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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2025. 07. 13.
단란한 3인 가정. 아담하고 단촐한 단독 주택. 가지런한 글씨체로 새겨진 음각의 명패. 주말에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마당을 건너 들려오고, 때때로 그 앞의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 고기 냄새가 풍기는 그린 듯한 평균의 가족.
정해진 시간에 같이 일어나 밥을 먹고. 가장은 출근하며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헤어지고,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등원. 아버지가 늘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하원시키러 찾아오고, 가방을 들어주는 등 사소한 것들을 해줘버릇하지 말라고 하던 아내의 말은 새까맣게 잊은 듯이 덥석, 아이의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로, 혹시나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쪽 손을 꼭 잡고서 귀가하는 그 모습.
어딘가 전혀 틈이라고는 있어 보이지 않는 규범적인 모양.
“세나 말야. 반에서 칭찬 스티커, 제일 먼저 다 모았다잖아.”
“칭찬 스티커?”
“사나다 선생님이. 선생님도, 그렇게 빨리 모으는 애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뭐를 해 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선생님도 경력이 얼마 안 되시고, 내가 그래서 원장 선생님이랑 얘기를 한 번 해 보세요, 뭐,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렇구나. 여보가 하원시키면 내가 그런 얘기를 하나도 못 듣네. 아침엔 그럴 시간도 없구.”
“그럼 뭐... 자기가 하원시킬래? 나는 아무 쪽이나 괜찮은데. 나 출근할 때 등원하면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기는 한데, 뭐, 딱히 할 것도 없구, 당분간 내가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응, 나쁘지 않지. 생각해 보니까 그런 얘기는 나보다 자기가 듣는 게 낫고.”
사쿠라이 쇼. 사쿠라이 메구미. 그리고 사쿠라이 세나.
하나 셋, 그리고 둘. 지금껏 모든 것을 반반, 시소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려는 것처럼 함께해왔다. 서로 무던한 부분과 신경 쓰는 부분이 얼추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것도 없었고, 그는 오히려 기꺼이 더 받아들 준비도 되어 있었다.
공들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처절하게 완성해낸 가정도 아니다. 계획한 부분은 충실히 이행했고, 그것 이외의 돌발 상황들은 기꺼이 즉흥적으로 대처해왔다. 그래, 이정도면 만족스러운 가정이다. 아이를 하원시키던 그 시간.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결혼 이래로 처음 맞이하는, 가정에서 등을 돌리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가정에서 등을 돌린다, 라고 해서, 불륜 같은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불륜에 가깝겠지만, 만약 메구미가 그 현장을 발견한다고 해도, 어느 쪽을 질책해야 할지 분명 산뜻하게 갈라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것은 메구미와 결혼하기 이전의 연속이고, 호적을 합치기 전이니, 못해도 5년은 훌쩍 지나 버린 것이었다.
도무지 안정적인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갈증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엄격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 이후로 체벌은 그만두었었다. 그러니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종아리나 손바닥을 얇은 회초리로 쌕 소리가 나도록 맞았던 것은, 분명 초등 저학년에서 멈춰 있다. 사립 학원 재단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머리가 커 갈수록 되려 폭력은 삼갈 수밖에 없었다. 그 갈증의 단초. 그 아지랑이의 시발점을 찾아내자면 분명 6년간이나 계속해왔던 축구부겠지, 하고, 그는 멋대로 결론지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그가 고통을, 폭력을 갈구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근거, 또는 원시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말로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이 존재해야지만, 스스로 일종의 하자라고 생각하지만서도 그만두거나 떨쳐낼 수가 없는 이 피학에의 추종을, 평범하고 정상적인 자신에게서 분리해낼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자신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으니까.
해봤자 볼보이만 주구장창, 쓰러진 콘들을 재빠르게 다시 세우거나, 주전의 물병을 서둘러 건네 주고 던지듯 되돌려주는 그것들을 다시 받아 정렬해놓는 것만을 하던 1학년 때, 누군가의 실수로 심기가 뒤틀린 선배에 의해 일동 얼차려를 받은 기억.
사쿠라이는 그것을 원흉이라고 짐작한다.
아랫입술을 하도 세게 깨물어 뜯겨 나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맞았다. 축구부 주제에 어디선가 빌려 온 야구 배트가 가격한 허벅지 뒷편을 교복 바지 아래 숨겨 조심히 집으로 돌아온 뒤, 한 손으로는 까진 살갗과 부어오른 피부, 물들기 시작하는 일자의 멍자국을 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기를 쥐었다. 장담컨대 인생에서 그때만큼 빨리 발기하고, 순식간에 흥분하고, 금세 싸버린 적은 두 번 다시 없을 테다. 동시에 그만큼의 수치심이 고개를 치켜든 적도, 이따위 것으로 자위를 행해버렸다는 인간으로의 자존심이 구겨진 적도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를 먹으며 사쿠라이에게 폭력을 가할 사람은 점점 사라졌다. 부활동을 그만두었을 때는, 그래, 축구라는 스포츠, 운동이라는 움직임에 의해 터져나온 아드레날린이, 사춘기라는 2차 성징을 맞아 잠시 기형적인 모습으로 발현되었을 뿐, 나는 다시 평범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도 있기야 있었다. 자해로는 재현해낼 수가 없었다. 방심한 때에 파고드는 타인의 침범. 불시에 찾아오는 폭력, 그에 수반되는 고통. 그것은 도무지 스스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 친한 친구, 말하자면 어디서 몰래 에로 비디오를 빌려 와 상영회를 개최하듯 굴었던, 그때 정말 단순히 사춘기 세글자에 모든 것을 위탁해버리고 단체로 자신의 성기를 쥐고 흔들었던 바보 같은 기억의 주동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러니 나를 아주 아프게 때려 달라, 무릎을 꿇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참았다. 무식하게 모른 척했다. 속에서 아우성치는 작은 괴물 녀석을 꼭꼭 어딘가에 닫아 가둬 두고 모른 척했다. 그 겨울. 참으로 혹독했어서 그럴 마음도 사라질 법한 환경인 것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그 빗장은 성인이라는 두 글자 단어가 몰래 빼어 어딘가로 던져 버렸다. 사쿠라이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믿었다.
정체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피학적인 성향이 있고, 세간에서는 '마조히스트'라고 부르는 그것이며, 호된 취급을 당해야지만 발기할 수 있고,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지만 흥분할 수 있으며, 더욱이는 신체적, 육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삼켜야지만 사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쿠라이 자신이 받아들이고, 인지하고, 이해했으며, 철저하게 앞뒤를 구분해낼 수 있게 된 것을.
머리 하나는 잘 굴러간다고 자부했다. 세상에서 성인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이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따라붙었다. 어느 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채로 일어났더니 목덜미가 머리보다 더 욱신거려서 발에 채이는 게 뭔지도 모르고 욕실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 봤을 때,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손자국을 발견하고는, 번개라도 맞은 듯 퍼뜩 정신이 들었던 것이다.
방금 자신이 욕실로 걸어오면서 쳤던 그것은 어젯밤 자신에게 폭력을 제공해 준, 이름도 얼굴도 본 적 없는 모르는 남자였고, 지금 자신이 두 발 디디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도 모를, 도대체 아침인지 밤인지 햇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아 괜히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한 모텔이라는 것도, 줄줄이 굴비처럼 어젯밤의 어렴풋한 기억에서 전부 끄집어낼 수 있었다.
남자는 얼마나 퍼마신 것인지 사쿠라이가 꽤 거세게 걷어찼는데도 미동도 없이,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사쿠라이는 급히 짐을 가방에 쓸어담아 챙기고, 어수선하게 목 언저리를 가린 채 택시에 몸을 실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목덜미에 선연히 새겨진 멍자국이 말끔하게 사라질 때까지, 날씨가 급변하는 도쿄에서, 사쿠라이는 어쩔 수 없이 폴라티를 껴입거나 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있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뒷덜미가 늘 푹 젖어 있었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사쿠라이는 메구미와 만나기 전까지 그런 생활들을 반복해 왔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성향자들 사이에 끼어들면 자연스레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마련이지만 사쿠라이에게는 그런 시선마저 기꺼웠다. 부족해! 늘 그렇게 생각했다. 모자라! 호텔 바닥 융단에 볼을 마주대면서도, ‘얼굴은...’ 이라고 덧붙일 정신이 있었다.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었는지, 혼자서 달궈진 철판 위라도 걷는 건지, 같은 '성향자'들을 찾아 고통을 받아가는 사쿠라이는 늘 그렇게 구분선을 그었다. 만족이 안 돼. 누구든 사회에서 사용하는 흔히 말해 페르소나라든가 그런 것쯤 하나씩 있지만. 사쿠라이의 경우에는 미묘하게 달랐다. 다르다고 할까... 넓게 보면 같은 말이라고 해도.
소름끼칠 정도로 두 가지의 사쿠라이 쇼를, 그 스스로 분리해낸다. 사회인으로의 사쿠라이. 쾌락에 바닥을 기어다니고 남의 침을 맞으며 신음하는 사쿠라이. 그 둘은 분명히 다른 존재라고, 스스로가 그 앞뒤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쥐어뜯어낸 것이다. 그 피학적인 사쿠라이는 어쩌면 그 사회적 자아와의 분리를 기꺼워했을지도 모른다.
메구미와 만나기 전까지는, 같은 사람과 서로 합의하는 바가 동일하면 제법 오래도 만날 수 있었다. 연인이라든가 그런 간지러운 수식어를 붙일 사이는 아니었다. 상대는 스스로가 흥분하기 위해 사쿠라이를 이용했고 사쿠라이는 반대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 것뿐이다. 메구미와 교제하고 나서도 몇 번 더 만남을 가진 적도 있지만. 도무지 들킬까 지레 겁먹어 갈수록 신경줄이 날카로워지는 탓에 어쩔 수 없이 한쪽을 포기하고야 만 것이었다.
그렇게 졸업이 다가오고, 취직이 다가오고, 대학을 넘어서 사회라는 관문에 발을 내디뎌야만 할 때는, 꺼진 불도 물에 집어넣어야만 하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성격상, 차라리 매번 모르는 사람인 게 낫겠다는 판단도 했다. 상대도 엄연한 사회인이라면, 그정도의 구분은 자신 스스로도 해낼 것이다.
매번 다른 사람에게 피학적인 섹스를 당하며, 사쿠라이는 자신의 갈증을 달래왔다.
해가 정수리에 뜬 사막에서 500미리 페트병을 엎지르는 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회사 건물 9층의 흡연실 제일 구석 벽자리, 유리에도 휴대폰 화면이 반사되지 않을 그런 자리를 찾아 선 사쿠라이가 아이코스에 방금 전까지 꽂혀 있던 꽁초를 빼내 버리고 한 대 더 꽂으면서, 머뭇대다가 스크롤을 내려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던 것이, 그 전까지는 상호 합의 하에 순전히 쌍방 쾌락을 위한 가학과 피학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사쿠라이에게 조건이 달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일종의 계약 관계를 체결해야만 했다. 사쿠라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정도를 요구하면, 상대는 약간의 보수를 받고 그것을 수락했다.
퇴근해 세나를 하원시키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 가끔은 운동이라든가 쇼핑이라든가, 장을 보러 간 메구미를 기다리던 시간까지 포함해, 늘 함께하는 3인의 식사 시간 전까지. 딱히 특이하게 짧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넉넉한 시간도 아니었다.
그것이 사쿠라이의 조건이었다.
처음 온 남자는 너무 느긋해서 사쿠라이 쪽이 되려 플레이 도중 성급하게 재촉했다. 갑작스레 잠에서라도 깨어난 듯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라도 지를 듯한 사쿠라이를 멀뚱히 바라보던 남자는 흥이 식었는지 그럼 그만하죠, 뭐, 하면서 옷을 챙겨 입었다. 사쿠라이는 거기다 대고 아냐! 여기서 끝내라는 말이 아니었어! 라고 할 수가 없어서, 자신이 먼저 나갈 요량으로 빠르게 벨트 잠금쇠를 물렸다. 서둘러 나가려는 사쿠라이가 서류 가방을 집어들었을 때, 저기요, 라면서 남자는 사쿠라이를 붙잡았다. 돈은 원래대로 주시는 거죠? 너무나도 속물적인 만남에 그보다도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설 정도로 화를 눌러 참은 사쿠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보낼 테니 잘 받도록 해요, 라고 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문을 열고 귀가하는 사쿠라이의 얼굴이 영 곱지 않자 메구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 있냐 물었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서류 가방을 현관에 살짝 내려 두고 왼손으로 미간 사이를 문지르면서, 별것 아냐, 회사에서 좀, 이라고 어영부영 넘어갔다. 메구미는 어떤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래. 나의 아내는 나를 의심하지 못한다.
두 번째 남자는 반대로 자신이 더 조급해하길래, 사쿠라이는 벌긋해진 허벅지를 내려다보다가 무릎을 꿇은 채로 그에게 조금만 천천히,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눈치도 없게, 음, 이것도 플레이의 일종! 그렇게 생각했는지, 전혀 속도를 늦춰 주지 않았다. 말귀를 하나도 못 알아먹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남자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발바닥의 옴폭 파인 곳으로 사쿠라이의 성기를 눌러 밟듯이 하자 그런 잡다한 생각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덕분에 남쪽 출구 흡연실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서너 번째 남자들은 그저 그랬다. 무난해서 탈이랄까. 어떻게 해도 사쿠라이가 원하는 것과 가학성 소지자들의 지향점이 아귀가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대체 어떤 걸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일전의 대학생은 그렇게 말하며 거의 눈물을 흩뿌리듯 뛰쳐나갔다. 이봐! 울고 싶은 건 내 쪽이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으니까.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고. 전달받은 페이페이에 돈을 보냈다.
메구미는 취미가 없어 뵈듯 하는 남편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덕분에 야금야금 용돈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일일이 고백하지 않아도 되었다. 골프 같은 거 상사들이 안 불러내? 그런 질문을 두어 번 받은 적도 있지만 대학 시절의 사쿠라이를 아는 메구미는 답변이 시원찮자 별일 없다는 것으로 간주해버리고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날 사쿠라이는 속으로 이번에 제대로 아다리가 맞지 않으면 이런 악취미는 끊어버리자, 생각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잘 모르는 피학적 습성을 몇 번이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기는 게 슬슬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어서. 조금 더 날카로운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짓,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사쿠라이도 스스로가 이상할 정도로 무딘 구석이 있다는 자각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저 잠깐 고삐를 놓쳤을 뿐이라고 취급해 버릴 뿐이고.
약속 장소에서 15분은 더 일찍 와서 기다리던 사쿠라이는, 정각에서 3분쯤을 남기고 어슬렁대며 걸어오는 남자가 설마 상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마지막이 이렇게 찝찝하게 눈앞에서 말도 없이 캔슬인가, 라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던 그 남자가 비뚤게 썼던 캡모자를 바싹 당겨 쓰며 한발짝 다가와 아래에서 위로, 사쿠라이와 눈을 맞추며 살짝 웃었다.
“맞죠?”
“에?”
“쇼상. 모르는 척하길래 나도 모르는 척 좀 해 봤어요. 저, 오늘 약속요.”
“아아. 나는 또 안 오는 줄 알았어요.”
“내가 늦은 게 아니고 그쪽이 너무 일찍 온 거예요. 어디로 가요?”
니노, 그랬다. 작대기 세 개로 이름이 끝나는 단순한 호칭. 셔츠 앞주머니에는 담뱃갑이 들어 있다. 라이터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는 걸 보아 분명 담뱃갑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가 모자를 또 다시 고쳐 쓴다. 사쿠라이는 말 없이 그의 오른쪽 팔꿈치를 뒤에서 잡아 이끌었다. 미리 대실한 방으로 그를 잡아끌어 넣자, 아아 내가 당하는 쪽? 이라며, 왠지 조급해하는 듯한 사쿠라이를 달래 주었다. 그럴 리 없잖아, 하며, 딱 봐도 자신보다 너덧은 너끈히 어려 보이는 그에게 멋대로 말끝을 잘라낸 사쿠라이는 서류가방을 문앞에 던져 두고, 그 옆에 구두도 얌전히 벗어 둔 채, 시키지도 않았지만 무릎을 꿇었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이번엔 사쿠라이가 그를 올려다 보고 있다. 그의 살짝 굽은 입꼬리가 사르르 올라간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때. 눈앞이 번쩍번쩍거려서 정전이라도 난 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멱살을 잡혀, 싱글보다도 더 좁게 느껴지는 싱글에 던져지듯 올라가게 되었을 때, 사쿠라이는 눈을 홉뜨며 초점을 남자의 캡모자 로고에 맞추려고 했다. 何見てんの?그래, 니노라고 했던 그 남자는 허락도 안 했는데 멋대로 말끝을 잘라낸 채였다. 이미 명치가 자근자근 아려오는 사쿠라이는 아무것도, 라고 대답했지만, 니노는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게 아니었던 듯했다.
또 눈을 한 번 더 감았을 때. 불현듯 사쿠라이는 이십여년 전 엎드려뻗쳐 자세를 십오 분 넘게 지속하느라 파르르 떨리던 팔뚝의 느낌을 되새겼다. 엄청나게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축구부 선배가 전혀 다른 야차 같은 모습으로 배트를 휘두르던 때의 감각을 다시 얻고야 말았다. 실눈을 뜨자 아직도 캡모자를 쓰고 있는 채의 니노 뒤로 써금써금한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덕분에 그 얼굴이 역광으로 전부 가려져, 그때의 그 선배를 겹쳐 보고 말았다. 눈을 제대로 떴을 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그건 전혀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사쿠라이는 여태까지 자신을 이렇게 부끄럽게 만들어 줄 사람을. 특별히 어떤 남자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렸을 적 배트를 휘두른 축구부 주장을 찾을 수는 없으니 그 대타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웃돈을 줘 가면서. 덧없는 일회성 만남을 지근지근 이어가면서. 그래 그것도 질려, 이젠 이번에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조히즘의 굴레는 스스로 벗어 태워버리자, 그렇게 다짐한 사쿠라이의 앞에.
니노미야, 니노미야라는 남자가 놀랍게도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다.
사쿠라이가 정신을 껌뻑 잃었다가 다시 찾을 무렵에도 니노미야는 처음 그대로였다. 뭣하면 이런 것에 흥미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표정에 되려 사쿠라이가 한 번 더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 손길에 정액을 두 번이나 싸질렀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 정도로,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한번 씻고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재떨이를 찾아 좁은 방을 휘적거렸다. 그래요... 사쿠라이는 힘이 쪽 빠진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주 눈치가 좋게도 그는 먼저 정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벗겨 어딘가에 던져 둔 채였다. 주름이 조금 졌지만 그것 정도야 메구미는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욕실에서 나오는 사쿠라이를 반기는 것은 담배 연기였다. 아이스블라스트다. 사쿠라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연기를 음미하듯 들이마시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약간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연기를 내뿜고는 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금연?”
“갈아탔어. 아이코스로...”
“에에.. 뭐하러?”
“애가 있으니까.”
“으응. 애가 있는데도?”
그 뒤에 올 말은 안 들어도 라디오였다. 애가 있는데도 이런 짓을 하다니, 신기하네요. 그러나 사쿠라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가지요? 사쿠라이가 팽개치듯 내던진 구두주걱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손에 쥐자. 사쿠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끝.”
“아니. 그런 의미 아니야.”
“그래요 그럼. 늦지 않게 들어가세요. 애가 기다리겠네?”
멍하니 서 있는 사쿠라이를 뒤로 하고 그는 또 휘적휘적, 저 멀리 사라져갔다.
그 다음, 사쿠라이는 처음으로 같은 사람을 다시 한 번 더 불러내고 말았다. 그때의 그것! 축구부의 선배를 겹쳐 본 것이 실수인지 정답이었는지 알기 위해서.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런 핑계를 속으로 대 가면서. 니노, 그를 한 번 더 불러냈다. 그는 저번과 같이 씩 웃으며. 잊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싸구려 플라스틱 구두주걱을 손에 쥐었다.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라고 생각하면서, 사쿠라이는 뒷 허벅지를 내벌려 주고 있었다.
착각도 아니었고 실수도 아니었다. 니노미야군은 절대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설픈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사쿠라이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그 안에 들어가 한번 확인해 보기라도 한 듯, 그는 아주 확실하게, 그러나 냉정하고, 분명히 다정하게, 강렬하고 만족스러운 폭력을 선사했다.
사쿠라이가 그를 첫날 이후로 사흘 연달아 내내 불러내자, 마지막엔 니노미야가 먼저 사쿠라이의 자켓 안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냈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어 눌러 발신하고는, 나중에 저장하라며 다시 휴대전화를 있던 곳에 돌려 두었다. 이제는 직접 불러요!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좋다고 냉큼 받아들어 그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너댓 번. 이젠 그의 이름이 휴대전화 액정에 비치면 자신도 모르게 침샘이 자극된다. 그걸 자각한 순간..
그때, 순진하게 고민했다. 더 이상 이어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상식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며 이렇게 끝내버리면 나중엔 절대 이것 이상의 달콤한 폭력을 선사해 줄 사람을 만날 일 없다는, 마조히스트로의 본능이 치열하게 둘도 없게.
일주일쯤 거리를 두었는데. 메구미가 그때쯤, 요즘은 담배냄새가 안 나네, 라는 말을 던졌다. 아, 요즘은 흡연실에 잘 안 가서. 그렇게 말은 했지만, 눈치를 챈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메구미는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일주일이 두 번 지나자. 니노미야군에게서 먼저 연락이 도착한다. 忙しいの?それとももう満足した?둘 다 아니라고 냉큼 답장해 버릴 뻔했다. 사쿠라이는, 이제, 최상의 폭력을 맛봤으니까, 니노미야군과 만나지만 않는다면 이제 그만둘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 연락에는 답장하지 않았지만. 읽음 표시는 답장을 대신했다.
솔직히 말하면 손끝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그립다. 맛본 적 없던 쾌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고통. 그때 그 사람이 겹쳐지는 누군가. 그러나 지레 겁먹었다. 너무 깊게 빠지면 떨쳐낼 수가 없을까 봐, 미리 슬슬 발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지.....
“아. 안녕요.”
“너 여기서 뭐 해?”
“하도 안 부르길래 다른 사람 생겼나 해서...”
“그럴 리 없잖아! 그 전에 집은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요. 뭐.”
“어쩌자고 집... 가정이라도 파탄내려는 거야?”
금세라도 드잡이질을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는데. 누군가 그곳에 돌을 하나 던져 파장을 낸다.
“아빠!”
“오늘 일찍 왔네? 옆엔 누구야? 아는 사람?”
문앞에서 소리가 나자 메구미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문이 열리자 메구미보다도 빠르게 세나가 달려나와 사쿠라이의 종아리에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안겨들었다.
“앗. 처음 뵙겠슴다. 니노미야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사촌동생인데요, 저어, 일이 생겨서 상경했는데, 지금 당장 갈 곳을 못 구해가지고, 신세를 질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하지.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어떡해요?”
“아, 어. 어어. 나도 오늘 알게 돼서. 미안해. 저어 손님방, 아직 비어 있던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해 버렸어.”
“아아. 비어 있지. 미안하게, 짐들이 좀 있긴 한데, 괜찮으면 거기서 지내요! 치워 주라고 할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세나를 읏차 안아 든 사쿠라이를 뒤로 하고,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보스턴백 하나를 다시 추켜든 니노미야는, 집주인보다도 먼저 현관문을 열고 슬렁슬렁 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메구미는 상냥하게 니노미야에게 손님방을 안내해 주고, 거실에 세나를 내려 둔 사쿠라이에게 손님방의 짐을 좀 치워 주라 하였다. 사쿠라이는 그래, 알겠어, 옷부터 갈아입구, 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방을 엉성하게 둘러보던 니노미야는 소리를 죽이고 사쿠라이를 따라 들어가, 방문을 탁 닫았다.
“내쫓지 않네요?”
“사촌동생이라고 대뜸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제일 무난하잖아요. 그리구 그거 빼고는 진짜 갈 곳이 없는 건 맞거든요. 급료일이 좀 남아서 아직 수중에 돈도 쫌 부족하고 그래서.”
“그러면 그런 데에서 만난 사람 집을 연락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서는, 어? 신세 좀 지겠다, 그 한마디로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는 건 괜찮고?”
“흠.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떤 점에서!”
쉿... 밖에 들려요. 그런 뜻으로 니노미야가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사쿠라이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의 볼륨을 확 죽여 버리고 말았다. 이런 신분증에 잉크도 안 말랐을 것 같은 놈 한마디에! 그러나 일종의 만족감은 사쿠라이 몰래 뒤통수에서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그래! 솔직히 그리웠어. 배고팠어. 그렇게 말해버릴 것만 같다. 그런 느낌. 직감. 그것들은 사쿠라이를 배신하지 않았다.
“지내다 보면 알 거예요. 잘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니노미야가 성큼성큼 다가와 사쿠라이 앞에 섰다. 거의 다 풀린 넥타이를 다시 양손으로 쥐더니, 목을 졸라 버릴 듯, 끝까지 확 밀어 조였다. 기습적으로 당한 탓에 컥, 소리를 낸 사쿠라이는 척수반사에 의해 눈물이 맺힌 채로 니노미야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니노미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그 넥타이를 풀어 옷장에 걸어 주고는, 얼른 갈아입고 나오세요, 방 치워야죠, 라고, 세나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외치며, 한 번도 손님이 이틀 이상 머물고 간 적 없는 손님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쿠라이는 셔츠 단추를 신경질적으로 풀러가며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옷장에 양 손을 턱 올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말았다.
섰다... 방금, 넥타이에 잠깐 목이 졸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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