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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 11. 07.
2 2022.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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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남은 천재지변 같았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대체로 이렇게 정의되어 왔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사회의 규범을 반듯하게 흡수해온 사쿠라이로서는 눈앞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온 신경이, 온 정신이, 하물며 어떤 신마저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이 모든 일을 전부 알게 된 다음 시간을 돌려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사쿠라이는 눈을 감을지언정 이 천재지변을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연구동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빈 연구실을 들여다볼 일도 없었겠지만 그 연구실 창문에 뿌옇게 서리가 끼고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구석으로는 날리는 종이들과 허공에 뜬 실험도구들이 보인다면 생각 이전에 문을 열어젖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여기가 안인지 밖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추운 공기가 쏟아져나오고 그 사이에는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사람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면..
사쿠라이는 급하게 비상벨을 울렸다. 센터에서는 비상벨이 울리면 번호를 확인해 그쪽으로 사람들을 보낸다. 사람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숨을 쉬는지 마는지 알기도 어려울 만큼 아주 살짝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쳐다보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곳곳에서 금속이 대리석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유리들이 깨지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연구실 안의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내려가는지 본인이 적응해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들것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요란한 듯 조용하게 구급대원들과 들것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들이 연구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이 빈 연구실에서 혼자 얼어죽어가고 있는 그 남자를 마치 몰래 데려가는 것처럼 들것에 실어 옮겨나갔다.
남아있는 것은 사쿠라이뿐이었다. 속눈썹 끝에 얼음이 맺힌 채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며 깨진 유리들을 치운 뒤 사쿠라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천재지변은 며칠 지나자 가끔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현실감이라는 게 없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쿠라이는 혼자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몇날며칠을 지냈는데 얼마 전부터는 오한이 들었다. 그동안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몸살이라도 났는지 감기라도 걸렸는지 싶어 센터 안의 의무실로 걸어갔다. 뒷목이 종종 따끔따끔하고 어깨 언저리가 뻐근하고 툭하면 코피가 났지만 과로려니 했다. 하루 종일 깜빡깜빡 졸거나 속이 메스꺼운 것도 그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구토까지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마음 편히 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찾아간 의무실에서는 사쿠라이를 센터 안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의미도 이유도 모르면서 사쿠라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연구동과 구름다리로 연결된 A동과 B동 사이 507호를 찾아가는 건 어려운 듯 어렵지 않았다. 사쿠라이는 거기에서도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아서 머리에 뭔가를 쓰고 셔츠를 열어서 가슴팍에 뭔가를 붙이고 피를 뽑히고 그 와중에 또 코피를 흘려서 누군가가 피를 닦아주는 동안 이 검사를 다 끝내고 돌아가서 오늘치 할 일을 다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어쩐지 분주한 듯했지만 센터가 늘 그렇듯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아니면 죽을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지.
“저.. 사쿠라이 씨.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애처로운 듯한 구석이 어딘가 서려진 호출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저희가 방금 급하게 막 검사해 봤는데요.. 혹시 센티넬이랑 접촉하신 적 있으세요? 강제적으로라든가? 아님 스스로라도? 요 며칠 내에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아.”
“있으세요?”
“저.. 얼마 전에 연구동에서 누구 실려갔던 적 있잖아요. 그거 혹시 센티넬이었나요?”
“누구.. 아 그거요? 그분이랑 접촉하셨어요? 그때?”
“네. 제가 발견했는데요.”
“저어.. 막 각인하시면요. 지금처럼 열도 좀 나고 어지럽기도 하고 메스껍기도 하고요. 그리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코피가 나는 사람도 있거든요. 특히 급간 차이가 좀 나면 이런 게 한꺼번에 잘 와서.. 그런데 차트에는 도무지 가이드라는 말이 안 써 있어서 저희가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네. 그래서요?”
센티넬이고 가이드고 쉼없이 오가는 센터 건물 한구석에 앉아 여태껏 일해왔으면서 그 사람들이 자신과 엮일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그러니 하물며 본인이 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은 만에 하나라도 한 적이 없을 게 뻔하지 않은가.
“이런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해외에는 더 많고요. 국내에는 드물긴 해도 몇 번 있었어요. 미약하거나 성능이 좋은 가이드는 아니라서, (눈앞의 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더 나은 단어 선택을 할 수 없음에 온몸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러니까 테스트에 검출될 만큼이 아니라서 일반인으로 살다가 본인보다 등급이 높은 센티넬을 만나서 가이딩하게 되면 이렇게 강제적으로 발현되고 또 각인도 돼요. 그러니까요… 발현하셨습니다. 각인도. 그분이랑. 근데 그분 누군지 모르시죠?”
그러니까 이런 날벼락 같은 말에 바로바로 반응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누군지도 모르고, 센터에서 몇 년이나 일했지만 오며가며 얼굴 익은 센티넬이나 가이드 중에는 그 사람은 없었고, 심지어 지나가면서도 본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싣고 데려가는 구급대원들조차도 어쩐지 쉬쉬하는 듯했다고.. 거기까지 말하자 의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쪽에 연락해서 말씀드려볼게요. 아마 그쪽도 지금 찾고 계실 거예요. 오늘은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들어가 쉬시고요.
사쿠라이는 인적 드문 어느 병실에 홀로 누워 주어진 만큼의 링겔을 다 맞고 병상 옆에 대충 이름이 적힌 약봉투를 쥔 채 바깥으로 나왔다. 약이 돌았는지 정신도 꽤 멀쩡해진 것 같았고 어지럽지도 토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이드라니.. 가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가까운 친척 중에야 한두 명 있었지만 우리의 일, 나의 일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다.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특히나 어찌저찌 흐르는 인생 끝에 센터에 취직하자 억을 준대도 하기 싫어진 일이 센티넬이라든가 가이드라든가 하는 거였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모른 척했던 일이 나의 일이라니. 당장 지금부터 그렇게 되었다니.
하필이면 시골 어느 허름한 병원에서 검사한 것도 아니었고 센터였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바로바로 등록됐을 테고 그렇다면 늦어도 내일 중으로 관계자들이 찾아올 것이었다. 그럼 이제 연구원으로의 일은 그만둬야 하고 그 센티넬이 죽기 전까지 그 사람에게 종속돼서 인생을..
아니, 기계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 연구 중에도 수백 수십 번 오류 같은 건 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A동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느 병실에도 그날의 센티넬은 없었다. A동과 B동 사이동에는 당연히 없었다. B동으로 건너가 1층부터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가면서도 찾았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연구동에는 당연히 없었다. 구름다리로 연결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들어가야만 하는 C동 병동 제일 구석 6인실에 홀로 그날처럼 죽은 듯 잠든 그 남자를 발견했을 때에서야 정신이 들었다.
병실 밖으로 나가 마츠모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고 끊겼다.
“왜?”
“C동 7층 7015호로 좀 와 줘.”
“무슨 일인데?”
“있잖아, 나 요즘 상태 안 좋았던 거 알지? 그냥 감기거나 과로라고 생각해서 의무실에 갔는데 나더러 가이드래. 발현했대. 각인했대. 너 이게 믿겨져?”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매칭 테스트 한 번만 해 보자. 너 검사기 갖고 있지? 그거 갖고 C동 7015호로 와. 7층.”
수화기 너머로도 마츠모토가 당황한 게 느껴졌다. 그러나 사쿠라이 자신은? 본인은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더니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본인의 인생이 앞으로는 전혀 모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데. 생각한 적도 계획한 적도 없는 쪽으로 나아간다는데.
병실 바깥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마츠모토를 기다리는 사쿠라이에게는 주변의 모든 게 신경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산소호흡기가 규칙적으로 내는 소리가 더 그랬다. 마츠모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그러나 조용히 뛰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그때 봤던 것보다 좀 더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더 없었다. 간이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두고 앉아 테스트기가 돌아가는 걸 기다렸다. 지익 지익 나오는 결과지를 뜯어 읽는 마츠모토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각인한 거 맞다는데? 근데 퍼센테이지가 별로야. 그래서 형 상태가 안 좋은가?”
“몇 퍼센트인데?”
“31.9퍼센트. 평균적으로 56.3퍼센트, 그니까 못해도 50은 넘거든. 이럴 때 딱히 각인이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마츠모토는 검사지를 사쿠라이에게 넘겨주고 테스트기를 정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시 환자인 듯 누워 있는 남자가 깰까 봐 내내 조심스러웠다. 정리를 마치고 가자고 턱짓하자 그제야 사쿠라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무지 몇 시간만에 들이닥친 일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고..
못내 안쓰럽다는 듯 마츠모토가 사쿠라이의 힘 빠진 등을 토닥였다. 사쿠라이는 그 길로 반차를 내고 집으로 들어가 내내 잤다.
출근하자 자리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에서 어쩐지 흘깃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자리로 다가가자 그 사람들이 사쿠라이를 밖으로 불러냈다. 뻔하다. 그 각인 얘기겠지, 뭐.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은 또 높은 사람일 테고 그렇다면 어차피 사쿠라이로서는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가이드라는 게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제 몰래 갔던 C동 7층으로 사람들은 사쿠라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7015호는 아니었고 그 옆에 어떤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쿠라이는 얌전히 그곳에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자신을 데리러 왔던 사람들보다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사쿠라이의 앞에 앉았다.
“소식은 들었어. 각인했다지? 그놈이랑.”
“네, 뭐.. 근데 그놈이라니..?”
“내 부탁함세. 염치불고하고 하는 말이야. 각인을 끊으면 능력에도 영향이 있는 건 알고 있나?”
“어느 정도는요.”
“그녀석은 s등급이야. 그러니까 말이지. 국가에 아주 중요한 인재라는 건데.. 듣자 하니 매칭률이 어느 정도라고?”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르는 척하지 말게. 어제 와서 검사해봤잖나.”
어떻게 또 다 알고 있네. 이제 거짓말은 죽어도 하지 못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사쿠라이는 순순히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둔 검사지를 꺼내 건넸다. 말보다 빠를 거라고 생각하며.
“흠. 영 별로구만. 별로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놈은 가이딩도 잘 받으려고 하지 않아. 등급이 높으니까 효율이 좋거든. 안 받아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버텨대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나? 아무리 약으로 때운다 해도 가이딩만한 게 없어. 그건 녀석도 알고 다 알거든. 그런데 체질적으로 뭔가, 그러니까, 각인이 되는 가이드를 찾기도 어려웠고, 애초에 아무리 등급이 높은 가이드여도 어쩐지 녀석이랑만은 상성이 매번 안 좋아서, 가이딩이 별로 효력이 없었단 말이지. 자네랑 각인했다는 거, 사실은 나도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어. 그럴 리가 없거든. 여태까지 그러지 못했거든.”
눈앞의 어르신은 그렇게 계속해서 옆 병실에 누운 환자를 그놈이라든가 그녀석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지칭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해하기로는 등급이 높아서 써먹기 좋은데 가이딩이 잘 안 되는 게, 안 하려는 게 골치라는 듯했다.
“각인은 끊지 말고. 가이딩을 해 줬으면 하네. 각인을 끊으면 자네도 등급이 빠지지만 저놈은 더 내려갈 거야. 둘 중에 높은 등급인 쪽이 각인을 끊을 수 있는데 저녀석은 s등급이고 자네는 b등급이잖나. 가이딩도 영 받으려고를 안 하고 각인은 더욱이나 안 한다고 버텨대는데.. 그렇게 얼마나 일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부탁함세. 이렇게 된 김에 말이지. 연구실에는 내 잘 말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짐도 다 빼 줄 테니 여기를 사무실이라고 생각하고. 응?”
역겹다..
고 생각했다. 국가에서 센티넬과 가이드를 마음대로 붙이거나 붙게 되면 억지로라도 떨어트리지 않는다고, 죽거나 죽기 전까지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한다는 사실은 건너건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면전에 목도할 줄은 몰랐다. 사쿠라이는 또 구토가 치밀었지만 누가 봐도 정부의 높은 곳에서 나온 듯한 어르신의 말을 거부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말없이 웃었다.
연구만 해와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더라 이렇다더라 하는 말을 들어도 그냥 그랬고,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어쩐지 조금 안쓰럽다는 마음이 든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고...
그런데 정작 눈앞에 닥치니 인간과 인간을 착취해 능력을 파는 사람들의 민낯이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보였다. 그렇다면 일반인이었던 나는 그 착취를 입고 여태까지 살아왔다는 것인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희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겨가면서 안전하고 아늑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건가?
사쿠라이는 문을 박차고 나가 화장실로 뛰쳐갔다. 아무 칸이나 열고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했다. 속이 뒤집혔다. 할 수 있다면 여기서 내장이라도 토해 그냥 죽어버리는 게 편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겨우 각인한 내가 죽어버린다면 그 남자는? 센티넬이라면서 가이딩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각인은 피해다니는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죽어서 각인이 끊겨도 등급이 내려가려나? 그렇다면 능력으로 평가받는 세계에서 그 사람은 입지가, 명목이 줄어들 거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한 사람이라도 사는 게 좋다면. 또 이왕 살게 된 거 잘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부족해도 대 주고 싫다고 해도 잡아다 가이딩하는 게 각인한 사람 된 도리 아닐까.
화끈거리는 식도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입을 헹구고 세수까지 한 사쿠라이는 옷깃으로 대충 얼굴의 물기를 닦아낸 뒤 그렇게 생각했다. 그곳에서 그런 상황을 봐 버렸다면 어찌 됐든 그 사람을 살리려고 했을 거고. 살려서 이렇게 됐다면 거부할 수는 없는 거라고.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고, 오늘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했지만.
멋쩍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열어젖힌 6인실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당황해서 어제 그 사람이 누워 있던 병상에 손을 대 보자 싸늘했다. 나간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아, 그런가. 센티넬들은 시도 때도 없이 호출당해 나가고 가이드는 그 센티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건가. 사이가 좋다면 언제 나간다 언제 들어간다 말해주겠지만 지금의 사쿠라이와 그 센티넬은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고 심지어 그 센티넬이 자신과 각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참을 뜬눈으로 할 일 없이 그 센티넬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고 반나절이 갔지만 이쪽으로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지 고요했다. 사쿠라이는 간이 의자에 기대 잠들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퍼드득 일어나자 눈앞에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그 센티넬이 서 있었다.
“너야?”
“네?”
“너냐고. 그 가이드.”
“네, 네. 전데요?”
“그럼 가이딩해. 복귀했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꾸물꾸물 침대로 기어가 누웠다. 숨쉬기가 어려운지 또 자기 손으로 산소호흡기를 찾아다 썼다. 어제 막 가이드라고 판정받은 사쿠라이는 차마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가이딩이라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몰랐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해?”
몇 분 기다리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벗어던진 뒤 사쿠라이 쪽으로 돌아누워 소리쳤다.
“저, 가이딩이라는 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그걸 말해 줘야 알아?”
사쿠라이의 질문에 또 연달아 짜증을 뱉은 남자가 다시 산소호흡기를 쓰면서 한쪽 손을 침대 팔걸이에 걸쳤다. 반응이 없자 이번엔 산소호흡기를 벗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손잡으면 되잖아. 자기를 기다리던 사람한테 이렇게 초면에 다짜고짜 짜증이나 내는 남자라니, 이 사람이 가이드를 내친 게 아니고 가이드들이 다 도망가버린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쿠라이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그쪽 손을 꽉 쥐었다.
의자를 당겨 앉자 침대 머리맡에 카드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6인실을 다 비워 놓고 혼자 쓰면서도 형식상 이런 건 비워서는 안 되는지 이름과 나이, 소속, 능력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이름은 니노미야 카즈나리. 나이는 사쿠라이보다 어렸고 소속은 특수부 특수과 z팀이었으며 능력은 염동과 빙결.. 그리고 간헐적으로 방화.. 라고 성의없게 써 있었다. 능력에 간헐적이라니. 그럼 써놓은 사람들도 제대로 모른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사쿠라이가 니노미야의 손을 꽉 쥐고 있는 동안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산소호흡기에 빼곡하게 차던 수증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병실에 도무지 시계가 없어서 제대로 알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느끼기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니노미야에게서 막 잠든 아기와 같은 숨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센티넬이라면 그게 정상인 호흡이라고 했다.
베개도 없이 병실 침대에 누운 얼굴이 너무 어려 보여서 그만 못되게 굴 마음도 사라졌다. 보이는 곳곳에 막 생겼거나 오래되어 보이는 상처들이 꽤 있었고 얼굴엔 핏기가 없었는데 핏자국은 있었다. 손을 잠깐 떼고 물수건을 챙겨 얼굴이나 닦아주려는데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센티넬들은 기본적으로 신체조건이 일반인이랑은 다르다는 것 같았다. 겨우 떼내고 보이는 물수건을 가져와 얼굴을 닦아 주었는데 또 그 얼굴이 말갛고 앳돼서 안쓰러웠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니노미야가 잠들어 있을 때만이라고, 또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사쿠라이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도대체 왜 말도 없이 나가는지, 또 어떻게 그렇게 기척 없이 휙 사라져버리는 건지 몰랐다. 분명 일하라고 이 사무실에 강제로 소속이 옮겨졌는데 가이딩을 해야 되는 대상은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말해 주지 않고 그걸 마냥 기다리다 지쳐 잠들면 그제서야 사람을 깨워 가이딩하라고 통보한 뒤 제멋대로 잠들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의 교류는 찾아볼 수도 없는 몇 주가 계속해서 지나갔다. 물론 니노미야가 마음대로 나가버린 이후, 아니 마음대로인지 명령에 따라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기척 없이 빠져나간 이후에는 뒤늦은 가이드 발현에 따라 센터에서 진행하는 가이드 교육에 참가했다. 니노미야는 한 번 나가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교육에 참가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주 간단하게 센티넬과 가이드의 호환성에서부터 시작한 교육은 전투 시 각자의 포지션이라든지 효율적인 가이딩 방식이라든지에 대한 설명을 지나 각자의 감정 같은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구역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쿠라이는 도무지 어느 쪽이든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게 니노미야와 단순히 손을 잡는 것 말고는 그 이상도 이하도 가이딩을 진행하지 않았고 가이딩을 넘어 대화라든가 커뮤니케이션 같은 건 더욱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육에서 잔뜩 알아낸 뒤 돌아와도 니노미야가 없다거나 니노미야가 있었어도 배운 걸 한 번이나마 실험이라든지 해 볼 수가 없었다.
몇 주간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건 사쿠라이와 각인한 이후로 니노미야는 꽤 숨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건데 그렇게 되었어도 이미 버릇이 되었는지 니노미야는 그 딱딱한 병실 베드에 베개도 없이 침구라고는 오직 그 얇은 이불만을 가지고 누우면서도 매번 산소호흡기를 끌어다 썼다. 센티넬을 담당하는 병동의 의사에게 산소호흡기는 왜 쓰는 거냐고 물어본 적 있었지만 그 의사조차도 일반 센티넬 병동에서는 중환자가 아닌 이상 산소호흡기는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7층으로 올라가면서, 역시 니노미야는 좀 이상한 센티넬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무시당하는 게 즐거울 사람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센티넬도 인간이고 가이드도 어찌 됐든 인간이었다. 국가라는 큰 손 아래 착취당하는 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손을 맞대가는 사이로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니노미야는 몇 달이 지나도록 사쿠라이의 이름 한 번 불러 주는 일이 없었고 살갑게 굴어 준다면 내일 죽는지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쌀쌀맞았으며 그런 태도였으니 어디로 일을 나가고 언제쯤 돌아올지 말해 주는 일은 더욱이 없었다.
니노미야가 명령에 순응해 한참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시간 동안 사쿠라이는 일반 병동에 있거나 C동에 거주 혹은 근무하는 각인 가이드들과 꽤 친해졌다. 사쿠라이처럼 생판 남인 사이에도 갑작스럽게 각인해서 파트너가 된 경우도 있었고 오래 알던 사이라서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된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몸을 맞대고 숨을 나눈다, 체온을 나눠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라는 건지 다들 꽤나 친밀해 보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급해도 나간다 들어온다 정도는 말해준다는 거였고, 개중에는 거의 매번 같이 임무에 나가는 가이드도 있었고, 돌아와서 가이딩을 요구할 때도 니노미야처럼 막무가내거나 통보식인 센티넬은 거의, 사실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사쿠라이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니노미야가 일찍 복귀하는 때만을 기다렸지만 고급 인력이라 착취도 오래 여러 번 하겠다는 건지 그가 멀쩡하게 센터로 걸어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오히려 사쿠라이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에 실려 돌아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멍청하게 그때마다 마음이 물러져 모질게 대하고 싶은 생각이 매번 사라졌지만 또 다음 날 멀쩡하게 일어나 사쿠라이를 냉대하는 꼴을 보면 날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정말로 평범한 주중이었고, 특별히 불려나갈 일도 없었으며, 사쿠라이도 제자리에 있었고, 니노미야도 웬일인지 일찍 복귀한 날이었다.
사쿠라이는 마음먹은 듯 니노미야에게 다가갔다.
“저기.”
니노미야는 대꾸하지 않았다. 사쿠라이 쪽을 등진 채 몸을 말고 누워 있는 채였다.
“부탁이 있는데, 앞으로 호출에 불려 나갈 땐 나를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나간다고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해서. 나라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언제 돌아온다 말 한마디 없는 사람을 기한 없이 기다리는 것도 지치고, 거의 매번 응급 달고 들어오는 걸 견딜 만큼 배짱이 좋지도 않아.”
살짝 열린 병실 문틈으로 바깥 불빛이 어른거렸다. 습관처럼 가져다 댄 산소호흡기를 벗으면서 니노미야는 코웃음을 쳤다.
“니가 뭔데?”
“뭐?”
“너, 그때 마음대로, 마음대로 거기 문 열었지? 아무도 안 시켰는데. 사쿠라이 씨, 그날 그 문을 열었다고 뭔가 착각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아니라 그 누가 왔어도 각인이야 할 수 있었어. 그 영감이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몰라도, 난 쟤도, 얘도, 걔도, 아무나랑 다 각인할 수 있어. 근데 니가 와서 각인해버린 것뿐이야. 안 와도 그만이라고. 안 왔으면 더 좋았을걸? 그때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좀, 넌, 니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것 좀 그만해. 니가 아니어도! 가이딩 같은 건 할 사람이 널렸고. 나라고 사람 가리는 것도 아니니까. 알겠어? 매번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 것도 그만둬. 어차피 좋은 밥벌이잖아?”
팔꿈치를 베드에 대고 상체를 기울여 일으킨 니노미야는 그렇게 말했다. 마구잡이로 말하는 듯 숨이 차는 듯 가끔 말이 끊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쿠라이가 말을 끼울 구석을 보이지도 않았다. 눈을 마주쳤는데 적대감이 가득했다. 공기를 넘어 피부로 느껴졌다. 이게 각인한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란 말인가? 철천지원수라면 모를까.
“야. 너야말로 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니가 센티넬인 줄도 몰랐고, 오히려 센티넬이었으면 알아서 살겠거니 싶어서 그 문 열지도 않았을 거야. 난 그냥 사람이라고. 이해해? 아니, 그냥 사람이었지. 보통 평범한 인간이라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모른 척 지나가지 않아. 못해도 119 한 번 부르거나 비상벨이라도 눌러 주지. 나는 그래서 그렇게 한 것뿐이야. 그리고, 누군 가이드가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나야말로, 여기서 한참을 일했는데, 이젠 연구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걸 그만둘 수도 없고, 막말로 니가 죽든 내가 죽든 하지 않는 이상 계속 여기에, 이 센터에, 이 나라에 얽매인 건 마찬가지 아냐? 좀 편하게 하자고! 나도 다른 가이드들처럼 각인한 담당 센티넬이 언제 오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고. 그게 그렇게 욕심이야? 넌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빠?”
다시 숨이 차는지 니노미야는 산소호흡기를 찼다. 그래도 눕지는 않은 채로 사쿠라이를 쳐다봤다.
“니가 말하는 그 영감? 정부에선 각인은 어차피 너만 끊을 수 있다고 하고, 끊어 봤자 니 등급 떨어지니까 절대 끊어달라 말하지도 말라고 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가이딩이나 잘 좀 하라고 대충 말하고 사라졌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적어도 그 사람들이 말한 건 지켜 줘야 나도 월급 받고 사는 데 찔리지 않지. 니가 죽으면 나는 뭐가 되는데. 앞으로 가이딩 안 해 줘서 센티넬 죽인 가이드란 소문이 돌면 누가 나랑 다시 각인하려고 하는데? 널 위해서 말해 달라는 게 아니고, 나도 나대로, 나 때문에, 날 위해서 좀 부탁하는 거야.”
며칠간 니노미야와는 말하지 않으면서 보낸 시간은 냉전 시기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쌓아뒀던 말을 내뱉으려니 사쿠라이도 호흡이 벅찬 듯했다. 그러나 니노미야가 쥐고 있던 손을 확 끌어당겨 사쿠라이가 베드에 가까워지게 했다. 부딪힐까 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멈춰선 사쿠라이에게 입을 맞췄다. 머금고 있던 공기를 넘겨 줬다. 코가 얼굴에 눌렸다.
“그럼, 가이딩이나 제대로 해. 손잡는 건 초등학생이나 하는 거지.”
숨이 모자라 얼굴이 살짝 발개진 사쿠라이가 아직도 쥐고 있는 니노미야의 손을 홱 내쳤다. 시간 늦었어! 자기나 해. 그러고는 병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둘은 그 뒤로 일주일쯤 얼굴도 마주보지 않았고 서로의 냄새조차도 맡지 못했다.
2
말없이 돌아오지 않는 날은 이 나라를 벗어난 날이라 여기며 지냈다. 미국이며 유럽이며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여권을 숨겨두고 싶었지만 그런 걸 쥐고 살아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숨겨두더라도 어떻게든 찾아내거나 없어도 바다를 건너 아무데나 휘젓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빈정이 상해서 자주 속이 뒤집히는 말을 꺼내 뱉었다. 그럼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 듣는 듯하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코웃음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휴전 상태라니. 전쟁을 한 적도 없건만. 사쿠라이는 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처지인 건 같았으나 이제는 매여 있는 몸이 되었으므로 사직서를 낼 수도 없었다. 연구를 하러 돌아갈 수도 없었고 귀가해서 속 편하게 잠들 수도 없었다. 언제 간다 언제 온다 말해 주지도 않는 파트너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버려야만 했다.
평생 눈칫밥 먹으며 산 니노미야가 자신을 고깝게 여기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사쿠라이의 태도를 모를 리 없었다. 정신을 잃은 채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사지에 날을 세운 채 훔쳐듣는 사람 목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댔다. 싸우는 건지 대화를 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주로 사쿠라이가 먼저 화를 냈고 그럴 때마다 니노미야는 언성을 높이면서도 결론을 자꾸만 각인을 끊자는 쪽으로 몰아갔다. 그러면 사쿠라이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꼬리를 내렸다. 이쯤 하면 됐다는 듯 먼저 매번 병실을 빠져나갔다.
“끊어! 끊자고! 끊으라고! 나는 그때부터 끊자고 했다? 끊기 싫다고 도망가는 게 누군데? 내가 말할 때마다 모른 척 도망가는 게 누구냐고?”
“말이나 쉽지. 넌 그게 그냥 끊자면 끊을 수 있는 건 줄 알아? 니 목숨이 니 거야?”
“그럼 누구 건데? 끊으라니까?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답도 안 나오는 말싸움 언제까지 할 건데?”
“너도 나도 나라에서 주는 돈 받고 살잖아? 넌 아예 여기가 집이면서 그런 말이 그냥 나와? 어? 내가 그때 말했지? 너네 어르신인지 뭔지가 나한테 부탁했다고!”
지나가는 간호사가 조용히 해 달라고 찾아왔다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문이나 닫으며 돌아갔다.
“그런 사람 말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너도 즐기는 거 아냐? 이런 짓.”
“야, 됐다. 너 그냥 제정신으로 걸어들어오면 나 찾지 마. 짜증 나서 눈 뜨고 있는 너 더 보기 싫다.”
사쿠라이는 그렇게 얘기하고 또 밖으로 나갔다. 7층 흡연실은 사실상 사쿠라이 전담 흡연실이 됐다. 화를 내고 싸우고 실속 없는 악바리가 오가면 기운이 빠져서 니노미야 말대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말했으면서 각인을 끊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부탁한다는 말이야 당연히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런 거 하나 넘기지 못하면서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해왔겠는가.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건 부탁한다는 말의 탈을 쓴 강요가 아니었다.
각인을 끊게 되면 등급이 깎인다. 사쿠라이 자신의 등급이 깎이는 건 상관없었다. 애초에 가이드로 살아온 인생보다 일반인으로 살아 온 인생이 더 길었으니까. 기계가 평가내린 등급 같은 거에 매여 있을 성격도 못 됐다. 다만 니노미야의 등급이 문제였다. 나라의 높은 사람이 직접 나와 부탁할 정도라거나 쉬는 날도 없이 매번 차출당하는 꼴을 보면 저런 등급이 쉽게 튀어나오는 건 아닐 테다. 그러니 올리지는 못할망정 깎아버리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라의 자원을 자기 손으로 훼손하는 일이라…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껄끄럽기도 하지만 돈을 더 준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친해진 의료진들이나 다른 가이드들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다. 혹시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고. 니노미야와의 상황을 뻔히 아는 사람들은 사쿠라이가 그렇게 물어보는 의중을 겨우 모른 척하고 다들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안 좋죠, 뭐. 일단 등급이 내려가면 쓰일 일도 훨씬 줄어들 거고요. 그건 사실 좋은 일이라고 쳐도 몸에 안 좋아요.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 억지로 끊어버리면 양쪽에 타격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그래서 정말 안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 이상 권고하지도 않고.. 어느 한 쪽이 죽지 않는 이상은 계속 가는 거라고 봐야...
보다 못한 마츠모토가 종종 술을 사 줬다. 힘들지? 어렵겠다.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술기운이 한참 돈 뒤에 그런 위로를 들으면 눈물이 났다. 주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얼굴 보기 싫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사쿠라이는 니노미야가 돌아왔다고 하면 매번 7015호로 향했다.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그냥 무시하고 손을 잡아 주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몰래 입맞춰준 적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서 자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눈을 뜨고 있는 날에는 말마따나 어린애들 가이딩처럼 손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니노미야도 처음 며칠은 기운이 남아 있을 때마다 아다냐 키스하는 법도 모르냐며 빈정거렸지만 사쿠라이가 화도 내지 않고 발끈하지도 않고 무시하자 더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러니 잘될리가. 사이가 좋아지는 일은커녕 가이딩조차도 효율이 바닥을 쳤다.
7015호는 병실이 아니라 숙소가 됐다. 니노미야와 사쿠라이가 룸메이트가 됐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원한 적 없었지만 정해져 내려온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혹사당하고 홀로 돌아와 조금 푹신해졌다 하더라도 영 사람 자기 글러 보이는 매트리스에 기척도 없이 누워 새우잠을 자는 니노미야를 몰래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애틋해졌다. 그래서 그만하자 끊어라 하는 니노미야의 말에 그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저 애는 어째서 저렇게 잠들 수밖에 없는지 생각하자 멋대로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돌아오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사쿠라이가 세기로는 2주가 넘어 이제는 3주째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니노미야 혼자 나간 건 아닌지 이번 일은 중동 어드메에 단체로 파견나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라도 알게 됐으니 얼마나 좋냐. 사쿠라이는 구내식당에 혼자 앉아 중얼거리면서 숟가락을 움직였다.
막 20일째가 됐을 때 구급차도 아니고 응급헬기가 옥상에 내려앉았다. 사쿠라이의 호출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낮잠을 자다가 깨서 정신이 멍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앉아 있었는데도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 호출기가 다시 울려댔다. 7015호로 오지 않았다. 호출기를 확인하니 병동이었다.
니노미야는 말하자면 고급 전력 비밀 전력이었으므로 병동으로 가는 일은 잘 없었다. 웬만한 일은 7015호에서 전부 해결했다. 그런 니노미야가 병동에까지 가다니, 응급헬기의 주인공이 니노미야란 말인가, 생각하며 병동에 뛰어간 사쿠라이는 문이 열리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저런 피투성이의 몸은 이제까지 본 적 없다.
사람이 여럿 붙어 있었다. 마치 시체처럼 축 늘어진 니노미야가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 상태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그걸 겨우 참고 사쿠라이는 의료진에게 표찰을 보여주고 차가운 손을 끌어안았다. 그게 도움이 됐는지 시끄럽게 울려대는 의료기기도 조용해졌다. 의료진도 금세 자리를 정리하고 사쿠라이에게 뭐라고 설명한 뒤 다른 베드로 향했지만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가까운 데도 아니고 중동이라니. 그렇게 먼 곳에서 이런 상태가 되다니. 뇌수가 얼어붙은 것처럼 마음이 싸늘해졌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가도 사쿠라이는 손을 놓지 않았다. 커튼을 치지 않은 쪽에서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지고 조명이 대낮처럼 들어왔다가 니노미야의 베드 주변에 커튼을 치고 불을 끄는 시간이 됐는데도 사쿠라이는 누군가가 가져다준 간이의자에 널린 것처럼 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만하고 자러 가야겠다는 생각 같은 게 떠오를 리 없었다. 각인을 끊고 싶으면 둘 중 하나가 죽는 쪽이 가장 부담이 없죠. 그런 말만이 자꾸 맴돌았다. 각인이 끊고 싶은 것뿐이었지 니노미야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끊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니노미야가 몰래 그 생각을 알아버려서 이렇게 된 걸까?
어스름히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니노미야가 눈을 떴다. 사쿠라이는 머리쪽을 등진 채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그쯤 되자 긴장도 풀려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만 니노미야의 손을 쥐고 있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조는 와중에도 그 손만큼은 놓지 않았다. 니노미야는 그걸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끊고 싶으면 끊어. 지금이 제일 좋으니까.”
졸고 있는 뒤통수에 그렇게 소리쳤다. 병동의 누군가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사쿠라이는 졸다가 화들짝 깨서 니노미야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도 쥐고 있는 손은 놓지 않았다. 넌 지금 죽다 살아났는데 그런 말이 하고 싶은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사쿠라이도 더는 모질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니 돌아가서 자야겠다.
“네?”
“이제 7015호로 안 오셔도 된다고요.. 니노미야 씨가 전해 달래요. 아마 각인.. 끊겼을 거라고…”
서슬퍼런 표정에 말을 전하는 직원이 눈을 슬슬 피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니노미야 씨가 그렇게만 말했는데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검사도 해 보셨대요.. 근데 정말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데요… 그래서 그냥 돌아가셔도 된다고.. 원래 일하시던 데로 가셔도 되고 아니면 휴가 쓰고 싶은 만큼 쓰셔도 된다고… 거기까지 말한 직원이 거의 울기 직전이라 사쿠라이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제 잠결에 그런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끊고 싶으면 끊으라고. 끊을 수 있는 건 니노미야 자신인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순 못된 심보 아냐. 다시 7015호로 돌아가자 어느새 짐이 다 정리돼 있었다. 헛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 짐을 다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각인을 끊은 이후의 센티넬과 가이드에 대해 찾아봤다. 좋은 말, 좋은 사건, 좋은 예시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마츠모토에게 전화해서 퇴근할 때 테스트기를 가져와 달라고 했다. 외부반출금지인 물품이지만 마츠모토는 알아서 잘 가져왔다. 테스트해보니 정말로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출력되는 것은 한단계 깎인 사쿠라이의 가이드 등급뿐이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될지 몰랐다. 테스트기와 술을 같이 들고 온 마츠모토는 사쿠라이의 표정을 보더니 테스트기만 들고 돌아갔다. 또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다고 진짜 각인을 끊다니. 그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으면서 사쿠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히려 그정도로 죽다 살아났으면 내가 끊어 달라고 해도 끊지 말자고 해야 되는 거 아냐? 어떻게 자기가 먼저.. 내가 졸고 있는 사이에 끊어버리고 도망갈 수가 있는 거지?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데? 걔는 어떻게 되는 건데?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수면제를 들이붓고 잠들었다.
다음날 원래 일하던 부서로 출근하자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사쿠라이를 반겼다. 사쿠라이네 팀장이 점심시간에 따로 불러 얘기는 전해들었다면서 가이드 되기 전에 하던 걸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쿠라이는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지금 진행되는 연구에 끼어들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없어서 어정쩡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지나자 팀장이 알아서 중도합류시켜주었지만 폐를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었고 오히려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딘가 붕 뜬 채로 다니는 사쿠라이를 모른 척했다. 사쿠라이는 그런 시선에 마음속으로 고마워하며 센터를 뒤지고 다녔지만 하루 이틀은 물론이고 일주일, 한 달이 넘도록 니노미야를 머리카락 한 올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친해진 가이드에게 미친 척하고 물어본 적 있지만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자기도 본 적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봤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니노미야는 이제 사쿠라이와 엮일 일이 없었다.
각인이 끊겼다고 육체적으로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다. 막 각인했을 때처럼 병든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피를 쏟지도 않았고 기절하지도 않았고 토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몸은 전보다 가뿐해졌다. 그러나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거나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는지 알아채지도 못했고 종종 기억이 왔다갔다했다. 팀장은 그냥 휴직하는 게 어떻냐고 했지만 이런 상태로 집에만 처박혀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 사쿠라이는 멋쩍게 거절했다. 일도 하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어설픈 상태였다.
정부에 일절 말 한마디 없이 멋대로 각인을 끊어버린 니노미야는 등급이 한 개 반 깎였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사쿠라이가 일하는 연구동쪽으로 가지도 않았고 사쿠라이가 자신을 찾아서 센터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아예 센터에 가지 않았다. 얻어다준 맨션에서 출퇴근했다.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등급이 깎여도 못 쓸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일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떨어진 등급이어도 니노미야가 일해 온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니노미야는 오히려 상부를 쪼아서 일을 더 받아들었다. 어떤 날은 맨션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다음 일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늘어갔다. 가이딩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약물이며 링거 따위로 때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매칭률도 30퍼센트쯤밖에 되지 않았는걸. 매번 싸우고 기분 상하고 다 죽어가는 꼴 보여주느니 이렇게 일하는 게 낫지. 항상 그래왔는데. 달라질 건 없다. 니노미야는 원래 가이딩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는 몸도 아니었기 때문에 설령 매칭률이 70퍼센트를 웃도는 가이드와 각인했다고 하더라도 사쿠라이에게 받는 것과 다를 일도 없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 편이 좋다.
센터 사람들은 멍한 상태로 돌아다니는 사쿠라이를 이제는 완전히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늘 어딘가 힘이 빠진 채로 센터를 돌아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니노미야와 목에 핏대를 잔뜩 세워 가며 싸우던 때가 더 보기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쿠라이는 어떤 쪽이 좋은지 몰랐다. 센터 앞 공원에 바람을 쐬러 가던 사쿠라이의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갑자기 온몸이 열기에 휩싸였다. 팔을 붙잡혔는지 가슴팍이 붙들렸는지 모르겠다. 누구지? 눈앞이 금세 흐려져서 누군지도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이 공중에 떴다. 사쿠라이를 붙든 누군가가 그 상태로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붙잡힌 곳들은 화상이라도 입을 듯이 뜨거웠고 열기가 가득해서 숨쉬기가 어려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폐가 쪼그라들었다가 잘 펴지지 않았다. 숨이 찼다. 심장이 속도를 올려갔다. 이대로라면 터질지도 모른다. 이게 뭐야? 쪼그라든 폐 때문에 소리칠 수도 없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눈앞의 어떤 것을 밀어낼 수도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움츠러들었다가 펴졌다. 계속해서 피를 뿜어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변에서 소리지르는 게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을 붙잡은 손이 떨어져나가고 사쿠라이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새끼 빨리 잡아가! 그런 소리도 들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침이 계속 흘렀다. 야! 야 정신차려! 그런 소리를 듣다가 머리에 공기가 갑자기 들어온 탓에 기절했다.
센터를 가로질러 공원으로 향하던 사쿠라이를 붙잡은 것은 폭주한 센티넬이었다. 누군가가 소리친 내용은 폭주한 센티넬이 가고 있으니 피하란 거였다. 그러나 내내 정신이 붕 뜬 사쿠라이에게 그런 지칭 없는 말소리가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폭주한 센티넬은 눈앞의 아주 낮은 등급인 가이드라도 갈급했다. 사쿠라이를 태워서라도 가이딩받을 속셈인 듯했다. 그쯤 되면 센티넬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 거라고 누군가 얘기했던 게 떠오른다.
그런 사쿠라이를 모두들 발견했지만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일하러 나간 센티넬들이 태반이었고 가이드들은 함부로 손을 썼다가 자신마저도 어떻게 될지 몰랐고 일반인은 더더욱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그 폭주한 센티넬을 걷어차고 정신을 잃게 할 수 있는 건 막 링거를 맞으러 왔다가 돌아가고 있던 니노미야뿐이었다. 링거액이 다 돌기도 전에 멋대로 힘을 써버린 탓에 니노미야도 금세 픽 쓰러져 구급팀은 폭주한 센티넬과 니노미야, 사쿠라이를 모두 병동으로 옮겼지만 폭주한 센티넬은 1인실에 구금되었고 니노미야와 사쿠라이는 7015호로 옮겨졌다.
한참이나 흰 천장을 바라봤다. 둘 중 누가 먼저 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는 척 하나 하지 않고 입 다문 채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쿠라이가 니노미야의 침대 쪽으로 몸을 돌리자 니노미야의 앙상한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쟨 또 이불도 없이 저러고 있네. 그렇게 또 한참 동안 니노미야의 등을 바라보았다. 사쿠라이가 일어나 니노미야의 침대에 몸을 구겨넣었다. 그 깡마른 등을 껴안았다. 느껴졌다.. 가이딩되고 있다는 것이. 사쿠라이도 알 수 있을 만큼.
“갑자기 왜 그래.”
“니가 방에 돌아와서 이렇게 혼자 자고 있을 때마다..”
숨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것만 같다.
“항상 안아 주고 싶었어.”
그대로 니노미야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속엣말을 털어놓자 울컥했다.
“이제 자기 마음을 좀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니노미야가 뒤돌아 누워 좁은 침대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사쿠라이를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또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있었다. 붙잡은 곳마다 따뜻했다.
“있잖아.”
“응.”
“우리 다시 시작할까.”
그 말을 듣자 니노미야는 씩 웃었다. 어디서 쥐어터졌는지 눈가가 부어 있었다. 이걸 이제 보다니. 사쿠라이는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여기서 울었다가는 또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대신 입맞춰주었다. 키스했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다시 검사했을 때 매칭률은 그대로 31.9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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