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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쥐는 연애를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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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01.




조기축구회라니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영 그런 것도 아니었다. 축구 동아리 같은 거야, 라고 스포츠 타올로 땀을 닦으며 대답해주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동아리면 동아리고 아니면 아닌 거지, 같은 거라는 말은 또 뭔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다시 묻는 건 그만두었다.

축구복 뒷면에는 숫자 5가 크게, 영어로 된 이름이 작게 적혀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내가 껴안으면 나 아직 안 씻었는데, 하며 곤란한 티를 내지만 복부 어딘가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는 나를 밀어내지도 않는다. 이 순간에 나는 아주 평화로워진다. 일테면 엄마의 젖을 빠는 갓난애가 된 것 같다든가. 남에게 폐 끼치는 건 싫어하면서도 일견 불쾌하기 마련인 막 운동을 끝낸 뒤의 땀냄새를 맡는 걸 기꺼이 내버려두는 게 어쩐지 나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듯하여 마음이 빠듯해진다. 숨을 들이쉬면 상쾌하게도 느껴지는 체취와 땀냄새가 폐 속 가득히 들어찬다. 내가 허리춤을 껴안은 손에 힘을 풀면 그제야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고 또 머리를 툭 치거나 헤집듯이 쓰다듬은 뒤에 손을 교차시켜 축구복 상의를 뒤집어 벗고는 곧장 욕실로 들어간다. 나는 뒤집어진 채 빨래통에 걸쳐진 축구복 상의를 반대로 되돌리며 문 너머로 들리는 쏟아지기 시작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금방 얼굴을 멀리 떨어트려야 한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된 건 우연이었다. 보통은 다른 학년끼리는 잘 붙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리가 모자랐는지 어쨌는지 같은 방을 거의 일 년 반을 함께 썼다. 그게 이어져 기숙사에서 짐을 뺄 때 함께 짐을 빼고 자취방을 반반 나눠 쓰게 된 것이었다. 그와 나는 학과도 단과대도 달랐고 자주 쓰는 건물도 잘 겹치지 않았으며 교양 따위도 함께 듣는 일이 거의 없었고 애초에 학년도 달랐으니 같은 기숙사 같은 방을 쓴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그는 축구부였고 나는 장기부였다. 그마저도 나는 강의와 강의 사이 시간이 길게 빌 때 부실에 자러 가는 것뿐이었는데 그는 수업만큼 성실하게 훈련하고 경기에 참가했다. 그거, 상금 있어요? 아니. 그럼, 트로피 있어요? 아니. 그런데 왜 해요? 재미있으니까. 축구 양말을 돌돌 말아 주면서 그렇게 물었었는데 나는 아직도 축구가 재미있다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같이 살래?」

「나 기숙사 퇴소할 거거든. 집도 알아봤는데, 역에서도 가깝고 깨끗하고 괜찮아. 혼자 살기엔 좀 부담스러워서 같이 살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가지구. 너랑 계속 같이 살았잖아.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랑 생활하는 거 맞추느니 그냥 너랑 같이 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반반 해요?」

「응. 반반.」

합리적인 제안이었고 그래서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가 기숙사를 나가면 새로운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런 걸 반복하기도 귀찮았다. 알려준 집의 위치도 생각보다 아주 좋아서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차피 기숙사에 계속 있었으므로 짐도 그닥 많지 않았다. 친구가 차를 빌려준다고 해서 그 친구의 차에 박스들을 가득 채워넣고 이사했다. 박스를 옮기고 짐을 푸르고 거실에 누워 있다가 나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니까 정말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랬다. 그는 나를 어떻게 말하고 다녔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



태도라든가 옷차림 탓에 늘 또래들보다 물씬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냈지만 또 그들 사이에 뒤섞여 웃는 얼굴은 한없이 어려 보이기도 했다. 웃을 때도 웃지 않을 때도 인상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언젠가 스치듯 들었던, 사쿠라이군의 무표정은 왠지 차가워, 라는 말은 그 뒤로 종종 떠올랐다. 고개를 젖히며 웃을 때도, 소리 없이 눈만 살짝 접어 웃을 때도, 나는 좋았다. 역시 웃는 쪽이 좋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나도 웬만해서는 상대의 편의를 봐주는 성격이고 그도 배려가 몸에 배어 있으니 싸울 계기는 거의 없었다. 실은 싸운 적은 없다. 내가 화를 낸 적도 없다. 기억나는 건 내가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갔다가 시비가 붙어서, 아니 그보다 정확하게는 싸움이 나려는 걸 내가 가운데에서 말리다가, 얼굴을 호되게 얻어맞아 경찰서에 앉아, 다른 녀석들은 이미 술이 반쯤 깬 듯한 얼굴로 전부 떠나가고, 홀로 경찰관과 의미 없는 농담만을 주고받고 있을 때, 한참 놀란 얼굴로 뛰어온 그는 얼굴과는 다르게 아주 차분한 말투로 주취자를 인도하겠다고 했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을 때의 일이다.

그 놀란 얼굴은 몇 분 사이에 약간 황당한 듯 열이 받은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너 어쩌려고.... 많이 맞았어?」

나는 고개를 몇 번 내젓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한발짝 다가온 그는 내 턱에 손을 대고 고개를 돌려 부어오른 왼쪽 광대뼈를 바라보았다. 남은 손으로 그것을 살짝 건드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눈을 찌푸렸다.

「아파?」

내가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는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턱을 쥐었던 손은 그대로 내려와 내 오른손을 잡고 그대로 집으로 걸어갔다. 손에 땀이 났다.

한마디 말 없이 나는 끌려가는 모양새로 집에 돌아갔다. 뭔가 걱정을 하려나. 아님 더 화를 내려나. 그런 생각뿐이었는데 그는 냉동고를 열더니 금세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가져왔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부어오른 광대뼈에 가져다댔다.

「왜 싸웠어?」

「아니 난 안 싸웠어요. 말리다가..」

「그럼 그럴 땐 그냥 피해... 응?」

「피해요? 쇼군이라면.」

난 말리지. 나라면. 그런 대답. 내가 맞았다면 자기도 맞을 수 있는데. 나는 맞으면 안 되고 자기는 맞지 않을 보장이라도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불성설이었는지 말끝을 흐리다 먼저 자러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똑같은 상황의 사쿠라이군을 상상해봤다. 집에 있다가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고 그를 데리러 가는 상상을. 얼굴이 쥐어터진 채 가만히 앉아 있을 그를. 그렇게 생각하니 그 앞뒤 맞지 않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참 보기 싫을 거라고. 




*



기숙사를 나오고 그는 얼마 뒤 졸업했지만 나는 일 년 더 통학했다. 내가 졸업할 쯤 그는 취직했다. 참 빠르네, 쇼군은. 졸업식에 가장 늦게 도착한 그에게 내가 그렇게 말했다. 니노, 늦어서 미안하다구. 나는 졸업식에 늦게 온 것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졸업 축하를 받고 사진을 찍고 운동장을 떠나가는 동안 그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제 막 졸업했는데 벌써 그는 저 멀리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얼굴을 보자마자 그 말을 해 버린 것뿐이었는데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그는 눈썹을 잔뜩 휘어가며 나에게 사과했다. 실은 사과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데. 내가 누군가를 기다릴 일도 실은 없는데. 그가 어젯밤 나 늦어도 갈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오늘 졸업한 사람 중 가장 먼저 학사모를 벗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단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나의 졸업을 축하하러 굳이 꽃다발이니 하는 것들을 사서 여기에 올 필요 같은 건 없는데. 그러나 나는 그것을 괜히 특별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괜히 멀리 생각해 착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이 거리에 무게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것저것 신경 쓰는 일이 체질인 듯 살았으니 내가 아니라 다른 후배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축하해주러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사교적이고... 나보다 훨씬.... 나는 늦어도 괜찮다고 했다.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겉치레라고 생각했는지 그 뒤에 좋은 중식당에 데려가주었다. 나는 고량주 석잔을 넘길 때에서야 정말 괜찮다고, 입 밖으로 내어 얘기했다. 그는 택시를 잡을 때에서야 나에게 니가 괜찮게 생각해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우리는 같이 내려 집 앞에서 한참이나 가방이나 옷 주머니들을 뒤지며 현관 열쇠를 찾았다. 내 열쇠는 뒷주머니 지갑 사이에 들어가 있었고 그의 열쇠는 겉옷 안주머니 가장 밑에 들어가 있었다. 둘이서 물을 반씩 나눠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




생일 축하해와 해피버스데이 사이에서 나는 고민했다. 생일 축하해, 라니 조금 무미건조한가 싶고 그렇다고 해피버스데이,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만 같아서 둘 중 어느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꽤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태어난 걸 축하해요, 라고 적었다. 작은 카드에 적당히 가득 찬 듯했다. 글자도 마음도. 선물은 일주일 전에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빈손이기가 머쓱해 얼마 전 봐둔 가게에서 케이크를 사 왔다.

나는 거실에 앉아서 그의 귀가를 기다렸다. 내가 아침에 보낸 문자에는 저녁쯤 돌아올 것이라고 답장이 와 있었고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이라 창문 밖이 금방 어둑어둑해져도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러나 가로등이 켜지고 한참이 지나도 문가에 인기척이 들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케이크가 녹기 전에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카드는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이 오지 않았는데 겨우 눈을 감고 졸음을 불렀다. 정신이 거의 저편으로 넘어갈 무렵 문 밖에서 열쇠를 꽂는 소리를 들었지만 도무지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다시 케이크를 꺼내 초 몇 개를 꽂아 전부 불을 붙이고 노래까지 불러줄 정신이 없었다. 카드만이라도 제때 보길 소원하며 잠들었다. 비참한 기분 같은 건 없었다.

일어나서 식탁을 확인했을 때는 카드가 펼쳐져 있었고 그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는 주변에 떨어진 담요를 덮어주고 일어나려다 굽혔던 허리를 펴기 전에 눈을 감은 채로 살짝 잠에서 깬 그에게 팔을 붙잡혔다. 내가 먼저 응? 하고 묻자 그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축하 고마워, 라고 속삭이듯 말한 뒤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풀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냉장고에 때를 놓치고 들어가 있는 케이크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축하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것만이 기뻤다.

저녁 식탁에서 숟가락을 들 때, 나는 그때 왜 늦게 들어왔냐는 의도가 담긴 말 혹은 분위기조차도 내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저녁 같이 하려고 했는데 그쪽한테 붙잡혔어. 깜짝 파티래. 예약까지 했대서...」

「네.」

「화났어?」

「아니. 내가 화낼 게 뭐 있나. 잘 먹고 왔으면 된 거죠.」

「기다렸을 것 같아서.」

「케이크... 케이크 사놨거든요. 이따 먹어요.」

「그래? 그럼 같이 먹자.」

「네. 그래요. 좋아요.」

내 ‘그래요’는 정말로 그렇다는 뜻이었고 나의 ‘좋아요’는 정말로 괜찮고 좋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어쩐지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되니 내가 어젯밤 그를 오래도록 기다렸다는 사실을 숨기고만 싶었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는 케이크를 꺼내 박스 위에 올려두었다. 케이크 박스와 케이크를 한 번씩 보더니 그는 내가 케이크를 사온 가게의 이름을 비명처럼 내뱉었다. 알 수도 있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로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거 사오기 어려운 건데! 그래요? 줄 섰어? 네 뭐 조금. 추운데 이 날씨에.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요. 그래도 기다린 건 기다린 거지. 고마워.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정도로... 나는 머쓱한 기분에 서둘러 초를 꽂았다. 생일 지났는데 초 불어? 라는 말에 나는 성냥을 켜는 것으로 답했다. 그는 짧게 소원을 빌고 금세 불을 훅 껐다. 케이크는 둘이 나눠 먹었다.




하나도 불안한 적 없었지만 기묘하게도 지금의 이 안정적인 생활이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느낌은 언제나 공존했다. 나는 그게 못내 두려웠지만 직접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은 없었다. 무슨 사이냐고 묻는 건 두려웠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거나 좋은 선후배 혹은 형동생, 아니면 그저 동거인 내지 룸메이트 따위라고 할 것이다.

우리 어때요? 하고 묻는다면 우리? 우리 괜찮지, 또는 우리 좋아, 라고 할 게 뻔했다. 단지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 나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다. 그랬었다. 나는 오히려 이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말로 정해보려다 전부 어그러지기보다는 처음부터 손대지 않는 게 나을 거라고. 서로에게 확인받기보다는 모르는 곳으로 밀어두는 게 좋겠다고. 




나는 졸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늘렸다. 원래 일하던 이자카야 말고도 야간 편의점, 대학가 카페, 레코드샵에서 월급을 받았다. 잔고는 착실하게 몸을 불려갔다. 그러나 그만큼 집에서 나와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나인투식스 직장인인 그와는 마주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저녁만큼은 좀 같이 하자는 말을 들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화목토 이자카야는 저녁 다섯 시부터 오픈이었고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편의점, 월수금 오전엔 카페에서, 오후엔 레코드샵에서 시간을 때웠다. 그와 멀어진 시간만큼 만나게 된 여자애는 같은 타임 카페 알바였는데 붙임성이 좋아서 먼저 말을 걸어오고는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그 말들에 끊기지 않을 정도로 대답을 해준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애는 그것을 아주 재미있어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리고 내가 졸업한 학교 옆의 여대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니노미야군이었던 호칭은 금세 여타 사람들과 같이 니노로 바뀌었고 그 여자애 멋대로 니노와 니노쨩을 번갈아 부르다가, 가끔은 오빠라고도 불렀다가,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결국엔 に를 조금 질질 끄는 니노로 호칭에 정착했다. 카페 알바 주제에 가족애가 넘치는 점장은 종종 알바들을 모아 회식을 갖기도 했다. 나는 그 회식 자리에서 여자애 옆에 앉아 맥주잔을 들었다 내려놨다 하면서 오랫동안 같이 밥을 먹지 못한 사쿠라이군에 대해 생각했다. 마주앉아 젓가락질하면 같은 쪽 손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던 쇼군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은 집에서 혼자 먹었을까. 아니라면 회식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친구를 불러냈을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니~노, 카페 말고 아르바이트 다른 거 뭐 하냐니까?」

「말했잖아. 이자카야, 이 카페, 편의점 야간, 레코드샵. 이렇게가 다야.」

「우와. 쉬는 날 없어?」

「없어.」

「니~노도 그, 있잖아? 취직 안 하고, 아르바이트로만 먹고사는 거에 만족하는, 그런 세대?」

「몰라, 그런 거. 아직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렇지.」

「나, 레코드샵에 놀러가도 돼?」

「오고 싶으면 와. 직원 할인 같은 건 못 해 주지만.」

하하하. 얼굴이 약간 발긋해진 여자애는 웃다가 눈물을 닦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레코드샵 같은 거에 가는 남자는, 하루키 책에만 나온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조금, 뭐랄까, 밉살스럽다고 할까*, 미덥지 못하다고 할까, 그런 이미지가 있거든. 그런데 니~노는 그런 건 전혀 아니니까. 조금 신기해. 궁금하네에, 어떤 레코드샵인지?

하. 나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는데 이미 취한 여자애에게는 그 소리가 닿지 않은 듯했다. 자리를 파할 때 여자애는 다시 레코드샵 얘기를 꺼내지 않아서 나는 그대로 술김의 이야기로 넘어갈 줄로만 알았다.

다음 출근날에 여자애는 기다렸다는 듯 메모지와 볼펜을 내밀며 레코드샵의 이름이나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약간 질린 얼굴로 정말 오려고? 하고 물었는데 여자애는 씩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 사장님은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에 휘갈겨 가게 이름만 적어주었는데 그 주 금요일 오후에 정말로 찾아왔던 것이었다.

여자애의 이름은 아오이. 이름을 전부 말하려면 혀끝에 침이 가득 고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게 귀찮아서 여자애를 아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아쨩이라고 하면 그 여자애를 말하는 것이다. 

주에 세 번 레코드샵에서 대충 사장님이 고른 판과 내가 고른 판을 번갈아 틀면서 담배를 태우는 동안 아쨩은 레코드들을 구경했다. 나는 재미없을 거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지만, 왼쪽 구석에서부터 오른쪽 구석에 있는 바이닐을 전부 열어보고 구경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나에게 틀어달라고 했다. 바 테이블에 앉아 부탁한 레코드를 들으면서, 내가 뱉어내는 담배연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매번 주절대다가 내가 양면을 다 들었다며 레코드를 정리해 내밀 때까지, 가끔은 단면 레코드일 때도 있었지만, 자리에 앉아 있다가 돌아가고는 했다. 나는 아쨩이 내미는 레코드들을 다시 뽑아 사장님이 골라둔 레코드 사이에 끼워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쨩이 놀러와 아무 판도 고르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 앉자 나는 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느냐 했고 아쨩은 코를 찡긋하고 웃었다. 내가 고른 거 니-노가 이미 여기 뽑아 놨잖아? 그애가 그렇게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 뒤로 아쨩은 점점 말수가 줄고, 레코드샵에 와서는 정말로 노래만 듣다가 가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게 신경 쓰여서 나도 모르게 아무 얘기나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쨩에게 너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 물어본 날에는, 차라리 묻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쨩은 살짝 웃으며 그야, 나 니-노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렇구나, 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이 그게 다야? 하며 아쨩은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그러고는 한참 레코드샵에 오지 않았다. 나는 카페 알바를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시리 마음이 조급해져서 퇴근하는 아쨩을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이제 안 올 거야?」

「어디를?」

「레코드 들으러 안 올 거야?」

「거기 있는 거 다 들었잖아.」

「또 들으면 되잖아.」

「나 그런 거 빨리 질려해서.」

「나 보러 오면 되잖아. 나 이제 여기 그만두는데.」

「뭐?」

「이제 슬슬 취직 준비하려고 다 그만둔다고. 레코드샵이 제일 한가해서 거기 빼고.」

「너 그거를 왜 이제 말해?」

「왜?」

「됐어. 그만두든지 말든지 나랑 무슨 상관?」

「그래? 그럼 신경쓰지 마, 너도.」

나도 괜히 그런 태도에 열이 받아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돌려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확 뒤로 당겨져 넘어질 뻔했다. 균형을 잡고 뒤를 돌아보니 아쨩이었다.

아쨩은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런데 얼굴은 잔뜩 짜증 난 표정으로, 나 니-노가 좋아,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내가 가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아쨩은 나를 확 껴안았다. 나는 그 여자애의 어깨를 안아줄 수 없었다. 길 너머에 그가 서 있었다.




*



울먹이던 아쨩을 달래고, 헷갈리게 해서 미안하다, 그냥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자, 라고 얘기했지만 나 스스로도 그 말을 입밖으로 뱉으면서 그렇게 될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길 건너편에서 아쨩에게 끌어안겨지던 나를 한참동안 지켜보던 쇼군이 생각나서 어쩔 줄 몰랐다. 아쨩을 달래 보낸 뒤 다시 길 건너를 쳐다봤지만 그는 없었다. 레코드샵 사장에게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다는 문자를 보내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에도 그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면서, 아, 쇼군에게 전화를 거는 게 아주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착신음이 끝날 때까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두어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오늘 저녁 같이 하자는 문자를 보내 두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쨩과 사귈 수 없던 이유. 사쿠라이군이 아쨩에게 고백받던 나를 길 건너편에서 한참이나 쳐다봤던 이유. 내가 좋다던 여자애에게 거절의 말을 달래가며 얘기하고 동거인이 있을 집으로 뛰어들어온 이유. 받지 않는 전화를 여러 번 건 이유. 길어지는 착신음에 마음이 초조해지는 이유. 그런데도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는 문자도 하지 못하고 고작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말밖에 보내지 못하는 이유. 난처하게 고백을 듣는 나를 바라보는 쇼군의 표정이 4년 가까이 되는 이 시간 동안 같이 지내며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까.

잠깐 그대로 소파에서 졸았다가 전화벨 소리에 펄쩍 뛰며 깼다. 쇼군이었다.

「여보세요.」

「전화했네? 바쁜 거 아니었어?」

「봤어요? 아까...」

「응. 미안, 봐 버려서. 저녁 말인데, 나 이제 퇴근하니까, 괜찮으면 역 앞으로 와.」

「응. 알겠어요.」

봐 버려서 미안하다니. 그 현장을 나보다도 난처한 표정으로 마주쳐 놓고는 왜 사과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왔던 복장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집 앞 역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담배를 태우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면 눈을 굴려 그를 찾았다. 그 짓을 대여섯 번쯤 반복하자 그가 먼저 나를 찾아 눈인사했다. 내 앞에까지 와서는 발밑의 꽁초를 보더니 작은 헛웃음을 뱉었다. 가자.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가게에 들어가 젓가락을 내 앞에 놔 주면서 그는 같이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다, 라고 했다. 나는 잘못도 없으면서 죄책감이 들어 그러게,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전에 없이 조용한 공기를 느꼈다.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같이 하는 저녁 시간이.

「아까 그거.」

「응, 귀엽더라? 여자애. 사귀는 거야? 잘됐네.」

「아니, 거절했는데. 귀여운가?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애예요. 나보다 어리고.」

「응, 그래 보여. 거절했어? 너 배가 불렀다?」

각자 시킨 메뉴를 앞에 놔 달라고 얘기하면서 그가 그렇게 얘기했다. 배가 부르다니? 여자애의 고백을 거절하면 다 그런 남자가 되는 건가? 나는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때때로 그렇다. 그의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말이 잘 통하는 건 아마도 나일 것이라고 감히 자부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이럴 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그래? 정말? 누구? 너 그런 말, 나한텐 한 적 없잖아.」

「못하죠. 그런 말.」

「왜?」

「아까 왜 그렇게 봤어요?」

「응?」

「아까 걔랑 나랑 있을 때 왜 그런 표정이었냐고요.」

「그러게.」

「우리 무슨 사이예요? 그것부터 먼저.」

「넌 무슨 사이가 하고 싶은데.」

나, 사실은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이고 싶어요. 뭔가를 정해 놓고 시작하기 싫어요. 사귀면요, 헤어져야 하잖아요? 언젠가는. 그런 게 싫어요. 

그날의 식은 손을 기억한다. 얻어터진 볼을 만져주던 손과는 확연히 다른 손의 온도를. 4년이 되지 못한 만큼 식은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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