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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03.
그 해는 바둑이 전에 없이 인기였다. 사쿠라이도 니노미야도 그 틈바구니에선 별로 눈에 띈 적이 없었다. 계란 한판 중 쌍란 하나가 나올 확률로 그 시절엔 바둑 같은 거에 뛰어든 인생, 그 중에 아주 별난 녀석들 천지였고 그 둘은 딱히 적게도 많이도 만나지 않으며 단수를 착실히 쌓아갔다.
저저번? 한번쯤, 마주앉은 사쿠라이의 안색이 영 별로였던 때가 있는데. 그때, 컨디션 탓인지, 두는 수마다 악수에 악수를 거듭한다. 이런 프로답지 못한 수에 맞장구쳐줘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여서. 니노미야는 정말 말 그대로 되는대로 돌을 놓았다. 장담컨대 그 대국만큼은 둘 중 누구도 복기할 수 없는 판이었다. 한참 턱을 괴고 희한한 자세로 앉아 있던 니노미야가 고개를 들어 맞수를 쳐다봤을 때. 얼굴이 창백하고 뒷목은 식은땀으로 잔뜩 젖어 있던 사쿠라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니노미야를 마주 봐 왔다.
그 눈빛이 선득하다. 폐를 찢어 오듯이.
사쿠라이는 입술 한 번 벙긋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너, 나를 얕보는 거지. 지금 대충 두는 거지. 나를 봐주려고 하는 거지? 그렇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한참이나 배신당한 표정. 그러나 니노미야는. 그것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차마 몰랐다. 전력이 아닌 상대마저도 전력으로 대해야 해? 너, 유치원생이랑 달리기하는데, 이를 악물고 뛰어가기 시작하면, 뒤처지는 유치원생보다 앞서가는 내가 더 우스운 꼴이 되는 것도 모를 정도로 단순해?
더 봐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 눈빛을 알았다고 해서 갑자기 진심이 될 생각도 없었다. 사쿠라이와 니노미야 테이블 말고도 대국이 진행되는 탁자는 많았다. 이 한 판, 대충 지나간다고, 큰 소란이 일어날 리 없고.
사쿠라이는 하다 못해 식은땀을 턱 밑으로까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봐, 그렇게 상태가 안 좋으면, 차라리 기권을 하란 말이야! 그렇게 언질이라도 주려다가, 다시 손을 뻗은 사쿠라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럴 마음도 썩 달아나고 말았다. 이겨도 찜찜하고 져도 찝찝하고. 그런 미지근한 온도의 대결. 지켜보는 사람들도 재미를 못 느끼는지 얹어가는 말들도 줄어가고, 사쿠라이는 손목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쳐냈다.
질린 듯한 표정으로 니노미야는 금세 마지막 수를 두었다. 되는 대로 돌을 두었기 때문에 복기할 생각이 없었고 그대로 자리에서 떴는데, 뒤돌아 담배를 피우러 간 니노미야는 모르겠지만, 사쿠라이는 얼굴이 역시 하얗게 질린 채로, 한참을 앉아서 그 흐름도 없는 대국을 꾸역꾸역 복기했다. 찌른 사람도 없는데 찔린 표정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껄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힘겨운 모습으로.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면서 매일 좋은 컨디션으로 임할 수도 없는 법이고. 그렇게 중요한 경기도 아니었으며. 더욱이는 그렇게까지 진행했으면서도 영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니노미야는 금세 그날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니노미야는 대국 전에 반갑, 대국 후에 반갑, 식사는 매끼 라멘이었으나 그중 종류는 상관하지 않았고 체크아웃을 하기 전까지 줄곧 방해금지 팻말이 장승처럼 내걸려 있었다. 오백미리 물병이 합쳐서 열한 병씩 나왔다. 객실에서 충분히 담배를 피워도 괜찮았지만 니노미야는 매번 흡연실까지 내려가 구석자리에 한참을 앉아 줄담배를 태우고 돌아왔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자 어느 기자는 그것이 루틴이냐 했다. 징크스라도 있느냐 물었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약간 비뚤게 두고 턱을 괸 채로 제법 길게 생각하더니, 그랬나요? 하고 되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당황한 기자가 예? 하자 니노미야는, 제가 대국 전에 반갑, 대국 후에 반갑, 호텔에 묵는 동안 물 열한 병, 끼니는 거르지 않고 매번 라멘이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하고 또 되물었다. 기자는 네,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니노미야는 되려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렇습니까, 혼잣말을 되돌려주었다. 징크스 뭐 그런 건 없습니다. 밥은요, 제가 고기는 다음날 힘들고, 날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또 한 번 주문했는데 오래 걸리는 것도, 그러니까 코스요리 같은 것도 싫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제일 적당한 게 라멘 정도라서요, 그래서 매번 그냥 그렇게 먹는 거고, 역시 저, 흠, 일본인이라 그런지, 뭐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끼니를 거르면 좀 힘들더라구요, 해서 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한 끼 정도는 챙기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제가 군것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담배를 반반 나눠 피우는 것도 별 의미는 없구요,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요, 중간에 사러 가기도, 사다 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서, 그런데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고요, 네. 몸이 그거에 익숙해진 게 아닐지? 하하. 물이야 뭐 많이 마시면 좋잖아요, 그래서... 예. 루틴 그런 거 없습니다, 저는, 하고 길게 대답했다.
전날 하루 우유 한 잔, 계란 반 개, 커피에 우유 석 잔뿐으로, 맞은편에 앉은 사쿠라이의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핼쓱했으나, 매번 이렇게 마주앉을 때마다 사쿠라이는 언제나 그런 얼굴이었으므로, 니노미야에게는 오히려 그편이 익숙했다. 돌을 집는 동안에 니노미야는 또 여전히 물병 네 개뿐을 옆에 두고 있었는데, 반대편 탁자에는 개별포장 초콜릿 한주먹과 사탕 서너 개, 카라멜 작은 것 한 박스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그날 사쿠라이는 마지막 수를 잘못 놓았다. 니노미야는 그 돌이 내려앉는 순간부터 의심했다. 바둑판이 아닌 사쿠라이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무르고 싶다면 무르게 해 주겠다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실수한 것도 모르는지 사쿠라이의 얼굴은 고요했다. 니노미야의 마지막 돌이 던져져도 아무 흔들림이 없었고...
대국이 끝나자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에게 악수를 청해 왔다. 니노미야는 그 손을 일부러 더 세게 쥐고 잡아당기며, 마지막, 실수한 거지? 라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사쿠라이는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왜 그래? 라고 하면서 니노미야의 손을 떨쳐내고 멀리 가 버렸다. 그 뒤에 대고 실수한 거지?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기자들은 가 버리는 사쿠라이가 아니라 거기 가만히 서 있는 니노미야를 향해 달려왔지만, 그도 금세 자리를 떠 버렸기 때문에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화를 내려고 했다. 다시 만나면. 언제나 그렇듯, 며칠 안에 다시 마주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보면, 진지하게 화를 내려고 했다. 당신, 이런 식으로 경기한 적 없잖아! 거지같은 수를 둔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눈에 보이고 뻔한 수를 둘 리가 없잖아! 무르고 싶다면 무르게 해 주겠어. 없는 게임이다 치고, 다시 한 번 하자고, 내 쪽에서 제안해 준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뒤로 다시 보게 되는 일은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전부 사쿠라이의 거취를 물었다. 알고 지내던 기자들에게도 물었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자기들 연락도 받지 않는다고 그랬다.
그러고 며칠 뒤에 조용히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은퇴한다는 소식이 간결하게 적혀 있고, 기자는 사쿠라이를 대신해 기사를 쓴다고 했으며, 이것 이외에 다른 취재나 연락은 받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이유라든가, 은퇴 이후에 어디서 뭘 한다든지도 적혀 있지가 않았다. 이름 옆의 괄호가 열리고,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 단수를 말하는 숫자, 닫힌 괄호, 그리고 은퇴한다는 한마디. 그게 전부였다. 이유도 없고.
앉은 자리에서 한 갑을 다 피운 니노미야는 그제야 그 기사를 본 뒤로부터 반나절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쿠라이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락처 따위는 모른다는 것도. 되짚어 보면 사쿠라이와는 대회에서 만나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주변에도 사쿠라이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랑 알고 지내는지도 몰랐고.
니노미야는 답지 않게 주변을 수소문하며 사쿠라이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집 근처 이자카야 맨 구석자리 카운터석에서 방금 전까지 네기마에 꽂혀 있던 꼬치를 사정없이 접시에 쿡쿡 찔러대던 니노미야는 이제 사정없이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을 정도로 숙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자리에서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던 일행은, 안쪽에서 열심히 타래를 발라 놓은 꼬치를 굽던 사장이 눈짓으로 니노미야를 가리킬 때에서야 존재를 알아챘는지, 말없이 잔을 기울이던 니노미야의 어깨에 팔을 턱 올렸다.
“웬일이야? 부르니까 다 나오고. 나와서는 말도 없고. 응? 말도 안 하고, 많이 먹지도 않고, 술이나 마시고. 한참 취했는데? 뭐, 차이기라도 했어?”
“됐어....”
“누군데, 뭐, 우리 몰래 연예인 만났어?”
“됐대도.”
“말하면 알아?”
“알지, 알기는... 차이고 그런 거 아냐.”
“누구 땜에 그러는데, 말이라도 해 봐. 어? 뭐, 여기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고, 엉?”
시끄럿. 니노미야는 잔을 마지막으로 기울이고, 한참을 괴롭히던 꼬치도 던져버리고, 짐을 챙겨서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다들 이미 얼큰해진 지 오래라서 니노미야 하나 정도는 돌아가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게 뻔했다. 어차피 매일 그곳에 껴 있는 얼굴이 아니니, 오히려 있는 걸 이상하게 느껴서 쓸데없는 걸 물어올지도 몰랐다.
좁다란 골목을 하나 끼고 있는 가게에서, 가게 쪽에 붙여 갖다 둔 말통 옆에 바짝 붙어 선 니노미야는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 물어 불을 붙이려고 했다. 라이터를 털어도 털어도 불이 붙지 않아 부싯돌을 한참이나 당긴 엄지손가락이 얼얼하다. 그때 누군가 니노미야 앞에 불을 갖다 대 주었다.
눈을 가느스름히 해서 옆을 바라보니.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날 정도로 흐릿한 인상. 눈썹을 한껏 젖혀 미안하다는 인상을 만들고, 그런데, 누구? 라고 하자 불을 대 준 그 남자는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저 인턴 때 바둑 한참 취재하러 다녔어서요. 익숙해서 그만. 명함이라도 드릴까요? 정직원 되고는 다른 부서가 돼서요. 그런 말을 들으며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썹이 가늘고 숱이 옅은데 쌍커풀 위쪽에 눈에 띄는 점 하나가 있다. 그게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인상. 거슬러 올라가 보니 기억이 날듯 말듯. 한참 긴장한 모습으로 등을 바짝 세워 앉았던 게 이 사람인가.
어째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담배를 옆으로 비뚤게 문 채 웅얼대는 발음으로 야마자키? 하고 묻자, 남자는 놀란 듯 웃으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밑에는 기억 못하지만. 니노미야가 더 말을 잇지 않고 그저 연기를 빨아들이고만 있자, 야마자키도 옆에 서서 담뱃불을 붙였다.
“요즘은 대국 없으세요?”
“있어요. 담주.”
“어때요? 재미있으세요? 바둑요. 전 그냥 그랬거든요.”
“둬보지 않아서 그런 거 아녜요?”
“아, 한 적은 있어요, 중학생 때 바둑부였는데. 그래서 인턴도 거기로 보내진 거거든요. 실은 별로 해 본 적도 없고. 오목이랑 알까기밖에 안 했었지만.”
“아아. 중학생들도 많이 하는구나.”
“오히려 중학생이라 그런 걸 하는 거죠. 니노미야 씨는 언제부터 하셨는데요, 바둑?”
“으응. 언제드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니노미야는 꽁초를 말통에 빠트리고는 다시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야마자키에게서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또 빌리면서.
“초등학생?”
“아아. 비슷한 때에 시작한 사람은 누가 있어요?”
“몰라요, 나 친구 없어서... 취재하러 온 거예요?”
“하하. 모르시는구나. 저 근처에 앉아 있었어요. 긴가민가했는데. 왠지 익숙해가지고 따라 나왔거든요.”
“으응. 뭐. 같이 승급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깐은. 그리고 한참 많이들 바둑 한다고 하고 그럴 때였잖아요.”
“그건 그랬죠. 아아. 그분도 아직 바둑 하세요?”
“누구요?”
“니노미야 씨랑 잘 붙었던 그분 있잖아요. 그으... 아. 사쿠라이 씨요! 사쿠라이 쇼.”
“그만뒀잖아요.”
“아, 어? 언제요?”
“그만뒀어요. 일 년도 넘었을걸. 말도 안 하고 기사 하나만 떨렁 냈잖아요. 기자라면서 그것도 몰라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파고들어온 이름에 니노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 반응했는데. 야마자키는 지금 있는 부서에서 이것보다 더한 짜증을 듣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뒤, 네네, 몰랐네요, 하며 다시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선배가 뵙고 왔다고 해서 아직도 하시는 줄 알았는데. 것도 바둑 얘기를 계속 하셨거든요.”
“누가요? 뭐하러? 지금 일반인이잖아.”
“일반인, 뭐, 일반인이죠, 근데 선배랑은 아마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일걸요? 정확히는 저도 모르고요. 연락 안 하고 지내세요? 뭔가 또래라서 친하실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나 싫어할걸요.”
그렇게 말하고 니노미야는 다시 꽁초를 말통에 던져넣었다. 아까 가게에서 나올 때 이미 지갑과 휴대전화를 다 챙겼기 때문에 다시 가게로는 들어가지 않고. 야마자키의 명함을 지갑과 함께 자켓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비척비척. 뒤에서 그를 쳐다보던 야마자키가 택시라도 잡아 태울까 싶을 정도로 휘청거리며.
다음날 지갑을 열자 야마자키의 명함이 발치로 떨어졌다. 그걸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결국은 먼저 전화를 걸고 말았다. 알랑대는 말은 치우고, 전화를 받은 야마자키에게, 사쿠라이와 만난 그 선배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 선배에게 알려줘도 되는지 물어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니노미야는 집안을 한참 뱅글뱅글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전화기가 다시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
메일 알림이 왔을 땐 놀라서 펄쩍 뛸 정도였다. 너무 오래 서성거려서 자리에 앉자 현기증이 났다. 메일을 확인하자 야마자키의 간단한 인사와 그 선배에 대한 짧은 소개가 붙어 있었고. 니노미야는 더 지체하지 않고 그 전화로 다짜고짜 전화를 건 뒤, 미안하지만 사쿠라이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거의 소리지르듯 요구했다.
선배라는 사람은 웃으며 니노미야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니노미야는 연락처라도 알려주든지,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려달라며 그를 계속해서 닦달했다. 나 당장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해요. 마지막으로 니노미야의 입을 떠난 문장은 마치 절규처럼 들렸다. 그는 니노미야의 노성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자꾸만 돌렸다. 마치 이런 전화를 받을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어디까지 알아요? 그렇게 물었다. 뭘요? 니노미야가 대답했다. 사쿠라이에 대해서요.
아무것도.
여태까지 웃음 띈 목소리로 니노미야에게 대답하던 그는 이제 사뭇 진지해진 톤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모르는군요. 아무것도. 쇼가 왜 그만뒀는지도요. 아주 친밀한 사이인 듯 이름만을 대뜸 부르고 있었다.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예민한 상태에서는 거슬릴 만큼, 쇼의 뒷부분을 살짝 질질 끌듯이 발음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쥔 손끝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래요. 아무것도 모른다면 차라리 만나서 아는 편이 낫겠죠. 연락처는 알려주지 못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어요. 지금 메모할 수 있나요? 니노미야는 자리를 뒤집어 엎듯이 하며 펄쩍펄쩍 뛰다가, 아무 고지서 뒷면에 볼펜을 대고 그가 불러주는 곳의 주소를 받아적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이 통상 말하는, 내가 알려줬다고는 하지 말라는 말 같은 것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잘 만나 보라는 말뿐. 조바심이 들어 고맙다는 말 뒤 전화를 급하게 끊고는 받아적은 주소를 들고 주차장으로 뛰쳐내려갔다. 잘 쓰지도 않는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한 자 한 자 입력한 뒤 엑셀을 밟아 출발했다. 신호등에 두 번째 걸렸을 때에서야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걸 알았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새것 같지도 않고 엄청나게 허름하지도 않은, 그냥 무난한 상가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 옆의 건물 소개를 한참 봐도. 사쿠라이가 있을 법한 곳을 몰랐다.
그래서 1층의 세탁소부터 2층의 피아노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방 하나하나를 열어젖히며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운이 좋게도 지금 자리하고 있는 부원장의 할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해 어렸을 적부터 매일 텔레비전에 틀어져 있던 게 바둑 채널이었다면서, 초면에 니노미야를 대뜸 알아보고는, 누가 들어도 이상한 부탁을 턱하니 들어주고 만 것이다. 겁에 질린 초등학생 여아에게 미안하다면서 주머니를 털어 자신도 먹지 않을 목캔디 하나를 건네주었다. 3층의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감고 있는 손님의 얼굴 위에 덮인 수건까지 젖혀 사쿠라이가 아니라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구석자리의 바둑학원을 발견하고 말았다.
왜 바로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았지? 간판을 한 번 확인하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달려갔지만. 층별 소개에 바둑학원 같은 문구는 없었다. 짜증을 내며 터벅터벅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데 들어가려던 그곳에서 누군가가 문을 당겨 열고는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어? 어제 마신 술 탓에 얼굴은 부어 있고. 왠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얼굴엔 짜증이 얹혀 있고, 상가의 모든 가게를 빚쟁이처럼 뒤집어 엎어서 땀이 비져나오고 있는 니노미야 앞에 나타난 건.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춘 사쿠라이였다. 예기치 않은 만남에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도 하기 전에 사쿠라이는 반갑다는 듯 웃으며 니노미야에게 먼저 선뜻 다가왔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오게, 들어가 있어, 라면서 니노미야를 학원 쪽으로 떠밀고는, 사쿠라이는 복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사라졌다. 사쿠라이가 튀어나왔던 문을 밀어 열자 안에는 따각따각 소리를 내는 시계와 시끌벅적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거나 자리를 박차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둑학원이라니. 정말 초등생들 따위를 상대로 바둑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건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사쿠라이는 다시 문에 달린 종을 울리며 돌아왔다. 손에 물기가 덜 말랐다. 멍하니 서 있는 니노미야를, 원생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그 주변을 맴돌면서 질문을 폭격해왔다. 아저씨 뭐에요? 왜 왔어요?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에요? 아저씨도 배울라고 왔어요, 바둑? 아님 아저씨도 막 주의산만이라고 이런 거 배우라고 엄마가 보냈어요? 도대체 어디부터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손바닥으로 그들의 이마를 겨우 밀어내고 있는 걸 보다가 사쿠라이는 원장실 문을 살짝 열면서, 선생님 손님이야, 가서 시킨 것 하고 있어, 라는 말로 그들을 물러나게 했다. 니노미야가 어정쩡한 자세로 사쿠라이를 돌아보자 원생들을 향해 웃어주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니노미야를 바라보더니 고갯짓으로 원장실 안을 가리켰다.
니노미야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사쿠라이는 커피? 녹차? 라고 물었고, 그래서 니노미야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미친 듯이 이 건물을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상기해버린 탓에 그냥 물이면 된다고 대답했다. 정수기 물통에서 공기가 쿨럭 하며 빠지는 소리가 났다. 눈앞에 컵이 놓이자마자 니노미야는 소리치듯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뭐 하냐니. 보면 몰라?”
“그런 걸 묻는 게 아냐.”
“애들 가르치지. 가르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왜 그만뒀어? 아니, 그 전에.”
“그 전에?”
테이블 위에 깔아 둔 유리에 손바닥을 대자 뜨끈뜨끈 열이 오른 손바닥이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말문을 떼기 전에 니노미야는 컵에 담긴 정수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소파에 앉은 니노미야 옆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은 탓에 시야가 조금 더 높았다. 니노미야는 사쿠라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마지막, 실수한 거지? 그렇지?”
“마지막?”
“나랑 한 마지막. 그거 하고 은퇴했잖아.”
“아, 음. 아아. 아아아. 으응.”
“기억 안 나?”
“기억해. 실수 아냐.”
끌고 온 의자에 기대 앉으며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했다. 실수가 아니라고. 그 탓에 니노미야는, ‘무르고 싶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줄게’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실수가 아냐? 근데 어떻게 그런...”
“어떻게 그런 수를 뒀느냐고? 그야 너 기분 나쁘라고 놓은 게 당연하잖아. 기억해? 니노미야 군, 나 컨디션이 무척 안 좋았던 날, 너, 정말 기분 나빴다. 생각도 안 하고 대충대충 뒀던 날. 알지?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어서. 그때까지 경험했던 모든 대국 중에서 가장 열받고, 가장 분하고, 치욕적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니노미야 군을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었지.”
“뭐?”
“기분 나빴어? 그렇다면 됐어.”
“어떤 게...”
“그런 바보 같은 수를 둬야지만 기분 나빠할 것 같았어. 프로라면 절대 두지 않을 법한. 초짜여도 그런 뻔하고 멍청한 수는 두지 않을 테고. 그게 싫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라면, 이번엔 내가 이긴 거라고 해도 되겠지?”
“그렇, 그렇다고, 그렇게 대뜸, 갑자기, 말도 없이 그만둬버릴 것까진 없었잖아!”
기대 앉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사쿠라이는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걱정 마. 그곳을 그만둔 데에 니노미야 군 몫은 하나도 없어. 단순히 무릎이 안 좋아져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야. 다 마셨으면 가 봐도 좋아.”
테이블 위의 유리를 짚은 니노미야의 손에서 땀이 흘러 김이 서렸다. 니노미야는 먼저 원장실을 나서서, 산만하기 짝이 없는 원생들을 다그치지도 않고, 조심스럽지도 않게, 적당히 재주 좋게 달래 다시 자리에 앉히기를 반복하는 사쿠라이의 뒤통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구역질이 올라와 인사도 하지 못하고 학원을 뛰쳐나왔다.
관리가 잘 된 상가 화장실 제일 구석칸, 구석이라고 해 봤자 두 개 칸 중에 더 안쪽에 있는 칸일 뿐이지만, 엎드려 한참 속을 게워낸 니노미야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오늘 입고 나온 자켓이 어제 입은 자켓이 아니고, 사쿠라이가 있는 곳으로 오느라 하도 급하게 집에서 나와, 차마 지갑도 들고 오지 않았으며, 그러니 더욱이 담배 따위는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1층에 다시 다다랐을 즈음에서야 뒷목을 적신 땀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어서, 몸을 부르르 떤 니노미야는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은 손으로 땀을 훔쳐, 허벅지 근처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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