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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0.
컨트롤러 × 돈다케
고급 호텔에서요. 네? 추락사예요. 머리통이 거의 으깨져서, 처음엔 잘 못 알아봤다고.... 아. 마지막에 같이 계시던 게 그 팀이라고 해서 부른 거고요. 유서는 못 찾았는데 아마 자살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군요....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실로 처참하다. 겉모습을 그렇게 신경 썼으면서. 최후는 이렇게 난자하게...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심리적 보상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돈다케 씨? 컨트롤러는 수화기를 들지 않은 채 그렇게 생각했다. 막 귀국한 캘리포니아에게는 혐의점도 없고 알리바이도 있었다. 스크램블과 마초는 둘이서 같은 사건을 맡은 채로 동시간대에 다른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제외되었다.
빠지지 못한 것은 컨트롤러뿐. 몇 번이나 바뀌어나간 끝에 꽤 오래 붙어 있던 이 팀의 반장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도 니가 했다고는 생각 안 하지. 근데 이게 룰이잖아. 알지? 다물고 있으면 안 되잖냐. 뭐 아는 거 없어? 언질이라도 없었어? 아님, 또 치정이라든가, 그런 거 없냐? 어? 모, 모르겠는데... 그래, 동료라고 사생활을 다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에이씨. 참. 갈 때도 이렇게 사람 곤란하게 만들고......
말하지 않았지만 반장의 말대로 다물고만 있으면 곤란해질 것 같아, 컨트롤러는 영수증을 제출했다. 게임팩을 샀거든요. 중고. 매장에는 cctv도 있고 숨기기도 어려운 모습은 좋지 않은 화질에서도 금방 발견해낼 수 있었다. 알리바이는 참 쉽게도 성립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 돈다케가 죽은 건 자살이지.... 자살이 아니고서야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순 없지. 컨트롤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의 동료라고, 꼴에 존엄을 위해서인지, 수사는 길어지지 않은 채 종결됐다. 유서 하나 없는데도 자살이라고.
역시 실력 좋은 형사란 말이야. 이상할 만한 구석을 싹 없애고 죽어버렸잖아. 컨트롤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근엔 애인도 없고 원나잇도 안 했다는데요. 원래 이름도 모르는 동료들은 장례식을 치뤄줄 수가 없었다. 가족이랄 사람도 없었으니까 아주 빠르게 뼛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 사람은.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이 세상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런 모습을 남겨 두고 사라져버렸다. 컨트롤러의 집, 냉장고 구석에 애플 사이다 한 병을 남겨두고. 정말 이상했다. 죽은 게 아니고 그냥 없어져버렸다고 믿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팀은 개편되지 않았다. 너네 그냥 하던 대로 해. 한 명 없다고 뭐 크게 힘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너희들 꼴통이라 모인 거라 사건도 니들 같은 거만 오잖냐? 쉬엄쉬엄. 이상한 거나 잘 처리하라고, 이상한 애들끼리... 반장은 얄팍한 서류철을 책상에 턱 올려두더니 떠나버렸다. 어이, 당신도 이상한 사람이라, 이상한 사람들을 감독하러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컨트롤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돈다케와는 가끔 섹스하던 사이였다고 어딘가에 소리지르고 싶었다. 후각이 이상하리만치 좋은 캘리포니아 정도는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컨트롤러와 돈다케 둘을 공통으로 아는 사람들 중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더라? 눈앞에 목이 거꾸로 돌아간 채 엎드려 죽은 시체를 두고, 컨트롤러는 턱을 긁으며 처음 돈다케와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그때도 돈다케는 지각했던 것 같은데. 이 팀이 처음 구성될 때, 컨트롤러는 이상하리만치 일찍 도착해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캘리포니아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나머지와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아무튼 간에 이상한 놈들이란 소문은 자자한 조합이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각자 팀에서 따로 관리하기 어려워서 문제아들을 모아놓듯이 밀쳐둔 팀. 그런 와중에도 실력들이 참 무시하기 어려우니까, 명분 좋게 특별인지 뭐라든지... 반장이 명단을 훑으며 출석을 부르려다가 머릿수가 모자란 걸 알았을 때, 요란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온 게 돈다케였다. 비어 있는 곳은 컨트롤러의 옆자리라서, 부산스럽게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컨트롤러는 콧속을 확 비집고 들어오는 향수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자기소개는 어영부영 끝났다. 그제야 컨트롤러를 등지고 앉았던 돈다케는 허리를 의자에 기대고 앉으며 컨트롤러를 돌아 보았다. 컨트롤러는 아직도 태어나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향수 냄새에 적응을 못 해서 얼굴을 찡그린 채였다. 돈다케는 그런 컨트롤러에게 뭐라고 했더라. 뭐 언제나 그렇듯. 입버릇처럼 튀어나오는 못생겼다는 말이었겠지만. 컨트롤러는 외형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엔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캡모자에 그런 안경을 쓰고 다닐 리 없지 않겠는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 팀에서 그 말에 영향받는 건 끽해야 스크램블 정도가 아니었을까? 뭐, 그 녀석은 예상보다 단세포라서, 상처받는다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돈다케와 같은 팀이 되고 나서도, 스타일 전혀 변하지 않았잖아.
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게 신경을 긁는 여자였다. 다음 날엔 다른 향수 냄새가 났다. 컨트롤러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서른 개는 넘어갈 것 같았다. 그 중 돈다케가 가지고 있는 게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피곤해 보이는 날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별로 알고 싶었던 적이 없었지만, 친한 척하며 몸을 바짝 붙여 어깨동무한 스크램블 덕에 알게 됐던 때도 있다. 보통은 전부 남자 얘기였다.
그러니까 동료와의 삼각관계를 초래하고 한 명은 죽게 만들고 한 명은 감옥에 보내버렸으면서도 저렇게 아무 생각 없는 듯 현장을 휘적이고 다니는 게 아니겠는가, 하고, 컨트롤러는 생각했다.
그날은 참 사건이 안 풀렸다. 용의자들에겐 다 나름나름의 알리바이가 있었고, 진술해 줄 증인들도 있었고, 증거들은 애매하게 포인트가 없었고, 시간은 흘러만 갔고, 뾰족한 구석도 없었다. 답답해 같이 술을 먹었다. 특히 그 사건에 신경을 쓰던 돈다케는 남들보다 더 마셨다. 아주 걸레짝처럼 취했다. 어쩌다가 뒷처리를 인계받은 컨트롤러는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몸을 업듯이 해서 대충 아무 호텔에 들어갔다. 등에 닿는 가슴팍에서 가짜 느낌이 너무 많이 나서 이상했다. 침대에 던져두자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리더니 구두를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한참을 구역질하는 소리를 듣자 하니 참 가지가지한다 싶어서, 숨이라도 막혀 죽을까 봐 화장실을 뒤따라 들어갔다. 욕조에 기대듯 앉아 있던 돈다케는 컨트롤러가 들어오자 변기 물을 콱 내려 버렸다. 그런 것, 보여 주기 싫었으면 애초부터 그렇게 안 마셨으면 되잖아요? 수화기가 없었다.
“봤지?”
대답할 수 없어서 어깨만 올렸다 내렸다. 뭘 봤냐고 물어보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 그 여자 말야.”
당연하지. 같은 현장에 출동했으면서. 컨트롤러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여자가 말이야...”
속이 답답한지 추레하게 기대 앉은 채로 목걸이를 풀어내고 바닥에 던지고, 반지도 빼내고, 벨트도 풀러서 아무렇게나 던져둔 돈다케는 고개를 막 끄덕였다. 저러다 목이 꺾여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여자라는 게 말이야. 컨트롤러는 알겠어?”
뜬금없이 무슨 말을 자꾸 하는지. 죄송하지만, 이성 관계는 인생의 계획에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접근해온 여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수화기가 여전히 없었다.
“난 알겠어. 아니... 실은. 나도 모르겠어. 그 여자...”
그렇게 말하고 돈다케는 잠들었다. 황당해서 컨트롤러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마른세수를 하고 떨어진 금붙이들을 주워서 먼저 협탁에 올려 두고, 토사물이 묻은 코트는 벗겨 두고, 지친 몸을 잡아당겨 다시 침대에 눕혔다. 컨트롤러는 너무도 피곤했다. 이런 사람과 이렇게 엮이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어쨌다는 건데? 여자가 뭘 했는데? 그 여자는......
아...
돈다케의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던 컨트롤러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들어서 일어나 다시 현장으로 갔다. 현장을 다시 한 번 싹싹 뒤지고, 돈다케가 그렇게 얘기했던 여자의 시체를 다시 한 번 보러 갔다.
아기를 뺏겨서 자살했다. 그런데 자신의 아기가 아니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다. 아기는 남자의 쪽으로. 아기의 친엄마는 알 수 없었고 남자는 여자가 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당황했다. 죽어서 알려 주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증거들이 그렇게 애매하게만 남아 있던 건 결국엔 자살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였고 자기를... 진짜의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진짜 자신을 아직 받아들여주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분노. 그러나 아직은 남은 사랑. 그런 것들로 만들어진 현장. 입이 썼다. 왠지 모르게. 그날 돈다케는 무단으로 결근했다.
컨트롤러는 괜히 감사인지 무엇인지를 전하고 싶어서 돈다케를 찾아다녔다. 그런 여자 당연히 눈에 띄지 않겠어요? 그러나 등 굽은 남자가 찾기에는 너무 어려운 여자였을까.... 아니었다. 컨트롤러는 어느 금융사 빌딩 앞에서, 형사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가격으로 보이는 아주 고급의 정장을 차려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겨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약간의 파마끼가 뒷머리 끝에 남아 있는 어떤 남자를 발견하고 만다. 늘 시선을 바닥에 처박고 있었어서, 돈다케의 얼굴을 단번에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컨트롤러는, 대신 남자가 미처 빼지 못한 귀걸이 하나 때문에 돈다케를 알아봤다. 그런데 불러낼 수가 없었다. 수화기는 옆구리에 있었고 모습은 현장에서와 똑같았는데, 여기서 그 사람을 돈다케 씨, 하고 전혀 부를 수가 없었다. 일단 불러내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건물 앞이라 너무도 시끄러웠다. 다가가기엔 왠지 돈다케가 아닌 게 드러날 것도 같았다. 컨트롤러는 어느 기둥 뒤에 숨듯이 서서 그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조급한 듯 시계를 봤다가 휴대전화를 봤다가 어수선했다. 가방이 없어서, 모두들 백팩이나 서류 가방을 들고 그걸로도 모자라 품에 파일철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오도카니 있는 그 사람, 너무 이상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안에서 출입증을 찍고 밖으로 나오는 여자 직원 한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 컨트롤러는, 커플이라고는 모니터의 그래픽으로밖에 마주친 적 없으면서도, 지금 저 멀리 멀리 걸어가는 한 여자와 남자가, 바로 결혼을 앞둔 커플임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었을까. 남자는,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계속 바라보다가, 결국 마지막에서야 하나 남은 귀걸이를 눈치채고 서둘러 빼내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꾸만 혀로 입술을 축여서 오히려 입술이 다 부르텄다. 구두 뒤축이 닳을 정도로 다리를 떨었다. 생기가 하나도 없이 서 있었다. 그 모습, 컨트롤러에겐 참 어려웠다.
추워서 코가 떨어질 것 같은 겨울에 돈다케는 생일이었다. 컨트롤러는 새 가발을 하나 사서 선물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돈다케는 손거울을 내려 놓고 컨트롤러를 올려다봤다. 이게 뭐야? ... 가발입니다. 왜 주는데? ... 생일... 이시라고 들어서. 너 진짜 특이하다. 왜 가발? 나 많은데. ...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거.. 보다 이게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면 안 쓰셔도 되고... 정 싫으시면, 제가 다시 가져가서 환불이라도...
돈다케는 그렇게 횡설수설 말을 잇는 컨트롤러를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바라봤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공통점이라면 같은 팀이라는 것뿐. 오히려 같이 일할 때 역겹다는 티를 낸 건 그쪽 아니었나? 다리를 꼬고 앉은 돈다케 발끝에 걸린 힐 뒷축이 바닥에 딱딱 부딪혔다. ... 시끄러워요, 그거. 너 진짜 이상하다?? ... 이상하다고 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그렇고, 그중에 제일 이상한 사람을 꼽자면, 역시 돈다케 씨 아닐까 하는데...
난사건이 해결됐을 때나, 도무지 안 풀릴 때, 오로지 그럴 때만 섹스했다. 안 풀리면 안 풀리는 대로, 풀리면 풀리는 대로 지랄맞았다. 매번 다른 호텔 다른 방을 잡으면서도 컨트롤러는 바지 지퍼와 속옷만 내린 게 전부였고 돈다케는 꼭 그 퍼코트를 입은 채였다. 안에 뭘 입었든, 컨트롤러에게 삽입하게 해주면서도, 맨몸을 보여주는 것만큼은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컨트롤러는, 그 코트 빨기는 하냐는 식으로 물었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매번 버리고 새로 산다는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새 옷 특유의 섬유 냄새는 향수 냄새랑 섞이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생일이 아니어도 컨트롤러는 종종 돈다케에게 새것을 선물했다. 처음엔 새 가발. 그 다음엔 새 신발. 새 목걸이. 새 귀걸이. 새 코트. 새 치마. 새 속옷... 마지막 것을 받아들고 포장을 열자마자 돈다케는 경찰서 안인 것도 까먹고 소리를 꺅 질렀다. 모두가 이쪽을 돌아봤다가 소리를 지른 사람이 누군지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너 미쳤어 이런 걸 직장에서 주고. ... 싫으면 다시 주셔도 되구요... 새 속옷을 받은 날은 사건을 해결한 날도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 날도 아니고 평범하게 일이 없던 날이었는데 돈다케는 멀쩡한 제정신으로 컨트롤러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평소라면 쪽팔리니까 메일로 방 번호를 알려 주고 오라고 할 사람이 웬일이지, 하면서, 컨트롤러는 말 없이 뒤따라 갔다. 선물 봉투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 돈다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슷한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시키는 대로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컨트롤러는 어떤 게 달라졌는지 보다가 손에 아까 입었던 원피스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는 걸 봤다.
“... 입었습니까?”
“뭐를?”
“... 제가 준 속옷이요.”
“글쎄?”
“... 그래도 지금, 벗었잖아요, 옷.”
“무슨 상관일까나?”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잖아요? 맨몸. 그렇게 얘기하려다가 컨트롤러는 그냥 수화기를 내렸다. 갑자기 이 모든 게 지쳐서 침대에 멋대로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있었는데 돈다케가 안경을 벗기는 게 느껴졌다. 처음 이렇게 침대 위에 돈다케가 널려 있던 게 생각난다.
“그래. 입었어. 보여 주진 않을 거지만.”
“그럼 별로 주는 의미가 없네요.”
새것들은 돈다케 씨가 더 잘 보고, 자주 보고, 좋아하고, 더 많이 사고, 안목도 있죠. 그런데도 내가 주는 것들, 싫지 않게, 아니, 기쁘게 받아주잖아요. 그것들, 꼭 한 번씩은 써 주기도 하고. 나, 나는요,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 생각해요, 여러모로, 정말로...
돈다케의 머리통 옆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다가 얼굴에 대고 컨트롤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섹스하는 중인데 그럴 정신이 있는 게 더 신기하네. 돈다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삽입과 쾌락에 집중하자 돈다케는 말이 없어졌다. 대신 말이 되지 못하는 음절들만 뱉어댔다. 괜히 교태롭게 신음을 내던 때도 있고 칼에 찔린 듯한 소리를 내는 때도 있다. 섹스할 때까지 부산스럽고 정신없고 어수선하고 산만한 여자야, 컨트롤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 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아, 으응, 뭐, 뭐가?”
“... 아무래도 자꾸 생각나서, 물어보고 싶었었는데, 도무지 타이밍을 못 잡겠어서, 그러니까요, 돈다케 씨, 아기라는 존재가 있으면, 옆에 있음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까?”
돈다케는 찬물은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자의 성기에서 액이 튀었다. 컨트롤러는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돈다케는 그대로 컨트롤러의 멱살을 쥐고 잡아당겨서 키스할 듯이 아주 가깝게 얼굴을 마주하고는, 막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속삭였다. 왜 그런 걸 생각했어...? ... 그날 여자에 대해서 자꾸만 말했잖아요... 수화기를 들 수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돈다케의 추락사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고 며칠 지나서, 실은 그날이 그때 금융사 건물 앞에서 목격했던 그 커플의 결혼식 날짜라는 걸 컨트롤러만이 알게 됐다. 파혼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냥 남편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던 걸 누군가가 전해줬다. 그 사람은 그게 누구인지도 몰랐겠지만 컨트롤러는 알고 말았다.
그렇게 싫어서 자기 머리통을 그렇게 깨부수고 도망치다니. 정말 겁쟁이네요.
한 1년이 좀 덜 되게 지났을까? 어떤 사건에서 만난 용의자가 정말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돈다케와 닮아서, 컨트롤러는 답지 않게 그 사람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죽은 사람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남자는 힘겹게 컨트롤러에게만 털어놓았다. 피해자는 단순 강도에서 운 나쁘게 당한 것뿐이었다. 컨트롤러는 그 남자에게 자꾸자꾸 말을 걸었다. 때가 좋게 손에 수화기가 감겨 오는 탓이었다. 남자는 그런 컨트롤러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웃어 주었다. 연인이 없어져 갑자기 허전해졌었던 건지 남자는 컨트롤러와 자주 만났다. 그것도 돈다케 때와 비슷하게, 사건이 너무 안 풀릴 때나, 그런 난사건들이 해결됐을 때. 남자는 컨트롤러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컨트롤러는 그런 시선엔 이제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남자는 오보에 연주자였다. 아 그렇군요. 컨트롤러는 몰래 공연장에 가서 연주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 날 남자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서, 어제 봤다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런 추궁을 당하면, 컨트롤러는 직업이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용의자처럼 쪼그라들어 괜히 사과하고 말았다. 연인도 아니었고 단순히 육체적 관계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뭐랄까 정의하기 참 어려웠다.
돈다케가 죽은 지 2년이 되던 날. 컨트롤러는 집에 쌓여 있던 선물 중 하나를 남자에게 주었다. 남자는 기쁘게 받았지만, 선물을 사용해 주는 일은 없었다. 컨트롤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매번 티 나게 선물을 써 줬던 돈다케가 생각났다.
쌓여 있던 선물을 다 줘 버렸다. 남자는 갑작스레 진행되는 선물공세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준다는 걸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성격이라서 웃으며 받아들기는 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그 선물들의 처분이었다. 컨트롤러가 남자에게 주었던 것들은 가발, 가방, 구두, 목걸이, 귀걸이, 치마 따위였다. 남자로서는 도무지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는 선물들이었지만, 그것들이 그저 단순히 가져다 버리기에는 일단 받은 선물이었고, 또 속물적으로 생각하자면 나름나름 고가의 제품들이었기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옷장 안에 대충 던져 두고만 있었다.
언젠간 컨트롤러 씨에게 말해야지. 사쿠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의 이름이 사쿠라이 쇼였다. 컨트롤러는 남자의 이름을 알았지만 사쿠라이는 컨트롤러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연인이 죽었을 때 찾아 온 형사들은 다 독특했고, 이름 하나 제대로 알려 준 사람은 반장이라는 사람밖에 없었다. 컨트롤러는 그때부터 수화기에 대고서만 말을 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컨트롤러라고 부르니 그쪽도 나를 컨트롤러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남자는 형사의 말에 거부할 수 없어서 3년째 컨트롤러 씨, 라는 딱딱한 호칭으로 형사를 불렀고, 형사는, 그 말을 들으면 수화기를 들고, 사쿠라이 씨, 라고 대답했다. 이름 앞에 조금 생겨나는 공백이 단순히 수화기를 들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기분 탓이라고 치고 넘겼다. 사쿠라이는 그렇게 무던한 구석이 있었다. 컨트롤러가 뭘 하든 매번 방긋방긋 웃어 주었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사람 좋은 모습으로 선물을 받아 들고 집에 돌아가서는 곤란한 표정으로 옷장에 정리해 두는 남자였다. 그러니 컨트롤러의 눈앞에서 컨트롤러의 신경을 긁을 건수가 없었다. 매번, 발소리부터 생김새, 거기에 말투, 향수 냄새로 오감을 자극하다 못해 뒤집어 놓는 어떤 여자랑은 전혀 딴판이었다. 컨트롤러는 그래서 사쿠라이가 좋았다.
“컨트롤러 씨.”
“... 네.”
“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 물어보세요.”
“오늘도 선물, 주실 거예요?”
“... 네. 일단은 들고 왔는데요. 싫으시면 제가 다시 가져가도록...”
“그게 아니라요. 왜 자꾸 여자 것만 주는 거예요?”
“... 네?”
“지금까지 컨트롤러 씨가 저한테 준 선물요, 다 여자 거라서, 고맙긴 한데요, 제가 받은 걸 누구 다시 주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깝구, 아니, 선물이니까 버리는 건 당연히 안 되는 거구요, 근데 여자 거잖아요, 주신 게요. 그러니까 저는 단 하나도 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왜 자꾸 주시는지 모르겠어서... 오늘 것도 여자 거면, 별로 받고 싶지가 않을 것 같아요.”
“...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오늘 드릴 건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받아 주세요. 그 전에 드린 선물들은, 쓰지 못하신다면 다 버리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
“알겠어요. 오늘 거는 집 가서 열어 볼게요! 미안해요. 뭐라고 하는 게 아니구요.”
사쿠라이는 멋쩍게 웃으며 컨트롤러에게서 마지막 선물을 받아 갔다. 다행히도 컨트롤러가 준비한 마지막 선물은 겨울에 어울리는 어그부츠였다. 사쿠라이가 자주 입고 다니는 코트와 어울릴 것 같아서 샀던 부츠였는데, 역시나였는지 그 다음에 만날 때 이때다 싶었는지 사쿠라이는 그 부츠를 냉큼 신고 와 주었다. 고마웠다.
그렇지만 섹스할 때만큼은... 사쿠라이는 컨트롤러가 버거웠다. 일단 머리 옆에 자꾸 놓여 있는 수화기가 머리랑 부딪혀서 신경이 쓰였다. 모자랑 안경을 벗기는 것도 겨우 했다. 옷을 벗겨 놓고 나니까 등이 굽은 것도 있었지만 옷을 이상하리만치 껴입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버거운 건 컨트롤러의 입버릇이었다. 민간인이고, 여태까지 사귀어 온 사람들이 단순히 남자일 뿐 아주 담백한 연애와 섹스만 해 왔던 사쿠라이에게 컨트롤러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특히 컨트롤러는 자꾸만 사쿠라이를 여자 대하듯 했는데, 그게 신경이 쓰여서 사쿠라이는 컨트롤러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느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없었다고 했다. 보시다시피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 남자친구는요? 딱히 없었습니다. 그 앞에도 잠깐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것도 역시 수화기 탓.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운 것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정도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게 아니라면 살인 사건 현장 정도. 그곳엔 또 많은 사랑이라든가. 그런 애착이라든가. 그런 게 꽤 많이 있으니까요. 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게임을 했어요? 엄청 바쁘지 않아요, 강력계 형사라는 거? 그니깐, 막 에로 게임? 그런 거에도 그런 게 있어요? 남자가, 남자랑 했는데, 근데 임신이라든가 하는... 말만이 아니고 진짜...? 그럼 왜요? 왜 자꾸 나한테... 나랑, 내가 닮았어요, 그 게임 주인공? 그런 캐릭터랑?”
수화기를 내려둔 컨트롤러에게 사쿠라이는 그렇게 물었다.
그런 게임은 당연히 있고, 저도 당연히 가지고 있고, 해 본 적도 있지만, 그치만 딱히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한 번 정도 테스트에 그친 거라고 할까, 그게 전부인데, 있기야 있습니다. 사쿠라이 씨, 닮은 건 캐릭터 같은 게 아니에요. 당신이랑 닮은 건, 그 여자입니다. 내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 두고, 필요할 때만 나랑 섹스하고, 그렇지만 내가 준 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 주고, 내가 뿌리지 말라고 한 향수를 보란 듯이 더 많이 뿌리고 오고, 실력이 참 좋은 형사, 그런데 아무튼 이상한 여자였죠, 산만하고, 아, 정말 정신 없게 만드는 여자였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이랑 닮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 모습의 그 사람이랑 닮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할까, 기억나는 건, 그 여자 발목이 볼만하다는 것뿐이라고 할까, 죽을 때, 머리통이 다 깨졌는데도 발목 하나 깨끗하게 온전해서 참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저 그 사진을 찍어서 자위한 적이 있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복숭아뼈, 어쩌면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쿠라이 씨랑 닮은 게 그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모르겠어요, 결혼에서 도망친 남자인지, 이 세상에서 도망친 그 여자인지......
수화기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전화선이 끊긴 탓에 컨트롤러는 말을 다 할 수가 없었다. 사쿠라이는 컨트롤러가 선물해 준 어그부츠를 신고, 컨트롤러를 호텔방에 그대로 놔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모르는 말을 막 중얼대는 형사가 미친 사람처럼 느껴져서. 아니, 처음부터 전화통을 붙잡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구는 게 이상했는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왜 뿌리치지 않았을까, 하고. 첫눈을 밟으면서 어쩌면 연민인가, 싶었지만, 추워서인지 컨트롤러가 무서워서인지는 모르게 소름이 돋아서 사쿠라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장 내일이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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