀플 하고 강의 듣고 술먹고 막차 바로 전 지하철에 올라타 집으로 오는 동안 이 히키코모리는 집 밖으로 단 한발자국 나가지 않는다. 왜냐면 열쇠가 없으니깐.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사실상 무단주거침입현행범이다. 근데 신고해도 경찰들은 집 쓱 둘러보곤 두분이 알아서 얘기하시라 한 뒤 사건 종결해버릴 거다. 뻔하다. 칫솔이 두 개고 베개가 두 개고 슬리퍼가 두 개고 빤쓰가 두 종류니까. 

두번째.

왜 사는지 모르겠다 저거.

하루 종일 하는 게 나 밥 해주기 자기 밥 먹기 가끔 내가 사둔 술 훔쳐먹기 티비보기 게임하기 처자기. 그러니까 길바닥에 내놔버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집 밖으로 내몰아버리면 뭐 하고 살지 모르겠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지만 걱정은 된다. 단순히 목숨은 보전하고 살지부터 결국엔 본가로 돌아갈지 돌아가지 않을지까지.

세번째.

솔직히 이유 없다.

그냥 매번 좀 나가라고 중얼거려도 막상 얼굴을 마주보면 내쫓을 수가 없다. 난 분명 니노미야가 내게 최면이라도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거는 없지만. 

무슨 미운일곱살 같다. 마치 열여섯쯤에 멈춘 듯한 

그 안일한 사고방식..

자란 듯 자라지 않은 유치한 뻗대기.

아니 취소한다.




이런 식이다.

“바닥에서 자라고.”

“추워잉..”

“난방 틀었잖아!”

“추워이잉.....”

“난 뭐 따뜻하냐?”

“어. 뜨거워.”

“뜨거우면 떨어져!”

“뜨거운 게 추운 것보다 나아.”

“그럼 히터 끄고 와. 지금 안 끄면 니가 난방비 다 내는 거다.”

“돈없으으읏~”

무슨 원숭이마냥 펄쩍펄쩍 뛰어서 집안을 사하라처럼 만들어버릴 듯한 히터를 후딱 내리고 돌아온 니노미야는 역시 내 옆에 또 딱 달라붙었다. 피곤해서 씨름할 기운도 없어 먼저 잠들었더니 날 껴안고 있는 니노미야도 내가 거의 다 뺏어 덮은 이불이 아직 있는데도 갑자기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워 눈이 떠졌다. 혹시나 해서 덜덜 떨며 거실로 나와 히터를 다시 확인해보니 온도를 18도로 해놓으신 거다. 지혼자 7월인가? 진짜 어렸을 적 부모님이 안아올리다가 바닥에 한 번 떨어트린 건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된다.



“으엉엉 형한테 미미짱 냄새가 나”

어느날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내가 사둔 맥주 세캔을 혼자 다 먹고 울면서 들러붙더니 이렇게 말했다.

“누군데 미미짱이”

“전여친..”

맨날 내 집에 처박혀 있으면서 여친은 언제..

음. 내 집에 오기 전이겠지. 그럼. 얘도 이전의 삶이 있지.

“미미짱이랑 똑같은 냄새 나는 거 쓰지마 으헝헉”

“아 콧물 드러 제발.”

가장 아끼는 잠옷 한복판에 눈물, 콧물, 침의 오만 타액이 파티를 벌인다. 축축하다 못해 질척이고 있다. 세탁비 물어내라고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니노미야는 또 그렇게 말할 것이다. 돈없으.

“이제 바꿔 딴걸로어엉”

“니가 돈 줄 거야?”

“돈없어..”

틀린 법이 없다. 이 예측은. 아 이런 예상 가능한 화법. 알기 쉬운 사고방식. 단순한 말.

“그리구 가슴운동 이제 하지마..”

그러나 대갈통을 반 갈라 안을 확인할 순 없었다. 사고방식. 화법. 말. 그것까진 참 알기 좋은데 생각이란 건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기상예보는 매일 틀려도 결과를 내놓는데 난 아무것도 내놓을 수가 없다. 니노미야란 게 그렇다.

“그건 또 왜. 나 돈내고 운동하는데..”

“미미짱이 딱 이정도.. 가슴... 이거보단 컸나?”

여태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더니 손을 턱하니 올린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그 미미짱인지 마마짱인지의 가슴을 생각하는 듯 손을 움직인다.

“이게 돌았나......”

“안기면 딱 이정도였느으으으응.”

나는 손을 밀어낼지 얼굴을 밀어낼지 몰라서 양손으로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떠올렸다.

유아퇴행의 단계가 아니다.

세포 수준으로 모자란 거다 이건.

그러니까 단세포.

“너 나가라 그냥.”

“가슴말야 난 작은 게 좋걸랑.”

방금 전까지 콧물 내 가슴에 닦던 새끼가 이젠 신나서 아예 몸 위에 올라탔다. 무겁진 않다. 아니 실은 존나 무겁다. 무거워서 침대 밑으로 꺼져버릴 것 같다. 1층까지 떨어질 것 같다. 그럴 거면 아예 아주 지구 내핵까지 빠져버렸음 좋겠다. 사회에 도움 안 되는 얘랑 같이. 아니, 그럼 내가 손해인데. 그정도로 빠지면 둘을 구분하기 어려우려나. 다 녹아버려서.

“뒤진다 이 아메바야.”

넌 딱 그정도.

“형도 아메바였음. 언젠간..”

“닌 당장 지금 아메바 같다고. 야. 야 세우지 마라. 세우지 말라 했다. 슬픈 노래 불러 아 빨리!”

여기서 슬픈 노래라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정해 줄 걸 그랬나. 뭐 렛잇비 이런 걸로.

“가슴 이거 더 커지면 안 꼴리니깐.. 암튼 형도 그 단세포. 미토콘드리아 그런 걸로 뭐 구성돼 있어. 나랑 다를 거 없어. 넘 밀어내지 마.”

뻑.

침대 머리맡에 있던 휴지곽이 날아가 얼굴을 때렸다. 니노미야가 뒤로 넘어갔다. 흐으으잉..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본다. 나는 모른 척 시선을 피하며 소리친다.

“없다고 콘돔이! 니가 사올 거 아니잖아.”

맞은 곳 반대쪽을 움켜쥐고 있던 니노미야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옆에 서서 다리를 비비 꼰다. 얼굴에 눈물자국이 그대로다. 정말이지 나 열받게 하는 덴 도가 텄다.

“혼자 빼고 와. 난 안 나가.”

“히이잉..”

“말했다 안 간다고”

“흐으으엉..... 나쁜 사람..”

그러면서 흘러내린 바지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문은 또 활짝 열어두셨다. 아니 평소엔 그렇게 문 잘 닫고 쓰면서 왜 오늘은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게 다 술을 몰래 훔쳐 먹어서 그런 거 아냐. 진짜 가끔은 아니 사실은 졸라 자주 지능이 의심된다. 정말 미취학아동수준인지 아님 반대로 너무 고지능이라 그걸 다 나 엿먹이는 데 쓰는 건지..

베개로 귀를 막아도 화장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안방까지 제때 도달했다. 집이 좁아서 그래. 집이 좁으니까 화장실이 가깝잖아. 화장실이 가까워서 그런 거다. 문을 안 닫아서가 아니고.. 그랬으면 좋겠다.

한참 뒤에 아주 상쾌하게 해치우셨는지 방금 전까지 울던 건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젠 아예 콧노래를 부르며 침대로 기어들어왔다. 그 와중에 손은 열심히 닦고 물기는 털지도 않아서 잔뜩 축축한 걸 또 내 잠옷에 비벼 닦았다. 침대가 한 개뿐인 거랑 자기가 잘 때 꼭 나를 껴안고 자야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매번 물었지만 니노미야는 또 엉성하게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솔직히 자기도 모를 거다 이유는. 자는 척하고 있어서 냅다 후려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아침에 니노미야가 차려준 밥을 다 먹고 양치하다가 그제야 거울을 보니 잠옷에 침자국 콧물자국이 그대로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면 거실에 대자로 누워있는 녀석이 있다.

“야.”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잠옷 단추를 풀러 고개만 빼끔 쳐든 얼굴에 윗도리를 집어던진다. 아싸. 얼굴에 명중이다.

“손빨래 해놔. 니가 드럽게 묻힌 콧물.”

팔꿈치를 땅에 댄 자세로 어정쩡하게 상체를 지탱한 니노미야는 잠옷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나를 뚫어져라 보다가 웃으며 외친다. 마치 자기가 내기에서 이긴 것처럼. 슬롯머신 777이라도 뜬 것처럼. 스페이드a를 뒤집는 것처럼.

“가슴운동 이제 안 하는 거다?”

이런 썅..

입이 떡 벌어진다. 어안이 벙벙해서인지 욕이 나와서인지. 치약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내가 벗어던진 잠옷은 니노미야의 손에 들려 있고, 저 잠옷은 내가 직접 벗어서 던진 상의고, 그래서 나는 지금 상반신이 나체다..

어제 니노미야의 손길이 생각난다. 미미짱인지 라라짱인지의 가슴을 떠올리며 만지던 손. 아 토쏠려. 양치하다가 위를 뒤집어버릴 뻔했다.


하루종일 니노미야를 생각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이다. 전날 깔아둔 틴더에 연락이 왔고 오후가 비는 날 만났고 같이 술 마셨다. 니노미야가 있으니 집으로 누구를 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니노미야라는 걸 아예 잊은 채로 살았으니 할 수가 없었다. 만난 남자는 키가 나보다는 컸고 아마도 잘생겼고 몸이 좋고.. 이젠 잘 생각 안 나지만. 

키스하며 떠밀리듯 열쇠를 꽂아넣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우리집 개백수 배 긁고 있는 모습. 씨발 까먹었다. 둘 중 누구의 발도 들이기 전에 문을 확 닫았다. 키스하던 상대는 얼굴을 떼더니 의아하게 바라봤다. 응, 미안. 나 사실 발기부전이야. 내가 박는데 무슨 상관? 있어 그런 게. 안 서는 거 확실해? 여기까지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남자의 버릇 나쁜 무릎이 바지춤을 건드렸다. 핫.. 하... 나 사실 조루야. 엄청 빨리 싸. 괜찮아. 뭐 상관 있나? 이, 있어. 뭐가 있는데? 애. 애가 있어. 나 애 키워서. 우리 집에선 안 되겠어. 택시비 줄게. 지갑을 열어서 있는 현금을 다 털어 줬다. 기분이 나빴는지 어땠는지 보고 있을 정신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집에 들어갔다.

문 왜 열었다 닫았앙? 니때매. 이 웬수야. 남자 누군데? 시비 붙어서 지갑 털어줬어. 다음날 틴더를 지웠다. 남자에겐 연락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형! 집에 내가 있는데 웬 남자를 만나? 원나잇은 나랑 해도 되자나. 넌 여기서 올나잇인데 어떻게 원나잇을 해. 아 그렇군.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데 그거. 근데 형 진짜 발기부전으에에에. 왜 먹던 걸 뱉어어어억!!



스트레스는 사실 쌓이는 게 문제다. 받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지. 그러니까 적당히 받고 적당히 해소하면 오히려 삶에 도움도 된다잖아? 그러니까 니노미야라는 게 집에 계속 있는다는 건 문제다. 해소되지 않으니까. 야 이 히키코모리야 집 밖에 좀 나가. 아 싫어어어. 햇빛 보면 죽냐? 어? 응 죽어. 나 뱀파이어야. 됐다 말을 말자. 이런 일들이 누적되어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못 나가는데! 왜 집에 안 가는데! 비행기 편도로 끊어줄테니까 가라고. 걍 아주 가버리라고! 이제 나 좀 그만 귀찮게 하고. 너도 니 인생 있잖아. 니 인생 살아. 어?”

그러니까 종종 말했듯 니노미야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 나는 이유 없이 욱하는 날이 늘었고

“집 가기 싫어..”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열내는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니노미야가 미워져서 열은 식지 않았을 뿐이다. 정신을 차리니 니노미야 위에 올라탄 채로 화를 내고 있었다. 니노미야의 양 팔뚝을 붙잡은 채로 마구 흔들었다. 흔드는 대로 움직이던 뒤통수가 바닥에 몇번이고 부딪힌 것 같다.

“왜 싫은데?”

“집에 아무도 없어.. 나밖에 없어. 가면 추워. 우리 집 빈집이야. 형 알지? 나 추운 거 싫어하잖아.”

“아무도 없어? 부모님은? 동생은?”

“아무도 없어. 그때 같이 다 죽었어.....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무도 없어..”

... 니노미야의 어깨를 붙잡고 부서져라 흔들던 손이 멈춘다. 이제 니노미야는 엉엉 울고 있다. 얼굴을 타고 옆으로 옆으로 눈물이 흐른다. 흘러서 자국을 남긴다. 바닥에 눈물이 고여간다. 그정도로 울고 있다. 그만큼 집에 가기 싫어 하고 있다. 난 할 말이 없다. 갑자기 입이 십키로 추라도 달린 듯 무거워진다. 니노미야는 울다가 기침한다. 올라타 누르고 있던 내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선다. 어지러워서 어디가 천장이고 어디가 바닥인지 모르겠다.

“일어나지 마.. 형도 여기 누워. 여기 형 집이잖아. 형이 있잖아. 어디 가지 않을 거지? 아무리 늦어도 여기로 올 거니까. 그럼 나, 난, 여기 있고 싶은데에.. 형도 있어, 그냥, 여기, 응?”

니노미야가 내 바지춤을 꽉 붙들고 확 잡아당긴다. 겨우 벽에 기대 서 있던 나는 그 탓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나도 어딘가 부딪혔나? 모르겠다. 여전히 어지럽다. 아까부터 입을 닫고 있는 나와는 달리 니노미야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형은 모르지. 나 그 집에 혼자 일주일이나 있었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 너 빼고 다 죽었단 말을 해 주러 온 사람도 없었어.. 그 집에 계속 있으면 나도 죽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도망친 거야 여기로. 기숙사에 있었는데 기숙사는. 기숙사는 집 같지 않잖아. 그정도는 알지? ... 혼자 있으면 자꾸 그래.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집에 살게 되잖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은데 기다릴 수가 없잖아......”

열여섯쯤에 멈춘 듯한 그

안일한 사고방식...

자란 듯 자라지 않은 유치한......




솔직히 말하자면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역시 니노미야가 넘어트린 탓에 나도 머리를 부딪힌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니노미야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있기만 했다. 게임도 안 하고 티비도 안 켜고 밥을 해주지도 먹지도 않고 몸을 새우처럼 말아넣은 채 누워있기만 했다. 너 그럼 플스 당근해버린다 고 하자마자 번개같이 일어나 코드를 다 뽑은 뒤 듀얼쇼크까지 품에 안고 다시 거실 바닥에 누웠다. 내가 저걸 진짜 갖다 팔아버릴까 걱정인 듯했다. 역시 단세포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열쇠고리를 만지작대고 니노미야는 거실 구석에 플레이스테이션을 껴안고 누워 있다. 이 대치 상황은 일주일째 이어졌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패자만 둘.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둘. 

열쇠는 하나뿐. 

열쇠고리에 매달려 있던 집열쇠를 빼서 니노미야에게 집어던진다. 열쇠가 니노미야의 뒤통수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앗. 머리는 피해서 던질 걸 그랬나. 니노미야는 손을 뻗어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다시 플레이스테이션을 끌어안았다. 추위 탄다면서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이불 하나 담요 한 개 덮지 않았다. 역시 머리를 피했어야 된다.

“그거 주워. 니 뒤통수 뒤에.”

“에.. 앗. 차거.”

“차갑긴. 열쇠 하나밖에 없어. 잃어버리면 니가 3만엔 내.”

손만 뒤로 젖혀 움직이던 니노미야는 내가 오래 쥐고 있어서 뜨끈해진 열쇠를 찾아 쥐었다. 고개를 내쪽으로 돌려 나에게 손을 뻗어 열쇠를 보여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준 게 맞다고. 너한테 준 건 열쇠라고. 

“안 잃어버릴게.”

“그래. 부탁이야.”

“돈 없으니깐.”

눈이 마주치자 니노미야는 웃었다. 나도 알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은 종료다. 니노미야도 따라 일어나더니 제일 먼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플레이스테이션 선을 다시 꽂았다. 하. 나는 손에 잡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던졌다. 이번엔 머리가 아니고 허리다. 

“열쇠고리 있어?”

“그런 거 없는데.”

“사러 가자. 옷 입어.”

“아, 엇. 지금?”

“응. 지금. 싫으면 내놔.”

내가 손바닥을 내민 채 다가가자 니노미야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열쇠고리와 열쇠를 한참 만진 손을 니노미야의 얼굴에 문질렀다.. 

“쇠 냄새!”

“너도 날걸? 쇠 냄새.”

“밖에 추워?”

“적당히.”

니노미야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어떤 열쇠고리가 좋을지 생각했다. 생각나는 열쇠고리가 제법 돼서 하나로 고를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 있었다. 니노미야는 신발을 신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다. 다 신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자 니노미야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문을 열자 햇빛이 들어왔다. 니노미야는 움찔거렸다. 나는 복도에 서서 도어스토퍼를 내렸다. 니노미야가 바깥으로 나올 때까지 서 있기로 했다. 그 문턱 하나만 넘으면 된다. 내가 열쇠도 줬잖아. 하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본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이 얼굴 때문에 문턱 밖으로 내쫓지 못했다. 오직 말로만 나가라고 했던 것뿐이다. 나와. 그렇게 말했다. 등을 떠밀 수 없던 얼굴은 우는 듯 울고 있는 듯 일그러졌다. 나에게로 덤벼든 니노미야는 입을 맞췄다. 인공호흡이 필요한 사람처럼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당겼다. 얼굴에 뜨뜻한 열쇠가 닿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내가 발로 도어스토퍼를 넘겨 문을 닫자 니노미야가 나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열쇠가 손에서 떨어졌다. 복도 바깥으로, 저 밑으로, 화단으로.

나는 웃었다.

“가서 찾아! 잃어버리면 3만엔이다?”

거의 울먹이며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니노미야는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열쇠가 떨어진 복도에 그대로 서 있는 나는 밑에서 니노미야가 나를 부를 때 화단을 내려다보았다. 

“나 진짜 돈 없어어어!”

그쪽 아니고 저쪽인데. 하하하. 니노미야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열심히 뒤졌다. 어렸을 때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제법 뒤졌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해냈다는 얼굴로 내게 열쇠를 들어올려 보였다. 햇빛이 열쇠에 닿아 번졌다. 눈이 부셔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어떤 게 좋아?”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건 열쇠고리고, 내가 나가자고 한 이유도 열쇠고리를 사러 가자고 했기 때문이고, 지금 나가는 길도 열쇠고리를 사러 가는 길인데, 니노미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형이 좋아!”

하하하하. 바보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니노미야가 눌러 도착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생각했다. 그건 알아. 그런 건. 날 좋아한다는 것쯤은 알아. 내가 모르는 건 널 돌려보내지 못했던 이유였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니노미야가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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