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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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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9.




남자는 가방 하나에 목도리 하나를 두른 단촐한 차림으로 왔다. 이 동네에는 무슨 볼일이냐는 불호령 같은 말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매를 배우러 왔습니다, 했다. 매잡이를 배우러 왔습니다, 도 아니고 매를 배우러 왔습니다, 였다. 단단한 한마디에 우리 할아버지는 마음이 반쯤 열린 듯했지만, 부러 엄한 목소리로 우리는 견습은 받지 않고 하물며 하숙은 더욱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짐작했던 건지, 못지 않게 엄포를 놓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게 진짜일 리 없다는 걸 알았지만 매잡이 견습을 받는 유파가 도심에서 이곳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이미 많이 있고, 또 그곳들은 제법 인기가 되어 절찬 장사 중인 것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이곳까지 찾아와 머리를 숙이는 남자를 내칠 수 없었다.

아직 몸이 다 크지 않아 자신에게는 준 적 없는 할아버지가 낯선 남자에게는 거리낌 없이 그러마고 하는 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츠모토는 불퉁한 얼굴로 남자를 이끌었다.



여기예요.

너도 매잡이니?

저는 아직 할아버지가 안 된대요. 나이가 덜 찼어요.

너한테 맡겼다가는 장사치들이 냉큼 채 갈까 싶다.

뭐를요? 매를요?

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남자는 방을 치워 쓸 만하게 해야겠다며 마츠모토를 되돌려 보냈다. 어어 하며 방 밖으로 밀려난 마츠모토는 그제야 그게 영 못미덥다는 말이었다는 알아서, 괜시리 발에 채이는 자갈에 화풀이를 하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이 마을에서 매잡이는 숙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잡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어떤 사람은 매잡이를 준비하려다 털이꾼만 하고 마치기도 한다. 마츠모토네 집은 그런 점에서 나름 명문가로, 국가에 차출당해 공무원이 된 마츠모토의 아버지도 매잡이였고, 할아버지는 은퇴한 매잡이였으며, 그 위로도 한참을 올라가도 죄 매잡이뿐이었다.

그러므로 마츠모토는 당연스럽게 생각하여 언젠가는 자신도 팔에 그 다리를 감게 만들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외지인이 대뜸 매 잡는 법을 배우겠다니. 매잡이를 배우겠다니. 택도 없는 소리다. 



아무쪼록 매를 부리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마츠모토의 아버지도 종종 어려운 일로 밥 벌어먹고 산다며 한탄하고는 했다. 이 동네 이 가족은 대대손손 이 일을 해 왔으니 달리 선택지가 없다손 쳐도, 이 남자는 왜 하필 지금 매를 배우겠다고 온 걸까. 이곳에는 생면부지 남밖에 없는데도 남자는 잘만 적응했다. 그러고 보니 혈혈단신 혼자 와 놓고, 누군가에게 연락 따위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남자가 마음에 든 것 같으니 그를 경계할 수 있는 건 마츠모토뿐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수틀리면 당장 꼬투리를 잡아 내쫓아버리겠다고.




저기. 꼬맹이. 연고랑 반창고 좀 꺼내 줘라.

어디 다쳤어요?

응. 긁혔어, 발톱에.

대 보세요.

남자는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마츠모토 앞에 앉았다. 깊게 긁힌 건 아니라 흉은 지지 않을 테지만 한동안은 반창고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자는 눈 한 번 깜짝 안 하고 자기 앞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는 마츠모토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손을 지난 애들이 두자릿수인데 우리 할아버지도 종종 긁히고 깨물려요.

조련이 덜 돼서?

아닐 거예요. 할아버지 왼쪽 볼에 좀 큰 흉터 있죠? 그거는 3년 전에 길들였던 놈이 떠나기 하루 전에 냅다 긁어서 생긴 거예요.

그냥 가기 아쉬웠나 보네.

다 됐어요.

넌 아쉬웠던 적 없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구급상자를 정리하던 마츠모토의 손이 멈칫했다. 뭘 물어보는 걸까? 매에 대해서? 아니면 나에 대해서? 마츠모토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대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너 매 못 잡아 봤잖아. 매 말고 다른 거.

있어요.

뭔데?

… 몰라요.

싱겁기는.

마츠모토가 시선을 홱 돌리자 덩달아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 있니?

아뇨.

나랑 장에 가자. 어르신이 시킨 게 있어.

뭔데요?

보면 알지. 갈 거니?

알겠어요. 겉옷 좀 입구요.

알겠다는 말을 듣자 남자가 웬일로 씩 호쾌하게 웃는다. 겉옷을 챙겨 마당으로 나오자 남자의 팔에는 볼을 시원하게 긁은 장본인이 앉아 있었다.

이 놈이랑 그 녀석들 훈련할 때 쓸 고기가 다 떨어져서 좀 사와야 할 것 같아.

할아버지가 얘를 데려가래요?

응. 인중다처人衆多處랜다. 맛있는 거 사 줄게.





산으로부터 받은 매에게 시치미를 붙인 이후로 남자는 시치미가 달린 쪽 꽁지를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그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날개 한 번 푸드덕거리는 일이 없었다.

자네는 여기 언제까지 있을 텐가?

언제까지 있는 게 제일 적당하겠습니까?

평생 매나 잡고 살 거 아니면은, 적어두 내년엔 여기 있음 안 되겠지.

예. 그럼 고민해보겠습니다.

남자는 별로 아쉬워보이는 얼굴이 아니었다. 고민도 얼마 하지 않더니 할아버지께 내년 이맘때쯤 떠나겠다고 했다. 마당을 쓰는 척하며 둘을 훔쳐보던 마츠모토에게 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나 가기 전에 너도 매를 부려 봐야지? 하고는 냉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지원하고 법적인 제재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알더라도 시연날에나 사람이 모이지 평소에는 여즉 매잡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까 이 마을에 시연날도 아닌데 제발로 걸어와 매를 배우겠다고 한 남자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돌아가면서 집에 들러 남자와 이야기했다. 솔직히 귀찮거나 짜증 날 만도 했지만 남자는 술도 한 잔 마시지 않고 동네 어른들을 상대했다.

마츠모토는 평생 가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느물느물한 말솜씨. 시바타 아저씨는 깍듯한 걸 좋아하니 술잔도 매번 낮추고. 사와무라 아저씨는 조금 예의없게 구는 걸 좋아하니, 군소리를 두세 번 얹어 타박하고. 화내려는 듯하면 먼저 무릎을 내어 주고.

희한한 사람이다. 아무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를.





어느 날 새벽 큰 소란이 났다.

나는 잠들어 있느라 아침에서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형이

돌아왔다.





*



제발로 그 동네를 뛰쳐나오던 날은 시시때때로 꿈이 되어 나타난다. 모든 게 흐릿해도 스스로를 속여가며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만큼은 전에 없이 생생하다. 이 꿈을 꿀 때마다 그곳을 뛰쳐나온 이유를 상기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고 자란 터전이 그리웠다. 되물음 없이 존재하는 고향을 재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됐다. 그 이유에 자꾸만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다만 최근 들어 유독 꿈이 잦다. 새벽에 매번 깨어나 흥건해진 침구를 빼내고 몸을 닦고 다시 잠드는 일련의 흐름이 몸에 배인 지도 어느 정도 되었다.

아, 불길하다. 그곳으로는 이제 돌아가지 않으려 했는데.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뼈에 박힌 고향의 목소리가 자꾸만. 무슨 염치로 고개 빳빳이 들고 다시 돌아가랴? 귀향하고 싶은 마음과 염치를 아는 자아가 수도 없이 맞부딪힌다. 결국은 수치를 모르는 칠푼이마냥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곳에 있든 그렇지 않든 같은 이유로 이렇게 가슴이 짓눌리며 살 바에야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다고 스스로를 자꾸만 세뇌했다. 

돌아가는 길에 오노 씨에게 연락했다.

집에 가고 있어요.

그래?

네. 별일 없으시죠?

별일 없을 거 잘 알면서 그러네.

멀리도 도망 나온 탓에 돌아가는 길이 꽤 오래 걸렸다. 기차를 한 번, 버스를 두 번 타고 나면 산길을 올라야 했다. 짐을 거의 다 버리듯 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는 변한 것이 없었다. 다른 집보다 꽤 아래쪽에 있어 제일 먼저 얼굴을 비출 수 있었다. 

아버지.

몇 년만에 입 밖으로 꺼내 보는 호칭인가? 새삼스러워 입 속에서 혀를 자꾸만 굴렸다. 얼마 안 있어 우당탕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가족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나는 몰매라도 맞을까 싶어 몸을 조금 웅크렸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다들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짐을 들어 주었고 누군가는 울어 주었다. 그것에 적응이 안 되어서... 더욱 입을 다물고 빈방으로 갔다. 

비어 있을 방으로 갔다. 그러나 그 방은 비어 있지 않았다.

정갈한 살림살이. 누군가 이미 꽤 자리잡은 듯한 생활감의 소박한 방.

그럴 리 없어!

이 방은 내가 쓰던 방이잖아...

닫혀가던 문을 뒤에서 누군가가 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달빛이 역광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쬔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코끝이 사쿠라이를 향하고 있는 것만 알 수 있다. 사쿠라이는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벌떡 일어나, 그보다 시선이 높아졌다. 그제야 그 얼굴이 잘만 보인다.

매끈하고 제법 점이 있고. 입술이 얇고 어딘가 장난치는 듯한 얼굴.

누구?

내가 할 말이에요!

그러자 마츠모토가. 그래. 내가 돌아오고 나서는 첫 대면이었는데. 마츠모토가 저 멀리서 달려오며 말했다.

싸우지 마!

싸운 적 없어.

소개해 줄게. 이쪽은 니노미야. 니노미야 카즈나리... 저어... 매를 배운다 해서. 할아버지가 데리고 있어. 우리 집은 빈 방이 없어서 여기를 빌려서. 아저씨도 괜찮다 했고!

난 괜찮다고 한 적 없는데.

형은... 형 나간 지가 언젠데. 소개할게요. 여긴 사쿠라이 쇼라고. 저어.. 이 집. 그니까 아저씨가 묵는 집이 사쿠라이 댁인 건 알죠.

알지.

그 집 장남인데요. 으으... 사연이 좀... 아무튼... 형이 도회지에 나갔다가 돌아와서요.

그래. 나도 도회지 출신이니 그건 잘 알지. 방을 비워 줘야 하나?

아니에요! 일단은. 아저씨들이랑 얘기하는 중이에요.

마츠모토가 달려온 탓에 일단락되고. 통성명도 진행했지만...

서로가 서로에 가진 적대심. 의구심은 해갈될 일이 없었다. 성난 채로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던 사쿠라이를 두고 니노미야는 제 매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그는 그대로 비어 있던 방을 쓰기로 했는데. 어찌저찌해도 자리가 잘 나지 않아서, 결국은 자리를 좀 정리해 형과 그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형은 불만스러워보이는 듯했지만. 어른인 그가 양보해 주는 느낌이 되자 그것이 더 싫은지. 알겠다며 짐을 풀었다.




매사냥 연습으로 다들 땀에 흠뻑 젖어 있었는데. 오늘 참가하지 않은 남자와 형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리려고 했으나 그 기세가 사나워 다가가지도 못하고...

나만이 주춤주춤 그곳으로 걸어갔다.

전통이라고 다 남겨야 돼요?

넌 이게 싫으냐?

네. 싫어요.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전 안 할 거예요, 이런 거.

그래? 그럼 하지 마! 도시로 다시 돌아가라고. 왜 돌아왔어? 응? 

다정하게 사쿠라이의 투정을 듣던 남자는 돌연 야차처럼 변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돌아왔느냐고 말했지만 대답을 들으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래, 왜 돌아왔는지 나한테는 말해 준 적 없지.

아저씨가 뭔데....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 곳에 돌아와서 초치기는.

그 말을 듣자 사쿠라이는 이성이 끊긴 듯 단숨에 날뛰어 남자의 멱살을 쥐었다. 남자는 저항도 안 하고 형이 휘두르는 주먹을 몇 대고 맞아 주었다. 비식비식 웃는 얼굴을 보니 형이 더 아파 보여서... 

난 나도 모르게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대신 주먹을 맞았다.




왜 끼어들었어? 어?

형이랑 아저씨 싸우니까... 어른들 계시니까 그만해.

무슨 상관이야! 저 사람이랑 내가 싸우는 게.

형... 제발. 할아버지도 울 아버지도, 형네 아버지도, 동네 어르신들도 다 좋아해. 그리고 아저씨 좀 있음 간다 했으니까. 형이 참으면 되잖아. 여기 계속 있으려면.

넌 그 애가 불쌍하지도 않니?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일까. 준은 다시 크게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미안하다고 해야 해... 지금 당장 사과해야 돌이킬 수 있어. 그렇지만 머리가 작동을 멈춘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입은 뻐끔대기만 하고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역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한다....

피곤한 것 같은데 얼른 자.

준아.

내일 봐.

준아. 미안해. 잘못했어. 그건 말하면 안 됐어. 미안, 준아!

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나 자신이 철면피 같다.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애가 나에게 소중한 것보다 준에게 더 소중했다.

얼굴이나 닦지.

별안간 낯선 목소리가 지척을 울린다. 달빛에 희게 비치는 손수건이 대뜸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다. 누군지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지만 거친 듯 다정한 손길로 얼굴이 닦이는 게 먼저였다.

꼬맹이는 우는 사람이랑 얘기하기 싫어하던데.

하는 게 아닌가.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함부로 단언하는 걸까? 내가 아무리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고 이 사람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준을 더 오래 봤고 많이 아는 건 내 쪽일 텐데.

심지어 방금 전까지 나랑 싸웠으면서. 내 폭력에 단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 보면 알지. 돌아보지도 않고 자러 가던데.

그게 내가 울어서 그런 건지는 어떻게 아는데요? 내가 울고 있었어요?

응. 나랑 싸울 때도. 만져 봐, 어떤지.

남자는 내 얼굴을 닦아주었던 손수건을 내 손에 욱여넣었다.

한쪽 구석이 물에 적시기라도 한 듯 축축했다. 흠칫 놀라 손수건을 떨어트릴 뻔해 급하게 사과했다.

아하. 그럼 니가 소문의 가출 청소년.

청소년도 아니고 가출한 것도 아니에요.

언급 한 번 없어서 있는 줄 몰랐던 사람이 짐도 얼마 없이 죄 지은 사람마냥 돌아와 놓고 환대받으니 궁금하지 않겠어? 게다가 단숨에 같은 방을 쓰게 됐잖아...

그렇게 따지면 하루아침에 객식구로 들어앉은 그쪽이 더 궁금한데요, 저는. 원래 내 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고....





그 꿈에 짓눌려 막무가내로 돌아온 주제에 막상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곳에 돌아왔다고 그 꿈을 꾸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하는 수 없이 아침 일찍 새벽같이 눈이 떠지면 달리러 나갔다. 그저 하염없이 달렸다. 그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멈추면, 항상 저기 언덕 위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한 손에 매를 앉히고. 처음엔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는데 매일 내가 그곳을 지날 시간에 맞춰 나와 있는 것이었다.

이 새벽에 여기서 뭐하세요.

산책.

걔랑 같이요?

응. 한몸같이 생각하라는데.

잘 때도 같이 자요?

잘 때는 옆에 따로 묶어두지.

내가 오기 전에도 매번 그 언덕으로 산책을 나왔느냐고 물으려다 괜히 의식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끝내고 준에게 물었지만 준은 그 시간에 나와 본 적이 없어 모른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내가 없던 사이 마을의 구성원이 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박탈감에 속이 허전했다. 남자에게 뭘 뺏겼다는 걸까? 준을? 매를? 아버지를? 이 동네를?

... 아이바를?

나로서는 절대 답을 알 수 없다. 

준을 도와 집을 치우거나 녀석들에게 줄 먹이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잔심부름을 다 했는데도 시간이 남으면 어쩔 수 없이 남자와 어르신이 매를 길들이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 속에서 자꾸 역한 것이 밀고 올라온다. 왠지 남자가 싫다.

이곳으로 돌아온 이상 나도 선택을 해야 했다. 바깥에서의 것들을 다 버리고 이곳에서 새로 시작하거나, 다시 돌아보지 않고 떠나거나. 어중간하게 굴고 싶지는 않다. 

하도 시골인 탓에 전파도 잘 터지지 않는 것만 같다. 대학에서 사귄 선배가 겨우 연락을 했다. 

너 어쩔 거냐?

돌아온다면 도와줄게.

정말이지 이런 이유 없는 호의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선배는 첫날부터 나에게 잘해주었다. 지금보다도 더 가시를 세우고, 아무것도 없이 도시로 간 주제에 예민하고 날카롭게 굴었는데도 선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등산복에 선글라스를 쓴 미형의 대학생이라니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경계했을 테지만....

혹시 나를 등쳐먹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도무지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하루는 잔뜩 취해 선배를 붙잡고 왜 잘해 주는 거냐 물었는데 선배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씩 웃으며 너 귀여워서, 라고 했다. 나는 당황해 그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웃음에 멋대로 그 녀석을 겹쳐 보고는, 농담하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날 이후로 선배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그 녀석도 그랬다.

하지만 선배에게 그 녀석을 겹쳐 보는 건 역시 그 녀석에게도 선배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잠을 설쳤다.

도무지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났는데 옆자리가 비어 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남자가 이곳에 온 이후로 담배 같은 걸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날 새벽은 꽤나 인상깊다고 할 수 있다. 사쿠라이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남자는 이내 머쓱하게 웃었다. 

동네에 하나 있는 슈퍼에서 담배야 살 수는 있지만 그 선택지가 오로지 이 동네에 사는 흡연자를 위한 것이라. 사쿠라이가 도회지로 나가 피웠던 담배는 살 수 없었다. 

원래 피웠어요?

응. 여기 와선 가끔.

나도 한 대만요. 여기선 그거 안 팔아서.

남자는 흔쾌히 한 개피를 건네고 손수 불까지 붙여 주었다.

난 끊으려고. 여기 있는 동안은, 이제.

그러더니 라이터를 넣은 담배갑을 던지듯 사쿠라이에게 밀어 건넸다.

너 피워.





여전히 매잡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여기 있으려면 해야 한다. 돌아오면 안 됐던 걸까? 나, 도망가야만 했던 걸까? 모른 척하고. 내팽개치고. 없는 셈 치고, 나랑은 관계 없는 척....

남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긴 왜 왔어요?

보면 알잖아.

그러니까 왜 그걸 하려고 했는데요?

몰라, 나도.

그럼 굳이 왜 여기였어요?

오늘따라 궁금하게 많다, 너.

대답이나 하세요.

누가 알려줘서 왔다, 왜. 됐어?

누가 알려줬어요?

넌 사생활이라는 것도 모르냐?

죄송해요.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래. 알면 됐다.




수확 없는 대화가 끝난다. 바람 차게 부는 소리가 울렸다. 귀가 시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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