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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1999

ns
2023. 01. 17



16 17



영화부에는 왜 들어왔나?

다큐 감독이 되고 싶어서.

어떤?

로저 코먼.

왜? 그 사람 다큐 감독은 아닐 텐데.

그냥.

그냥이라니. 이유가 없나?

말하기 싫다.

“그래, 그럼.”

“오늘은 뭐 안 해?”

손등에 딱 맞게 조여서 쥔 캠코더를 코앞까지 들이민다. 얼굴도 고개도 아니고 시선이 한번 닿았다가 떨어진다.

“너 캠코더 좀 내려.”

“나한테 인터뷰도 땄잖아. 다큐 감독이 장래희망이라는데 이것도 못 참아 주나.”

“오늘 뭐 없어. 애들도 없고..”

뭔가를 펼쳐 둔 채로 분주히 눈을 움직이는 사쿠라이 옆에 더 할 게 없는 니노미야가 책상에 고개를 퍽 박았다. 책상 흔들리잖아.. 너도 집에 가라..

금방 일어나더니 닫았던 캠코더를 다시 열고는 동아리실을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책상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사쿠라이 얼굴을 잡았다가, 가만히 있다가, 줌을 당겼다. 지이익. 지이이익. 소리를 들은 사쿠라이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렌즈 정면을 바라본다. 시 끄 러 워.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치. 나뻐. 누군가가 놓고 간 교과서. 버려진 슬리퍼. 바람 빠진 배구공. 아무렇게나 놓여진 페트병. 동아리 선생님이 물을 주는 선인장. 반쯤 열려 더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소리. 운동장을 가르는 축구공. 공을 따라 움직이는 애들. 그런 것들이 프레임 안에 담긴다. 

딱히 찍기 좋은 것들도 아닌데 동아리에 들어올 때부터 니노미야는 그 캠코더를 계속 쥐고 있었다. 말을 걸거나 액션을 취해보라고도 하지 않았다. 한발짝 떨어져서 액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다들 자신이 어떻게 나오는지 뭘 찍는 건지 궁금해 매번 그 작은 액정에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니노미야는 대수롭지 않게 보여주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몇날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그 캠코더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니노미야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교재를 정리하고 필통을 닫는 소리가 났다. 가려고? 응. 같이 가. 별로 든 게 없어 무게감이 없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니노미야가 자물쇠를 들고 복도에서 사쿠라이를 기다렸다. 열쇠는? 아까 갖다놓는다고 했어.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지 노을도 지지 않았다. 머리통이 뜨끈해져갔다. 그늘을 찾아 움직이는 고양이. 누군가 길바닥에 버린 아이스크림 막대. 안장이 빠진 자전거. 장을 보고 돌아가는 주부. 장난치다 넘어진 어린애. 

“어디다 쓰게?”

“뭘?”

“그거. 그런 거 찍어서 어디다 쓰려고?”

“응. 비밀이야.”

“별로 의미 없지?”

“그럴 수도?”

“왜 찍는 거야?”

“그냥.” 

“그냥이 어디 있냐?”

“여기 있다. 왜.”

배터리가 떨어지면 가방에서 배터리를 꺼내 바꾸고 테이프가 다 되면 테이프를 꺼내 바꾸는 니노미야를 신기하게 바라본 사쿠라이가 비디오의 용도를 캐물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니노미야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일 다시 물어본대도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조심해서 가.”

“응. 내일 뭐 해?”

“내일? 집에 있지. 약속도 없고.”

“웬일. 알겠어.”

“뭐가 웬일이야? 뭐 맨날 나가는 줄 알아, 내가.”

안 나가는 것도 아니면서. 니노미야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먼저 집으로 들어간 사쿠라이를 조금 바라보다가 또 렌즈를 그쪽으로 움직였다. 조금 식은 바람이 불어왔다. 



*





“쇼군 있어요?”

“방에 있지? 무슨 일 있니?”

“아니요. 공부하다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평소보다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조금 틀어서 보여준 니노미야가 헤 하고 웃는 얼굴을 했다. 2층에 올라가면 바로 있어. 네에. 꽤 오래된 주택이라 나무 계단이 반들반들했지만 좋은 나무를 썼는지 삐걱이지도 삭은 부분이나 결이 올라온 부분이 보이지도 않았다. 사쿠라이의 방은 계단에서 조금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방이었다. 골목에서 올려다보면 바로 볼 수 있는 쪽.

“실례합니다.”

“응?”

“실례 안 합니다..”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열려 있길래… 아 농담. 농담이야. 어머님이 열어주시던데.”

토요일에도 공부라니! 모범생. 우우. 니노미야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누웠다. 넌 남의 집에 오자마자 대뜸… 왜 왔어?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혼자야? 응. 

또 카메라. 니노미야의 손에 또 캠코더가 들려 있다. 누운 채로 또 사쿠라이의 얼굴을 잡은 채 계속해서 확대했다가 다시 멀어졌다. 그럼 좀 놀고 있어. 나 이거만 하고. 네에. 등을 돌린 채 다시 고개를 숙인다. 왜 저렇게 열심일까? 뭐가 저렇게 하고 싶은 걸까?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늘 뭐든지 열심이냐고.

방에는 책 몇 권 문제집이나 시험지 어렸을 적 사진 같은 것들이 제법 들어차 있었다. CD장도 있는 게 신기했다.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쪼그려앉아 뒤적여보니 장르가 나름 다양했다. 나름? 또래 치고는. 만화 같은 건 안 보는지 그런 흔적은 없었다. 잘 모르는 가수의 포스터도 한두 장 붙어 있었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2시 반쯤. 5시가 되려면 멀었다. 사쿠라이의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뒤적이며 또 테이프를 감아갔다. 가방에서 만화책 몇권을 꺼내 보고 있었더니 사쿠라이가 책을 덮고 의자를 돌렸다.

“뭐 하게? 우리 집에서 만화 보려고 왔어?”

“설~마.”

“혼자 있는 거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잖아.”

“어떻게 알아? 아냐. 되게 싫어해. 그래서 오늘은 쇼군 보려고 온 거야.”

실은 다른 이유가 있지만. 사쿠라이가 의자에서 내려와 니노미야의 옆에 앉자 보고 있던 만화책을 아무렇게나 내려두고 다시 캠코더를 들었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지만 치우지 않았다. 좋단 말야. 얼굴. 더 찍고 싶은걸. 

몸을 일으켜 바짝 붙인 채로 앉았다. 더운데 왜 붙어 앉냐는 듯이 사쿠라이가 팔을 움직였지만 모른 척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 방이 조용했다. 골목도 조용했다.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만 가득했다.

“있잖아.”

“응?”

“만약에 지금 당장 이 집이 무너진다고 하면. 근데 챙겨서 나갈 수 있는 게 딱 하나밖에 없다면 뭐 챙길래?”

“글쎄?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럼 지금 생각해 봐. 어때? 뭐 가져갈 거야?”

카메라가 이쪽을 향하고 있다. 애써 렌즈를 모른 척하며 생각했다. 책이나 문제집은 당연히 순위에 들진 않고, 포스터를 떼 가자니 아쉽고, CD장에 가득한 CD들도 아깝기야 하겠지만 다시 구하면 되는 거고….

“난 그럼 CD플레이어.”

“오. 의외야. 왜?”

“그냥. CD만 들고 가면 못 듣잖아. 대신 플레이어가 있으면 CD를 사면 되니까. CD보다 플레이어가 비싸기도 하고.”

“그렇구나.”

“넌? 너라면 뭐 들고 나올 건데?”

“난 당연히 게임기.”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한 사쿠라이가 손으로 캠코더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는? 맨날 뭐 찍고 있잖아. 그거 안 아까워? 응. 방에 있는 거라며? 얘는 매일 들고 있으니까 해당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냐. 치사해. 있어, 내 마음이야.

만약에 평생 한 음식만 먹어야 된다고 하면 뭐 먹을래? 아 어려워! … 밥. 반찬도 없이 밥만 먹으면 물리겠다. 니가 하나만 고르라며? 진짜 하나만 고를 줄 몰랐어. 만약에 평생 아이스크림을 초코랑 바닐라 중에 하나만 먹을 수 있다고 하면 어떤 거 할래? 이런 거 왜 물어보는 거야? 난 바닐라. 그냥 심심해서. 지금 몇 시야? 네 시 좀 안 돼. 왜? 가야 해? 아냐. 그냥 궁금해서. 있잖아. 만약에 동물이랑 같이 살아야 된다고 하면 어떤 게 좋아? 크게? 자세하게? 자세하게. 그럼 강아지. 왜? 귀엽잖아. 말 잘 듣고. 산책도 갈 수 있고.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할 건데? 가르쳐야지. 별 수 있어? 어떻게 해도 말 안 들으면? 안 듣는 채로 둬야지, 뭐. 만약에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가 여기 갑자기 나와서 소원을 하나만 들어 준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래? 소원? 응. 조건 있어? 아니 없어. 그냥 무제한. 음… 생각 안 나는데. 아무거나 얘기해 봐. 그럼 가족이랑 친구들 다 아픈 데 없이 행복하게 사는 거. 우와 재미없어. 니가 아무거나 얘기하라며! 그래도 재미없잖아. 있잖아 쇼군. 응? 좋은 냄새 난다. 나한테? 응. 이렇게 가까이서 맡는 건 처음이야. 멀리서는 맡은 적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 몇 시야? 다섯 시 십오 분 전. 왜 자꾸 시간 물어봐? 너 시계 없어? 응. 없어. 지금 이러고 있어서 시계도 안 보여. 너 언제 가려고? 몰라. 있잖아 쇼군. 응. 있잖아. 응, 있어. 만약에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어떡할래? 어? 내가 쇼군 좋아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래? 니가 나를? 응. 장난치는 거야? 아니. 왜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그럼 왜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얘기하고 싶어서. 아, 그래. 대답은?

침대 위에서 끌어안은 채로 그렇게 계속 얘기했다. 캠코더는 벽인지 창문인지를 찍고 있었고 니노미야의 한쪽 팔이 사쿠라이의 한쪽 팔과 엉켰지만 그대로 안은 채였다. 조용해졌다. 가까이 있어서 내쉬는 숨의 온도가 느껴졌고 숨소리가 들렸고 심장 소리가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아까보다 크게 들렸다. 

대답을 듣지 못한 니노미야가 고개만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5시까지는 5분 정도 남아 있었다. 아까보다 더 꽉 끌어안은 채로, 캠코더를 고쳐 쥐고는 다시 물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거야?”

“지금 생각 중이야.”

“느려. 3분 안에 대답해.”

“뭐? 니가 너무 갑자기 물어본 건 생각 안 하고?”

“3분 잰다?”

“그래라.”

다시 고개를 돌린 채로 시계를 바라본다. 초침이 한 바퀴 돌자 분침도 한 칸 움직였다. 사쿠라이는 아직도 대답이 없다. 초침이 또 한 바퀴 돌고 분침이 한 칸 더 움직였다.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초침이 다시 한 바퀴 돌았다.

“넌 좀. 이런 거 물어볼 땐 내 생각도 하고 물어보고 그래.”

“하고 물어본 건데.”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

“그래서?”

“싫어하지 않아.”

“그게 다야?”

“나도 좋아해. 너.”

시침이 움직였다. 오후 5시. 고쳐쥔 캠코더를 움직여 사쿠라이의 얼굴을 찍었다. 다시 말해줘. 뭘? 나 좋아한다고. 너 좋아. 됐지? 아니! 그렇게 말고.. 좋아한다고 해 줘. 좋아해.

그제서야 끊임없이 돌아가던 캠코더가 멈췄다. 전원 버튼이 꺼지고 렌즈가 닫히고 액정이 몸체에 붙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캠코더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았다. 이거 찍으려고…. 

“거짓말이었어!”

“뭐가?”

“그거 거짓말이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니노미야가 어쩐지 얼굴이 발개져서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사쿠라이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니노미야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일어선 자리를 서성거리더니 다시 침대로 오더니 사쿠라이에게 입을 맞췄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금세 떨어져나갔다. 방금 뭐였어? 라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백했어! 오늘. 고마워. 그럼 월요일에 봐. 나 갈게.”

방금 전엔 대답을 하지 않으면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눌러오던 사람이 지금은 반대로 사쿠라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냉큼 가방을 챙겨서는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났는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방까지 들렸다. 왠지 기분이 나빴다.



*





다시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그 생각에 잠을 설쳤다. 동아리실엔 언제나처럼 맨 먼저 도착했다. 교실이 아니라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그저 사람이 없고 나름대로 조용한 곳이어서였는데, 그 중에서 홀로 캠코더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니노미야가 가장 시끄러웠다. 걔 생각에 속이 시끄러웠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아서 공부나 하려는데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때 그건 뭐였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얼른 오지 않아서. 나더러 대답을 독촉해놓고 거짓말이라고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샤프심을 열세 번 정도 부러뜨리고 나서야 니노미야가 느즈막히 문을 열었다.

“니노. 너….”

“아, 이거.”

“뭐야?”

“집 가서 혼자 봐.”

“뭔데?”

“비밀.”

문을 닫자마자 니노미야가 내민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고 어떤 것도 써 있지 않았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걸 받아들고는 가만히 있다가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다. 묻고 싶은 게 먼저였다.

“있잖아. 엊그제. 왜 나한테 거짓말이라고 했어?”

“어? 거짓말?”

“나더러 좋아한다며. 나도.. 나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근데 거짓말이라며.”

“아, 그거. 쇼군한테 한 말 아닌데. 좋아한다고 거짓말할 리 없잖아.”

“그럼 거짓말이라고 한 건…”

“별거 아냐. 나 할 일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갈게요. 테이프 혼자 보고.. 다 보면 내일 얘기해 줘. 어땠는지. 안녕.”

또 자기 할 말만 늘어놓은 니노미야가 홀랑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캠코더가 없었다. 손에 들린 건 이어폰뿐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니노미야가 그렇게 사라졌으니 집중이 더 안 되면 안 됐지 잘 되는 일은 없었다. 오늘은 걔 때문에 글렀다.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괜히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차가워진 손으로 그늘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뭐길래 혼자 보라는 거야? 방에서 비디오를 재생했다. 뭐가 있길래 할 일이 있는데도 굳이 와서 건네주고 갔는지 궁금했다. 재생되는 영상에는 그날 서로 고백한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나왔다. 부끄럽다. 다음으로는 그날 책상에 앉아 있던 사쿠라이의 얼굴이, 니노미야가 구경한 방이, CD장이, 오는 길에 만난 옆집 개, 같은 게 있었다. 잠깐 끊긴 뒤에는 다시 사쿠라이의 얼굴이, 바짝 당겨진 눈이, 자신은 알 수 없는 표정이, 고치고 싶은 버릇이, 바람에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뭇잎이, 분명 카메라 뒤에서 니노미야가 바람을 분,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가, 방금 쓰다듬었던 고양이가, 자전거 타는 어떤 중학생이, 니노미야의 풀린 신발끈이 있었다. 또 다음에는 사쿠라이의 얼굴이, 반질한 코가, 시 끄 러 워 라고 말하는 입이, 누군가가 놓고 간 교과서가, 버려진 슬리퍼, 바람 빠진 배구공, 아무렇게나 놓여진 페트병, 동아리 선생님이 물을 주는 선인장, 반쯤 열려 더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소리, 운동장을 가르는 축구공, 공을 따라 움직이는 애들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엔 역시 또 사쿠라이의 얼굴, 다른 얼굴, 다른 날의 얼굴, 비슷한 표정, 모르는 습관, 집착적으로 당겨 담은 귓불이나 손가락 같은 게 있었고, 카메라를 돌려 든 니노미야가 있었다. 카메라 속 니노미야가 입을 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토요일 오후 5시에……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든가. 별끼리 충돌한다든가. 전쟁이 난다든가… 지구가 폭발한다든가.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지구가 끝난다고 했는데… 근데 그게 과연 진짜일까? 나는 몰래 믿고 있지만. 그래서 그때까지는.. 이 캠코더로 뭐라도 남겨 보면 좋지 않을까.. 나중에 보면 어떨까? 끝.’

그러니까 그때 얘기한 거짓말은 그 옛날 예언에 대한 것이었다. 오후 5시에 지구는 종말하지 않았고… 대신 사쿠라이가 고백을 했다. 그 예언을 믿었기 때문에 니노미야는 고백했다. 늘 캠코더를 들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찍어 놨을 줄은 몰랐다. 이런 것까지 찍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여 줄 거라고는…...


다음날 테이프를 돌려주면서 사쿠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너 변태야? 나를 그렇게 엄청 찍고. 어?

니노미야는 테이프를 받아들면서 헤 웃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대신 이어폰 한쪽을 내밀었다. 손에는 캠코더가 아니라 CD플레이어가 들려 있었다. CD가 돌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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