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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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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왔더니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어제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말야, 재미있대. 같이 보자. 분명 그렇게 말했다. 시간에 맞춰 왔더니 보자던 친구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가족끼리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고 둘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쿠라이 말고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이 있었다. 손에 든 야구공을 혼자 허공에 던졌다 받으며 입구를 향해 서 있는 옆얼굴은 익숙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시작이었다. 집으로 돌아갈지 혼자서라도 볼지 고민하던 중에 그 애가 먼저 말을 걸었다.
“누구 기다려?”
“아, 응. 친구. 같이 보기로 했는데 아직 안 와서.”
“나도 그런데. 더 기다릴 거야?”
“안 올 것 같네.”
“그럼 같이 보자.”
이름이 기억났다. 니노미야. 대답도 듣지 않고 창구에서 표를 두 개 사 왔다. 그렇게 되자 무를 수 없었다. 다시 영화관 입구를 돌아보자 역시 기척이 없다. 먼저 앞서가는 니노미야 뒤를 따라갔다.
“더 늦게 들어왔으면 자리가 없었겠는데.”
“그러게.”
불이 꺼졌다. 그런데 얘랑 말한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은막에 필름이 영사된다. 처음은 아닌가? 별들이 날아가 산 위에 멈춘다. 영화가 시작된다.
우주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컴퓨터에 궤도가 어떻고 성운이 어떻다 적혀 있어도 곧바로 알 수 없었다. 엄청 큰 운석이 날아온다고 한다. 날아오면 공룡이 멸종했던 것처럼 인간이 멸종할 거라고, 영화 속 사람들은 얘기했다. 대통령이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사실을 말해준다. 탐사선의 사람이 죽었다. 눈이 먼 사람도 있다. 캡틴이 모비딕을 읽어준다. 모비딕은 고래였지. 흰 고래. 향유고래. 아주 거대한 고래. 운석이 떨어지면 고래도 멸종할까. 향유고래의 동맥은 성인 남성이 들어갈 만큼 크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탐사선은 핵과 같이 날아가 쪼개진 운석을 들이받았다. 들이받아서 없애버렸다. 그래서 지구에는 별똥별같이 흩날리는 운석 쪼가리들이 타오르며 떨어졌다. 같이 죽으려고 가만히 서 있던 사람도 있고 같이 죽지 않으려고 손을 잡고 도망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해일에 휩쓸려 죽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산 꼭대기에서 살아남기도 했다.
폐허가 된 건물 앞에서 대통령이 사람들을 위로했다. 바닷물은 빠졌습니다. 더 넘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불이 켜졌다. 영화는 재미가 없지도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았다. 줄줄이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 뒤섞여 영화관 밖으로 걸어나왔다. 뒤를 돌아봤더니 니노미야가 마지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방향이 같았다. 따로 가기도 멋쩍어서 나란히 걸었다.
“너는 어떡할래? 운석 떨어져서 다 죽는다고 하면.”
“뭐?”
“아니, 저 영화처럼. 다 죽는다고 하면. 오토바이 탈 거야?”
“넌 어떡할 건데?”
그거야 생각하지 않았다. 니노미야도 대답이 없었다. 해가 느리게 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늘어진다. 공터를 지날 때 니노미야가 말했다. 공 좀 받아줘. 축구는 했어도 야구는 해 본 적 없었지만 건네진 글러브를 받아들었다. 공이 몇번씩 오가는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말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죽을래.”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럼 살아볼까.”
“만약에 너만 살아남고 다 죽으면?”
“나를 좋아해볼까?”
“지금은 싫어해?”
아, 놓쳤다. 공이 사쿠라이의 키를 넘겼다. 미안. 펜스에 맞은 공이 발치로 굴러왔다.
“별로. 생각 안 해 봤어.”
“나는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고 싶은데.”
“오토바이 탈 거야?”
“오토바이 안 타도 되잖아. 아까 걔들도 결국엔 뛰었어.”
해가 떨어졌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가자. 글러브를 넘겨받은 니노미야가 먼저 움직였다.
이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해가 지는 것은 다시 뜨기 위함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 지구라는 건 한낱 행성이므로 사람이란 게 영원할 순 없다. 그렇다면 영원하다는 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야구공을 들여다보며 말없이 걷던 니노미야가 아, 하고 작게 소리냈다. 그 소리에 앞서 가던 사쿠라이가 뒤를 돌아봤다. 왜? 실밥이 터졌어.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니노미야는 터진 실밥쪽으로 야구공을 돌려 쥐고 팔을 뻗었다. 끊어진 실이 애처롭게 붙어 있다. 그렇군. 야구공도 닳아 없어져서 자꾸만 새로 사야 하는 소모품이구나. 생각해보면 글러브도 평생 쓸 수는 없다. 지금은 성장기니까 몸이 자랄수록 맞는 글러브를 사야만 한다.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부재하지도 않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만약 지금 당장 갑자기 운석이 충돌한다고 하면 어떤 걸 손에 쥐어야 할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만한 게 뭘까.
“역시 혼자만 살아남는다면 외롭겠지.”
“무슨 소리?”
“아까 물어봤잖아. 내가. 너만 살아남으면 어떡할 거냐고.”
“아.”
누군가는 내일 지구가 종말한다고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그럼 같이 살아버리면 되지.”
“너도 오토바이 타게?”
“태워줄까?”
“됐어.”
이제 막 여름이 다가왔는데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계절이 잘못됐는지 저 매미가 일찍 나온 건지 모르겠다. 매미는 평생을 땅속에 묻혀 살다가 여름 한철을 겨우 밖에서 지낸다. 지내다가 죽어버린다. 매미는. 그럼 매미는 무엇을 위해 땅속에서 살아온 걸까. 계절 하나 동안 울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걸까.
“오늘을 살면 돼.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거야 당연하지.”
“그니까 지금 살아 있으면 돼. 곧 죽어버린다고는 생각 안 하면 되고.”
“그래. 지금 숨쉬고 있잖아.”
“그렇지? 좋아. 공 받아줘서 고마워. 원래는 영화 같이 보고 야구하러 가기로 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갈린다. 니노미야는 왼쪽으로 사쿠라이는 오른쪽으로. 처음 손을 넣어 본 글러브가 막 익숙해졌다. 큰길 너머 바다 소리가 들린다. 파도가 부서진다. 퇴근길에 자동차들이 시끄럽다. 까마귀가 운다. 바람이 분다. 날이 덥다. 땀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진다.
“내일 봐.”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 집으로 향했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다. 내일도 날이 더울 것이다. 내일 아침엔 자동차들이 반대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엔 파도가 멀어져 있을 것이다. 내일 저녁에도 까마귀가 울 것이다. 내일도 바람이 불고 매미가 시끄러울 것이다. 내일도 니노미야를 보게 될 것이다. 내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살면 된다. 지금 살아 있으면 된다. 모든 게 좋다. 현관을 열고 밥을 먹고 씻고 잠들면 된다. 모든 게 괜찮다. 문제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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