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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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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06




가을에 접어들어 아침해가 늦게 뜬다. 아직 어둑어둑할 무렵 매일같이 신는 운동화를 꺼내 끈을 고쳐 묶는다. 체육관까지는 가볍게 뛰어서 30분. 체육관을 한 번 찍고, 집 근처까지 돌아왔다가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간다. 니노미야는 늘 똑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섰다. 도착하면 적당히 몸이 달아 있는데 체육관에는 아무도 없다. 주머니에 홀로 들어 있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 들어서고, 밤새 닫혀 있던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몇 개 없는 조명을 마저 켜고 본인 이름이 적혀져 있지만 거의 지워지기 직전인 줄넘기를 꺼내 든다. 출근하듯 이루어지는 매일의 루틴은 관장님이 체육관 문을 젖히면 종료된다.

그런데 오늘은 관장님이 조금 늦다. 니노미야는 먼저 줄넘기를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청소나 할까 하는 생각에 밀대걸레를 찾아 들었다. 사람이 몇 없는 체육관 치고 꽤 넓은 편이기 때문에 니노미야가 바닥을 반 정도 돌았을 때에서야 체육관 문이 열렸다. 관장님은 자연스럽게 니노미야를 찾아 불렀다. 관장님 뒤에는 모르는 얼굴이 서 있었다. 손님인 줄 알았는데 관장님보다도 자연스럽게 문턱을 넘어 들었다. 

니노미야는 늘 그렇듯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했다. 관장도 익숙하게 인사를 받았다. 니노미야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등 뒤에 향해 있다는 것을 알자 남자를 자신 옆으로 불러 소개시켰다.

“너 잠깐 봐주실 코치다. 인사 잘하고.”

“안녕하세요.”

“응. 안녕.”

여태껏 체육관에서 복싱을 가르쳐 주는 교육자는 오로지 관장님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다니는 사람이 애초에 몇 없었고, 그 중에서도 선수를 목표로 다니는 사람은 또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적당히 관장님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웬 코치요?”

체육관을 둘러보는 코치라는 남자를 내버려 두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관장을 따라 들어간 니노미야가 그렇게 말했다. 니노미야에게는 코치의 키읔 얘기도 한 적 없는 관장이 대뜸 젊은 남자를 코치랍시고 데려온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장은 자신의 의자가 아니라 소파에 털썩 앉더니 니노미야를 빤히 쳐다봤다.

“너 한 번은 이기게 해 주고 싶어서 그렇지.”

“저요?”

“그래, 인마. 내 체육관 밑에서 나왔는데 매일 줘터지는 것만 보고 있기엔 아까워서 발품 좀 팔았다.”

“누군데요? 유명해요?”

“알아서 뭐 하게? 잘 가르쳐 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저랑 얼마 차이 안 나 보이는데.”

“동안인가보다 해.”

“얼마 동안 코치 하는데요?”

“너 그만둔다고 할 때까지.”

“제가 언제 그만둔다고 할 줄 아시고요?”

“싫음 말어. 오늘 집 가라고 하지 뭐.”

“됐어요. 알겠어요.”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자 체육관을 다 둘러봤는지 남자가 문 앞에서 니노미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노미야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남자 앞에 가만히 섰다.

“이름이 뭐야?”

“니노미야. 니노미야 카즈나리입니다.”

“그렇구나. 나는 사쿠라이 쇼. 들어본 적 있으려나? 못 알아보는 거 보니까 없는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니노미야 앞에 서서 팔짱을 껸 사쿠라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웃었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갸웃하며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지나가면서도 들은 적 없다는 결론을 냈다. 네 들은 적 없습니다. 그래? 세대 차이가 꽤 나나 보네. 아무튼 너 이기게 해 주라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내가 너 가르칠 거야. 호칭은 어떻게 할래? 코치님으로 괜찮겠죠. 그래 그럼.

사쿠라이는 가르치기 전에 자세부터 보자면서 니노미야를 샌드백 앞으로 데려갔다. 양손에 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끼는 동안 사쿠라이를 가만히 훑어봤는데 체육관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뭣하면 샌드백보다 책상 앞이 더 잘 어울리는 것처럼 생겼다. 반듯하게 샌님처럼. 오늘 복장도 가벼운 티셔츠에 정장 차림이었다. 

“왼손잡이?”

그렇긴 한데, 경우에 따라서 오른손도 쓴다고, 그러니 딴손잡이라고 말하려다 말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좋네. 왼손잡이.”



그날 뒤로는 매일같던 니노미야의 루틴에 코치가 끼어들었다. 집부터 체육관까지 30분동안 조깅하는 것은 동일.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코치와 함께 집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체육관까지 돌아오는 1시간이 변경사항. 니노미야가 줄넘기를 하는 동안 코치는 할 일을 조금 하고, 조금 이른 듯한 점심, 늦은 듯한 아침밥을 먹으러 함께 식당에 들어간다. 2인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은 채 말 한마디 없이 둘이서 간단하게 아침을 처리하고, 니노미야는 체육관에 돌아가 아직 사람이 그닥 차지 않은 체육관을 청소, 코치는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관장님이 순회공연 하듯 번갈아가며 자세를 봐 주는 동안 니노미야는 코치와 일대일로 붙어 교정을 받는다. 코치는 미트를 직접 들 때도 있고 시범을 보여 줄 때도 있었지만 역시 스파링까지는 상대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직 선수였던 듯 자신의 경험을 십분 섞어 가르쳐 주었는데 이전에 코칭해 본 적은 없다고 했지만 적성에 맞는 듯 니노미야는 코치의 가르침을 날이 갈수록 빠르게 익혀 갔다. 

왼손을 쓰면 조금 유리한 면이 있긴 하지. 나도 왼손 선수는 잘 만나 본 적 없어서 막상 링 위에서 만나면 당황했던 것 같아. 방향이 다르니까 순간적으로 대처하는 속도가 잘 안 나온다고 할까. 너도 그런 걸 잘 쓰면 좋아. 근데 너 오른손도 쓸 줄 알지? 어떻게 알았냐니. 나도 선수 출신인데 보면 다 알지. 아무튼 둘 다 하려다가 1인분도 못 하는 수가 있으니까 하나에 집중하는 게 좋긴 해. 

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체육관에 있다가 몸이 땀으로 잔뜩 절은 상태가 되면 코치와 함께 샤워를 끝내고 먼저 가버린 관장님을 살짝 뒷담화하며 문단속을 한 뒤 아침을 같이 먹었던 가게로 다시 들어가 저녁을 함께한다. 이것이 달라진 루틴 중 하나.

코치는 늘 생맥주를 딱 한 잔만 시켜 곁들이는데 니노미야에게는 단 한 번도 허락해 준 적 없다. 너 그래도 등록된 선수잖아. 아마추어라고 해도 술은 아니지, 하면서, 자신 앞에서 그렇게 술을 넘기는 것이다. 니노미야는 나이도 충분히 성인이 되었는데 눈앞에서 마시는 생맥주를 자신은 마시지 못하는 게 괜히 신경쓰여 몰래 마실까 하다가도, 코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다물고 젓가락질만 더 했다. 

계산을 마저 하고 먼저 자리를 뜬 코치를 따라 문 밖을 나가면 역시 코치는 또 구석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있다. 니노미야가 고개를 들이밀면 그제야 코치는 담뱃불을 끄고 웃는다.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그 전과 같이 니노미야 혼자지만. 언젠가 하루는 먼저 저만큼 가다가 코치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 뒤돌아 본 적 있다. 코치는 체육관 근처로 돌아가 허름한 맨션 2층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관장이 이 체육관에서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집을 잡아준 것 같다고, 집으로 돌아가며 니노미야는 가만히 생각했다.



코치에게 배운 이래로의 첫 경기에서는 무참히 패했다. 왼손잡이인 것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같은 체급이라고는 했지만 상대 쪽이 체격이 훨씬 좋았다. 니노미야 쪽이 유효타를 많이 때리긴 했지만 상대의 펀치 하나 하나가 니노미야에게 더 타격이 컸다. 사쿠라이는 상대 쪽 코치처럼 목소리를 크게 지르지도 않았고 니노미야에게 물을 가져다 주거나 정신 차리라는 말 한두 마디 정도만 할 뿐, 특별히 어딘가를 노리라거나, 어느 곳을 고치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탈의실로 걸어가는 니노미야를 부축해 주지도 않고, 상대 쪽에게 먼저 인사를 꾸벅꾸벅, 다음에는 심판, 관계자들에게 고개를 한참 숙였던 코치는 뒤늦게 그를 따라 탈의실로 들어왔다. 니노미야는 씻을 기운도 없어 의자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코치는 니노미야의 쥐어터진 한쪽 눈이 피멍 들어 제대로 떠지지 않는 걸 대충 보더니 어느새 들고 왔는지 모를 얼음팩을 손에 쥐여주고 왼손으로 니노미야의 턱을 잡아 벌렸다.

“이는 괜찮아?”

“에.”

“흔들리는 거 없어?”

“에으.”

턱이 붙잡혀 입이 강제로 벌어진 탓에 혀가 움직이는 것 말고는 제대로 없다고 말하지 못했긴 하지만 없다, 아니라는 부정의 뜻은 전해졌을 텐데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의 대답을 듣고도 남은 한 손으로 니노미야의 이를 하나하나 움직여 보면서 하나도 흔들리는 게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제야 기운이 조금 돌아온 니노미야는 녹아 물렁해진 얼음팩을 코치의 손에 다시 건네고 금세 샤워를 끝낸 뒤 환복했다. 코치는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창문이 닫혀 있어서 탈의실 안이 이미 담배연기로 가득했는데 니노미야가 나오자 또 재떨이에 급하게 담배를 비벼 껐다. 니노미야는 그가 자신을 신경 쓰는 것이 신경 쓰여서, 괜히 끌 필요 없다고 하려다가, 그것까지 말할 것은 아니다 싶어 입을 다물고 조촐한 가방을 쌌다.

체육관으로 돌아가면서 코치는 말 한 마디 없었다. 오늘 경기의 피드백이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입을 열 기색이 아니었다. 니노미야는 속으로, 첫 코칭이 실패여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나, 하고 생각했다. 체육관 앞에 다다르자 코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땠어?”

“네?”

“그렇게 맞으니까 기분이 어땠냐고.”

“별로요.”

니노미야가 그렇게 대답하자 코치는 왠지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주머니를 뒤져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제는 니노미야가 눈앞에 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불을 붙인 뒤 코치는 다시 니노미야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아무 기분 안 들어? 그렇게 맞았는데?”

“예. 별로.”

“너는 복싱이란 걸 하면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 갖고 있는 것 같애.”

“그런가요?”

고개를 돌려 연기를 옆으로 뱉어낸 코치는 또 방금 전처럼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관장님이 나한테 그렇게 부탁했어. 너 한 번만 이기게 해 주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네가 되게 이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처음 봤을 때 눈빛은 정말 좋았는데. 너 링 위에서는 왜 그런 눈빛이 안 나올까. 너 그렇게 맞으면서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같지가 않아. 내가 그런 너한테 해 줄 말이 뭐가 있어? 상대도 똑같이 아마추어인데. 내 눈에는 구멍이 한두 개 보이는 게 아닌데. 그런데 네가 그런 마음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해 주고 뭘 가르쳐 줘야 해.”

아, 그렇구나. 관장님이 그런 말을 했구나. 니노미야는 관장님이 코치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그를 데려온 줄 몰랐다. 그저 그날 니노미야에게 너 이기는 걸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라는 말만 했을 뿐, 그게 코치를 데려온 이유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건 관장님이 낡아빠진 가르침을 해서가 아니고, 코치가 풋내 나는 어설픈 교육을 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내가 물어뜯지 못해서인가. 내가 상대에게 덤벼들 마음이 없어서인가. 상대는 그런 냄새를 짐승이 피냄새를 맡듯이 맡고 덤벼든다는 것인가. 니노미야는 금방 담배 한 대를 싹 태우는 코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오래 져 왔기 때문에 니노미야는 스스로가 패배의식에 절어 있다는 것도 모를 법했다.

“너 그럴 거면 내일부터는 안 가르치고 싶다.”

“아니에요. 이기고 싶습니다.”

“정말?”

“네. 가르쳐 주세요. 내일은 오늘 상대랑 비슷하게 하면서 스파링 해 주세요. 제가 뭘 해야 하는지 다 알려 주세요.”

코치는 근처 어딘가에 비스듬하게 기대면서 니노미야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담뱃갑을 열어보는 것 같았는데 아까 것이 돗대였는지 구겨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상당히 오래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코치는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니노미야에게 가 보라고 했다. 니노미야는 말하지 않아도 그게 수락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니노미야는 발을 돌려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치가 달려와 니노미야를 붙잡았다. 방금 편의점에 들렀는지 손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얼핏 보니 캔맥주인 것 같았다. 비닐봉투를 내려다보는 니노미야를 앞에 두고 코치는 봉투를 뒤져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그걸 니노미야가 들고 있는 가방에 멋대로 집어넣으면서 코치는 그렇게 말했다.

“혼자서 붙일 수 있지? 못 하겠으면 내일 그대로 가지고 와. 내가 해 줄게.”

“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니노미야는 코치를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코치가 어떻게 그 허름한 맨션으로 돌아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가볍게 다시 샤워하고 자기 전에 거울 앞에서 쥐어터진 눈가에 코치가 사 준 연고를 바르고 턱에 밴드를 붙이면서 어쩐지 자신이 코치의 첫 제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얼굴에 잘 연고도 바르고 밴드도 붙인 니노미야를 바라본 코치는 뿌듯해 보이기도 했지만 내심 약간 아쉬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제자에게 밴드를 붙여 주고 싶은 소원이라도 있었는지 넘겨짚었다. 다음날은 코치가 상대 역을 맡아서 스파링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사쿠라이와의 첫 스파링이었던 것 같다. 사쿠라이는 늘 말로만, 혹은 시범을 보이기만, 미트를 잡아 주기만 했지 니노미야의 앞에 선 적은 없다. 코치이기 때문에 별로 이상한 느낌이랄 것은 없었지만 관장님은 그 나이에도 가끔 중학생을 상대해 주기도 했기 때문에 특이하다고는 여긴 적 있지만.

사쿠라이는 놀라울 정도로 전날의 상대와 스텝부터 패턴까지 똑같이 니노미야를 상대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덕분에 니노미야는 전날처럼 처참하게 맞지 않았지만, 차마 코치를 전력으로 후려칠 자신이 없어서 꼭 끝에 가서 펀치가 약해졌다. 사쿠라이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지만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날은 아침이 아니라 점심을 같이 먹었다. 니노미야는 답지 않게 먼저 말을 걸었다.

“왜 은퇴했어요?”

“팔이 부러져서.”

코치는 고개를 숙여 밥을 먹는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니노미야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말했다.

“붙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잖아요.”

“그런 적 있어?”

“전 발가락 부러진 적은 있어요.”

“잘 붙었어?”

“네.”

“나는 잘 안 붙었어. 평소엔 티 안 나거든. 긴팔 입으면 더. 약간 틀어졌어. 잘 봐 봐.”

젓가락을 내려 놓고 가드 자세를 한 사쿠라이의 양팔은 확실히 미묘하게 다른 모양이었다. 그의 오른팔은 팔꿈치를 기준으로 위아래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 형태와 길이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정상만을 지켜봤던 니노미야이기 때문에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부러진 것 같아서 멈추려고 했어... 근데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한 대만 치면 될 것 같은 느낌... 그 느낌 알지. 그리고 링 위에서 그런 느낌은 보통 사실이잖아. 그래서... 그냥 쳐버렸어. 치고 이겼어. 그런데 팔을 들지를 못하겠는 거야. 이겼는데. 심판이 팔을 들어주려는데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는 거 있지. 그래서 이기고. 이겨서 그, 트로피도 받고, 그런 다음에 두 발로 걸어서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이상하게 그때는 그렇게 수술하기가 싫더라. 그거 알아? 전신마취하면 몸 상태 돌아오기까지 꽤 걸리는 거. 예전에 어렸을 때,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아무튼 한 번 했었거든. 그걸 알아서, 부분마취로는 안 되냐 하니까 된다고 하는데, 그거로도 하기가 싫어서... 그냥 깁스하고 지냈는데 붙고 나서 보니까 그땐 확인이 안 됐던 게 이미 비틀어진 채로 붙었대. 내가 그때 근육을 안 붙였으면 교정할 수도 있었는데, 근육도 붙였어서, 그게 이미 근육이랑 같이 뒤틀어진 채라는 거야. 그 말을 듣고 팔을 뻗어보는데 리치가 짧아져서. 안 되겠다 싶었지. 왜냐하면 난 오른손잡이잖아? 그랬지. 1cm라도 리치가 긴 게 좋다는 거, 알잖아.”

니노미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둑이 터진 듯 사쿠라이는 줄줄이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술 한 모금도 하지 않은 걸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사쿠라이는 무언가에 취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라면 반대쪽을 훈련해요.”

“나라고 안 해 봤을 줄 알아?”

니노미야가 그렇게 말하자 사쿠라이는 답지 않게 화를 내듯 말을 뱉었다. 마른세수를 한 번 하더니 사쿠라이는 먼저 계산한 뒤 밖으로 빠져나갔다. 니노미야가 느즈막히 접시를 해결하고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니 사쿠라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니노미야를 신경도 쓰지 않고 실컷 피우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신경이 뒤틀린 니노미야는 그런 사쿠라이를 모른 척하고 먼저 체육관으로 가 버렸다.

그날 사쿠라이는 점심시간 내내 어디에 갔는지 몰랐다. 니노미야는 코치 없이 홀로 힘껏 샌드백을 치거나 스텝을 밟았다. 관장님이 귀가한 이후로는 더 글러브를 끼고 있기도 싫어서 줄넘기만 계속 했다. 사쿠라이는 해가 지도록 체육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문단속까지 다 했는데도 사쿠라이는 체육관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문을 잠근 니노미야는 그전에 봐 뒀던 사쿠라이의 집 앞으로 갔다.

가서,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사쿠라이가 늦게 문을 열었다.

“왜 왔어?”

“어떻게 왔냐고는 안 물어보네요.”

“그때 나 보고 있던 거 알고 있었어.”

“그래요? 그런데도 나 계속 밖에 세워 둘 거예요?”

니노미야는 약간 삐딱한 자세로 사쿠라이를 노려보았다. 당돌한 녀석이라고 생각할 법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한잔 했는지 사쿠라이가 한숨을 쉬었는데 약간 술냄새가 느껴졌다. 니노미야는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속셈으로 그 앞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사쿠라이는 그런 니노미야를 한참 쳐다보았는데 그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들어오고 싶어?”

“추워요.”

“씻었어?”

“청소도 다 하고.”

사쿠라이는 문을 살짝 더 열었다. 마치 니노미야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듯. 니노미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약간 취해 있는 사쿠라이는 멀쩡한 정신의 니노미야가 밀어붙이는 것을 이기지 못했다. 방은 좁았다. 침대도 아니고 매트리스 하나에 이불, 베개 하나씩이 전부였다. 니노미야는 기껏 방까지 들어가 놓고 현관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코치님.”

“응?”

“제가 져서 섭섭해요? 아니면 제가 맞는 게 싫은 거예요?”

“글쎄.”

“저는요. 제가 맞는 게 싫다고 했으면 좋겠어요.”

현관에 가만히 서서 그렇게 말하는 니노미야를 모른 척하듯 사쿠라이는 먼저 방 안으로 냉큼 들어섰다. 안주도 하나 없이 술만 마시고 있었는지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니노미야는 문이 닫힌 현관 앞에서, 사쿠라이가 분주히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고 서 있었다.

“난 그렇게 말 못 해.”

“왜요?”

“복싱선수는 맞는 게 일이잖아. 근데 맞는 게 싫다고 하면, 너 그만두라고 하는 건데. 근데 난 너 가르치려고 온 거니까 그렇게는 못 말하지.”

“코치님도 많이 맞았어요?”

“응. 너보단 많이 맞았을걸.”

섭섭하다. 신발을 벗으면서 니노미야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사쿠라이의 팔뚝을 양손으로 감싸쥐면서,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사쿠라이와 닿았다는 사실에 질투했다. 이런 애정 어린 손길이 아닌 폭력의 일종인 주먹질로라도 사쿠라이와 닿은 누군가를, 스스로가 징그러울 정도로 질투했다. 사쿠라이의 양쪽 길이가 다른 팔꿈치를 투박한 양손으로 감싸쥐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을 전부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질투했다. 사쿠라이는 니노미야가 먼저 눈을 감고 입술을 들이미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단순히 복싱 체육관에서 가르치고 가르침받는 사이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둘 다 충분한 성인이었다. 그런데도 사쿠라이는 왠지 니노미야가 자신의 제자라는 감상이 앞섰기 때문에 그 입맞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사쿠라이를 니노미야가 몸으로 짓눌렀다. 먼저 몸을 눌러 붙이고 입술을 갖다댔다. 어쩐지 감상에 젖은 사쿠라이는 눅눅한 상태 그대로 니노미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매트리스뿐인 침상에 함께 누운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사쿠라이는 니노미야를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열정에 들끓고 있는, 어딘가 잔뜩 불타고 있는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이미 한 번 시든 사쿠라이는 그 니노미야를 차마 밀어낼 수 없었다. 억지로도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콘돔을 내주면서 니노미야를 받아들였다. 사쿠라이는 양손으로 니노미야의 등을 더듬었다. 자신은 항상 니노미야의 앞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등 뒤를 이렇게 느끼는 것은 어쩌면 만난 이래로 처음일 것이라고, 스스로도 어색한 그 신음을 삼키듯 내뱉으며 생각했다. 

처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 수 있다. 사쿠라이도 니노미야도 그 어느 누구도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더 비참해지는 걸 수도,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쿠라이는 먼저 잠든 니노미야를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와 끼걱이는 베란다에 기대 담배를 태웠다.



그러나 그 다음 경기도, 그 다다음 경기도, 사쿠라이가 가르친 이래로 니노미야는 이긴 적이 없었다.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니노미야의 체력 문제도, 체격 문제도, 테크닉도 실력 문제도 아니었다. 이기고 싶다, 물어뜯고 싶다, 덤비고 싶다는 마음가짐의 문제도 아니었다. 사쿠라이가 가르치는 게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둘 아래에 모자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럴 뿐이었다. 성공해서 1군으로 나가고, 지상으로 올라가고, 세상의 주목을 받고, 전 세계에서 복싱장 등불 아래 심판이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둘은 오래지 않아 실감했다. 몇 경기 지나지 않아서,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큰 오차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둘은 깨달았다. 머리가 비상해서일까? 둘 중 누구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다는 것은 금방 알았다. 그런데도 니노미야가 우승하지 못하는 것, 벨트를 받지 못하는 것, 트로피, 하다못해 메달 하나 얻지 못하는 것이 니노미야 혼자만의, 사쿠라이와 니노미야 둘만의, 관장까지 포함해 셋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어떤 패배감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현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조금 빨리 깨달았을 뿐이다.

니노미야는 사쿠라이 몰래 다음 경기를 은퇴전으로 하기로 정했다. 관장은 알겠다고 했다. 너 우승하는 거 한 번 못 봐서 참 아쉽다고는 했다. 그도 마지막 경기에서 기적적으로 니노미야가 이길 리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둘은 짠 듯이 사쿠라이에게는 모른 척했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아마추어전은 아니라 데뷔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셋 다 알고 있었다. 사쿠라이를 빼놓고 관장과 니노미야는 술자리를 가졌다. 너 그만한다니 참 아쉽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자기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능이 없는가 봐요. 관장도 그 말을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해 놓고 재능이란 게 있다고 뻐기는 것보다 그 사실을 스스로 알아내는 녀석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언제나와 같이 니노미야는 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왔고, 체육관 앞에서 사쿠라이와 만나 1시간 더 조깅했고, 줄넘기를 한 스텝 넘기고, 사쿠라이의 코칭을 내내 겪고, 체육관을 정리하고 사쿠라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가끔은 니노미야가 먼저 권하기도, 사쿠라이가 니노미야를 잡아당겨 집으로 이끌기도 했지만, 둘이 잠자리를 갖는 건 그날 이후로 많지는 않았지만 드물다고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제법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날 이후로 니노미야는 사쿠라이가 어느 곳이 약한지, 팔꿈치를 만지면 괜히 몸을 부르르 떠는지, 생각보다 말수가 많다는 것도, 혼자만 알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체육관에 다니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사쿠라이와 가깝다는 사실, 월급을 주는 관장보다도 자신이 사쿠라이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괜시리 우쭐하기도 했다.




“싫다, 너 맞는 거.”

“왜요?”

“얼굴이 아깝잖아.”

“흠.”

“내가 너보다 네 배는 더 맞고 살았을 텐데.... 왜 내가 맞는 것보다 니가 맞는 걸 보는 게 더 아플까?”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땐 하나도 안 예뻐.”

사쿠라이는 그 말을 듣자 괜히 니노미야에게 꿀밤을 먹였다. 니노미야는 맞은 것보다 더 아픈 척하며 데굴데굴 구르는 척까지 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기분에 사쿠라이는 바닥을 쳐다보면서 오바하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니노미야도 부끄러운 건 아는지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난 예뻐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래, 알아. 그래도 예뻐해줄 거야. 죄다 쥐어터져가지고는. 예쁜 구석은 하나도 없는데. 그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니노미야의 은퇴 경기는 판정패로 끝났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링 바로 밑 코치석에서, 사쿠라이는 심판에게 왼팔을 붙들린 니노미야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살짝 숙여진 뒤통수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판정패의 그 순간, 어떤 표정을 했는지, 죽어서도 알지 못한다. 벨트를 받는 상대에게 무미건조한 박수를 쳐 준 니노미야는 제발로 링 밖으로 나와, 핏물이 굳어가는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빠른 발걸음으로 탈의실로 향해, 5분만에 샤워를 끝마치고, 글러브와 마우스피스와 붕대, 복서팬츠와 신발을 가방에 가지런히 집어넣고, 일반인처럼 옷을 갈아입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쿠라이 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게 은퇴전이었다는 것을 관장에게는 미리 말한 듯, 아쉽다느니 수고했다느니 하는 통상적인 대화를 잘만 주고받았으면서, 사쿠라이가 있는 쪽을 뻔히 알면서도,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쿠라이가 있는 방향을 매번 등지고 섰다. 사쿠라이는 그걸 기다리면서 벌써 담배를 다섯 대 넘게 피웠다.

사람들이 거의 돌아가 웅성거림이 잦아든 지 한참이나 되자 그제야 니노미야는 뒤를 돌았다. 그 첫마디는 배고프다, 였다.



항상 가던 그 밥집으로 가서, 밥을 다 먹고, 먹는 동안 역시나 한마디 없이 젓가락질만을 힘껏 한 뒤, 사쿠라이가 먼저 계산을 마치고 벌서 끝을 보여가는 담뱃갑을 털어 한 대를 물었을 때, 시야에 벌건 손이 하나 쑥 들어왔다. 나도 한대만요. 담뱃갑을 든 손에 힘을 쥐었는데 니노미야는 뻗은 손을 물리지 않았다. 거절이라고 생각했는지 어설프게 웃으며 한 대만요, 라고 다시 중얼거렸다. 저 이제 운동 안 하니까. 그 말에 마음이 물러져 손을 뻗었다. 니노미야는 익숙하게 한 대를 빼 물고 라이터를 빌려 갔다.

“왜 나보다 아쉬운 얼굴이지?”

“내가 가르쳤으니까 그렇지.”

“관장님도 그 정돈 아닌데.”

“내가 스텝부터 다시 가르쳤는데 판정패나 당하는 놈이랑은 말하기 싫어서.”

니노미야는 고개를 돌려 사쿠라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불쑥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뭐가?”

“코치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가르쳐 줬는데도, 말도 안 하고 은퇴전이나 잡고, 은퇴전에서 판정패나 당해서.”

“잘 아네.”

“코치님이 가르쳐 줘서 이기고 싶었어요. 알죠, 나 왼손도 오른손도 다 써 본 거. 근데요, 잘 안 됐어요. 나는 아닌가 봐요. 코치님이 그렇게 가르쳐 줘도, 나는 이길 수는 없나 봐요.”

“사과는 왜 해?”

“코치님이 스텝부터 다시 가르쳐 줬는데, 은퇴전에서 지기나 했으니까.”

“나 이제 니 코치 아니다.”

“그럼?”

“말을 놓네?”

사쿠라이는 니노미야가 괘씸하다는 듯 손을 뻗어 꿀밤을 먹였다. 오늘 맞았던 그 어떤 펀치보다도 아주 약할텐데 니노미야는 괜히 눈물을 찔끔 뽑았다. 안 아프잖아. 당황한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니노미야는 눈물을 매단 채로, 코치님은 나 진심으로 때린 적 없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나란히 앉은 채로, 같은 담배를 피우면서, 왼손잡이인 니노미야와 오른손잡이인 사쿠라이는, 복싱이 아니라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조금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서로에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담뱃재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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