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sequence

그렇게 말하면

ns
반뇨타
2022. 10. 29



이가 부러졌다.

치과에 갔더니 유치네요, 발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대답하고는 부러진 이를 뺐다. 아프진 않았다.

그날은 누나를 찾아갔다. 누나를 껴안았다. 누나를 사랑했다. 해가 일찍 졌다.

며칠 동안 이가 빠진 부분을 때때로 내내 혀로 매만졌다. 아무래도 허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로 이를 심을지 그대로 둘지 고민했지만 딱히 불편한 구석은 없어서 그냥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이는 움직일 테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고 얘기해줘서일지도 몰랐다.

퇴근하는 누나를 기다리는 건 가끔 지겹다. 그럴 때는 집 밖으로 나가 아무렇게나 걷는다. 왼쪽으로 걸을지 오른쪽으로 걸을지, 머리보다 발에 맡긴 채로 계속 걷는다. 놀이터가 나오면 잠깐 그네에 앉기도 하고 정 심심하면 전봇대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도 한 대 태우기도 하고 아무튼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누나와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없이 누나의 짐을 들어준다. 누나의 집으로 들어선다. 신발이 나란하다.

나는 저녁을 차리고 누나는 씻는다. 물을 동시에 쓰면 차가울 텐데 여태껏 별말이 없었다. 내가 수저를 내려놓으면 누나가 나온다. 밥을 내려두면 자리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동시에 중얼거린다. 식사 시간에는 적당히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대개 누나가 말하고 내가 듣는다. 내 하루는 심심하다.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누나는 빨래를 걷는다.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분업이 됐다. 

저녁이 다 지나갈 쯤에 누나아 하고 부르면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응, 하고 대답한다. 누우나 하고 부르면 그제야 얼굴을 이쪽으로 돌린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간다. 

누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가만히 있다가 몰래 귀를 깨물면 간지럽다는 듯 몸을 살짝 튼다. 그럴 때 손을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면 틀어진 몸이 다시 돌아온다. 침대로 가서 해. 응. 나는 누나가 시키는 대로 한다.

누나는 좀 고지식한 구석이 있어서 입맞춰주지 않으면 토라질 때가 있다. 몇번 당한 뒤로는 빼먹지 않고 키스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금방 물러진다. 그때는 누나도 내가 부탁하면 들어준다.

빨아주라. 뒷말을 살짝 늘이면서 부탁하면, 들어준다. 싫다는 듯 눈썹을 조금 찌푸려도 거절하지는 않는다. 실은 입이 작고 빠는 힘도 부족해서 그닥이지만 얼굴이 귀여워서 좋다. 약간은 괴롭히고 싶다.

콘돔을 다 끼우면 누나가 먼저 스탠드를 건드린다. 터치식이라 살짝만 만져도 불이 꺼진다. 나는 누나 얼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투정부리면 기분에 따라 아주 약한 불을 켜주거나 못 들은 척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켜주는 날에는 열심히 하고 켜주지 않는 날에는 나도 약간 심통이 난다. 안 보인다는 핑계를 대면서 턱끝이나 목 어딘가를 약하게 깨물어버린다. 누나는 아프다고 나를 밀어내면서, 니가 강아지도 아니고, 라며 투덜댄다. 나는 모른 척한다. 

누나는 끄트머리에 꼭 내 손을 찾아서 잡는다. 그럼 나는 알게 된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는 건 대부분 내 쪽이다. 잘 때는 반듯하게 자도 일어나서 보면 몸을 꼭 한쪽으로 동그랗게 말고 잔다. 침대 밖으로 나서기 전에 그렇게 말린 몸을 다시 반듯하게 해주고 이불도 덮어준다. 

커피 냄새가 식탁을 넘어 침실까지 들어가면 그제야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오분이 지나도 누나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코앞에 들이밀면 그때는 눈을 뜬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것 치고 막상 한번 눈을 뜨면 금세 전원이 들어온다. 토스트 한쪽을 다 먹거나 먹지 못하거나 하고 현관으로 간다. 오늘은 일찍 와아. 나는 별로 의미 없는 투정을 또 던진다. 일이 없어야 일찍 오지. 누나는 빈말도 안 해 준다. 밉다. 잘 다녀오세요, 하고 현관에 쪼그려 앉은 채 얘기하면 꼭 이마에 뽀뽀한 뒤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갈게, 하면서 웃는다. 

나는 누나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나가 없는 누나네 집. 누나가 빠져나가면 별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집이 광활해보인다. 나는 남은 커피를 내 잔에 마저 따르고 티비를 켠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조용해서 참을 수가 없다. 아침 방송은 재미없거나 그렇지 않다. 뉴스는 흥미롭거나 지루하다. 날씨까지 알게 되면 조용한 방송이 나오는 채널을 틀어 둔다. 

나는, 전화가 오면 일하러 나가고 울리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요즘엔 전화가 오지 않는 일이 많다. 

이상하게, 전화가 오지 않았는데도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든 날이었다. 기껏 나가 봤지만 문이 닫혀 있어서 허탈한 마음으로 나온 김에 산책이나 했다. 지나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밥도 주면서 말을 걸었다. 물론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 먹으면 머리를 두어번 손에 비비적대다가 홀랑 사라져버린다. 쓰레기를 들고 걸어다니는 동안 산책하는 개들도 둘인지 셋인지 마주쳤다. 쓰레기통을 찾기까지 조금 걸렸다.

저녁 메뉴를 생각하다가 마트 앞에 도착해버려서 결국 마트 안에서 메뉴를 결정했다. 봉투를 들고 돌아가는데 먼저 가고 있는 누나를 봤다. 누나! 뒤에서 부르자 금세 돌아봤다. 내가 짐을 들고 있어서 누나의 짐은 들어주지 못했다.

저녁은 간단했고 설거지도 금방 끝났다. 나는 아까 사둔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다. 누나 것도 있는데 줄까,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내가 부르기 전에 먼저 누나가 나를 불렀다. 평소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였다. 음,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했지만 특별한 일은 아닐 거라고도 생각했다. 시키는 대로 누나의 옆이 아니라 앞에 앉았다. 누나는 목을 몇번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결혼해. 그니까 이젠 오지 마.

오지 말라니. 사실상 여기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응? 이라고 대답했지만, 누나는 그 앞의 말을 다시 말해줄 뿐이었다. 미안해. 결혼식은 안 할 거야. 이 집도 내놓을 거고.. 오지 마. 누구랑 하는데? 있어, 그런 사람. 말도 안 해 줘? 나도 잘 몰라. 물어보지 마.

그날은 누나를 안지 못했다. 안을 수 없었다. 박스 한 개에 빠듯하게 차는 내 짐을 챙기느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짐이 하나도 없고 몸만 있었어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박스가 무거워 힘겹게 신발을 신자 누나가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 갈게. 응. 택시라도 불러줄까? 아냐, 근처잖아. 갈게. 응. 

누나,

나는 박스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말했다.

나 뽀뽀해주라.

누나는 문이 삐비빅 소리를 낼 때까지 고민하다가 맨발로 한발짝 나와 입을 맞춰 주었다. 누나가 떨어질 때 고개가 따라갔다. 아쉬웠다. 이제 진짜 갈게, 하자 누나가 조심해서 가라고 했다.

우리집은 누나네 집에서 한 블럭쯤 걸으면 나온다. 그래도 박스가 꽤 무거웠다. 집에 들어가서 현관에 아무렇게나 박스를 밀어놓고 소파에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깨가 결렸다.

누나가 없으니까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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