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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의 두번째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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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열어 봐.”

기상하자마자 거실로 걸어나갔다. 쇼는 눈을 뜨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일어났냐고 묻는 듯이 눈을 살짝 접어 웃어 주고는. 다시 원래대로의 자세로 돌아갔다. 난 화장실로 들어가 까치집에 물을 묻히고 양치질을 하는 동시에 밖으로 나와서 쇼에게 물었다.

“어떤 게 편해?”

“응?”

“자세.”

쇼는 어쩐지 살짝 긴장한 듯해 보였다. 긴장할 일 아니잖아? 그렇게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앉은 채로 요리조리 움직여 보던 쇼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난 마저 양치질을 했다. 입을 헹구고 돌아오니 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하게?”

“아냐. 니노 기다렸어.”

“응.”

그냥 누울게, 하면서 쇼는 거실에 얌전히 나란히 누웠다. 내가 열어도 돼? 니가 열래? 집 구석 어딘가에 있던 공구 박스를 들고 오면서 물었다.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쇼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배를 열었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니노, 믿으니까, 라고 했다.

참. 여기서 날 믿지 않는다면 뭐가 달라지는데. 여기서 니가 믿을 건 나뿐이잖아. 나를 못 믿으면, 아무도 없잖아? 이제 니 세상에.

“뭔가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있어?”

“나 잘 모르는데... 그 서류 봐 봐. 거기 아마 설명서 같은 거 있을 테니까...”

난 살짝 웃음을 삼켰다. 옷자락을 올려 들어 붙잡은 채로, 밀려 내려와 배선을 정리하는 나를 방해하지 않도록 가만히 있는 쇼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공구 박스를 열었다. 근데 전원을 끄고 정리했어야 됐었나? 알려준 정성을 무시하지 않는 셈 치고 서류더미를 뒤졌다. 뭔가 그림과 도면이 잔뜩 그려져 있고 클립으로 묶여 있는 서류.

남이 보면 로봇인지 사람인지도 알 수 없을 텐데. 고작 이 서류 하나로 고장나는지 아닌지가 갈린다니. 내가 손을 조금만 쓰면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잖아.

입속으로 계속해서 욕지거리가 샘솟았다. 일단 만져지는 피부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배선을 정리하면서 느껴지는 개발의 흔적. 한번에 대단한 걸 만들어낸 게 아니라, 정말 사람을 키우듯이 하나하나 발전시켜나간 게 드러나는 이음매들. 아버지는 내가 크는 건 보지도 않았으면서 깡통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았댄다. 왠지 모를 역함. 남들에게 줄 것도 아니고 기술을 써먹을 것도 아니면서 고작 자기 연구 조수 시키려고 이렇게까지 공들였다구.

나에겐 일언반구 미리 말해 주지도 않고 자기 로봇을 나한테 보내 버렸으면서, 무슨 같이 티타임을 즐기려고 차를 마실 수 있게까지 개조를 해 주냐고. 그런 분노를 삭혀가면서 배선을 열심히 갈라 방향대로 정리해 잘 묶어 다시 넣어 주었다. 여차하면 알아서 할 수도 있게 해 버릴까 했는데. 왠지 그러면 나와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지니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버려서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마무리를 끝내고 커버를 닫아 주었다. 이음매를 맞물리게 해 닫는 순간 틈새는 1미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난 그 흔적을 손으로라도 찾아보려고 그 근처를 더듬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끝났어?”

“응. 옷 내려도 돼.”

“고마워. 또 부탁할게.”

그런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누군가에게 의존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아버지의 유언 같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쇼는 이 집에 올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정체를, 존재를 밝힐 일도 없었다. 그러니 인공지능 아래에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라면 내가 고작 배선 정리를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것을 터득한 순간 나를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 최악이네. 이거, 분명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난 갑작스레 힘이 쭉 빠졌다. 쇼가 다시 일어나는 것도 보지 않고 소파에 냅다 누워 버렸다. 그거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지만 왠지 온몸의 에너지를 다 태워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뭘 해야 되지. 누운 채로 가만히 있자 다시 잠들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저 발치에 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도무지 잠은 오지 않는다. 난 늘 집에만 있고 그는 연구실에만 있었으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연구를 돕던 조수 로봇? 그렇다면 이제 어떤 연구를 도운단 말인가. 내가 소파에 늘어지게 눕는 동안 쇼는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그대로 있었다.

“뭔가 할 게 있어?”

“음... 별로...”

“나도 없는데... 난 게임이라도 하면 되지만.”

“그러게. 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 보면? 옷은 갈아입어도 되고.”

역시 난 그대로 누운 채로 바로 손에 닿는 컨트롤러를 집어들었다. 딱 어제 이어서 하려고 뒀던 게임을 켜고...

그러나 저 앞에 있는 로봇 하나가 무척이나 신경 쓰여서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화면을 봤다가 쇼를 한 번 봤다가. 다시 화면을 봤다가. 나를 따라 똑같이 화면을 보고 있는 저 뒤통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시간이 좀 지나자 쇼는 화면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게임을 꺼 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쇼는 무심코 나를 올려다 보았다.

“일어나.”

“응?”

“옷 갈아입어... 옷. 외출복으로. 설마 정장만 있는 건 아니지?”

“니노는 말야, 별로 휴머노이드라든가 만나 본 적 없구나.”

“어?”

“별거 아냐. 나갈 거야? 산책?”

“아... 뭐.. 그러게. 영화라도 보러 갈까?”

“영화?”

“어. 본 적 없어?”

“알긴 알지.”

본 적 있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았다. 연구 조수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차도 마실 수 있게 해 줬으면서 바깥엔 데리고 나간 적이 없어? 끽해야 회사 안을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어?

“바깥 바람이나 쐬러 가자구....”



편한 신발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건 이미 짐을 풀 때 다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짓을 언제 이렇게 해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집에서 영화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고 영화관에 지금 어떤 영화가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뒷주머니를 더듬어 지갑을 챙겼는지 확인하는 동안, 쇼는 내 옆에 가만히 서서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말없이 내 곁에서 계속 걷기만 했다. 난 그 침묵을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었다.. 이런 건 나답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말에 건성인 듯 정성인 듯 대답해 주면서, 쇼는 골목 풍경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지켜본다라고 할까. 마치 살면서 처음 보는 것을 눈에 담는 것처럼...

“영화관은 자주 가?”

“가긴 가는데... 사람 많은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레이트쇼로 종종. 조금 더 싸기도 하고...”

“흐음. 그렇구나.”

“연구실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어?”

난 내 신발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쇼에게 그렇게 물었다. 묻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테지만. 난 도무지 쇼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질문은 기침처럼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쇼는 말을 잠시 고르더니, 응, 없어, 라고 대답했다. 그럼 처음 나온 건 언제야?

“선생님 장례 절차 쯔음. 거의 니노 집에 배달 온 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야.”

“아하...”

습관적으로 파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는데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담배를 놓고 나왔다.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그 뒤로 말이 없어진 채 영화관으로 걷는 길에서, 꼭 숨 돌릴 틈이라도 찾듯이 담배를 피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평일 느슨한 오후여서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다. 이 정도면 주말에 비해 거의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멀리 시간표를 보는데 다행히 가까운 시간에 적당한 영화가 하나 있었다. 난 감독의 이름만 대충 알고 영화나 배우에 대해서는 시놉시스도 한 줄 읽지 않았지만, 걸려 있는 포스터로 정보값을 대체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는 말야.”

“응?”

“그냥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것처럼, 머리에서 인터넷에 접속한다든가, 그런 거도 돼?”

표를 사는데 잠시 망설였다. 안드로이드는 이 중 어떤 표의 값을 치러야 하는지 몰랐어서. 난 가져 본 적도 없으니 관련된 규제도 알 턱이 없었다. 누가 같이 간다는 얘기도 건너 들은 적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도 튀어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럴 때만큼은 쇼를 아주아주 인간처럼 다듬어 놓은 아버지에게 조금 감사했다. 난 그냥 일반 표를 두 개 끊어 지갑 사이에 끼운 뒤 매점으로 향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나를 졸졸 따라오면서, 에, 그런 건 할 수 없어, 라고 했다. 가능하다는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는데도 왠지 아쉬웠다.

“뭐 먹을래?”

턱으로 매점의 메뉴판을 가리키자 쇼는 그걸 한참 쳐다보았다. 난 커피와 콜라와 팝콘 사이에서 맹렬히 고민하다가 커피를 택했는데, 쇼는 도무지 고르지 못하고 한참이나 메뉴판 앞을 서성였다.

“뭐, 왜? 못 골라?”

“말했잖아, 나, 이런 건 못 먹어...”

“먹는 건 안 사도 돼. 마시는 건? 뭐, 티타임은 가졌다며...”

“그럼 라떼로. 아이스!”

내가 결제하는 동안에도 커피를 받아 양손에 들고 돌아 나와 빨대를 꽂을 때까지도 그는 내 옆에 한 걸음 떨어진 채 계속 붙어 있었다. 그에게 그 몫의 커피를 건네 주고 지갑에서 표를 꺼내 표까지 줬다. 입장하라는 말에 먼저 큐알을 찍고 안으로 들어섰다. 천재까진 아니어도 엘리트까지는 되는 박사가 손수 만든 안드로이드는 그런 것쯤 곧잘 따라했다. 일반 1명. 나도 일반. 너도 일반. 그럴 수 있어?

구성된 방식이 전혀 다른데...

영화는 반복의 반복. 버스 기사가 나오고 그가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시를 쓰고... 그런 것들이 매일매일 되돌아오는 일주일.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져 꾸벅꾸벅대다가 어느새 쇼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졸고 있었다. 조금 왁자지껄한 장면이 나왔을 때 눈을 뜨고 스크린 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는데, 내가 졸든지 말든지는 상관도 없었고, 그 흥미로울 것 하나 없는 영화를 무척이나 재미있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켜지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서 난 체면치레처럼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는데 쇼는 정중하게 녹은 얼음까지 다 마셔서 깨끗하게 비어 있는 통을 선반에 올려 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그러자 쇼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하나하나 재미있다고 느꼈던 장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사 하나 잊지 않고 장면 하나 틀리지 않고 그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난 그런 점에서 괜시리 그의 비인간성을 느꼈다.




*


솔직히 말하자면 아버지 없이 사는 동안 한 번도 원망이란 거, 해 본 적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부족한 점도 없었다. 가끔 엄마가 전화로 소리를 지르는 건 있었지만 그것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끝나 버린 일이었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에게서의 사랑을 원해 본 적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 나에게 오기 전까지는. 난 밥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로봇의 정수리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우리를 버리고 갈 정도로 열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치부했었던 거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아버지의 경우가 된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난 니노미야 박사의 유전자를 절반은 받은 혈연이니까. 어렸을 때도 그렇게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자라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를 좀 더 봐 달라거나. 나에게 더 신경을 써 달라거나. 그런 귀찮은 요구나 생각은 일절 해 본 적이 없었어서, 종종 뉴스에 나오는 사연들에 가슴 깊게 공감할 수도 없었다.

얼마 전엔 여자 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안드로이드에게로 떠난 탓에 남자가 박탈감에 못 이겨 무단으로 그녀의 집에 침입해 그 안드로이드를 부순 일이 뉴스에 난 적 있었다. 남자는 구속됐지만 상해치사, 살인미수, 폭행은 아니었다. 주거침입. 점유물훼손. 법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죽어버린 안드로이드는 고작 물건이었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피해 여성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난 정말 그를 사랑했고 할 수만 있다면 결혼도 생각했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이랑 비슷한 안드로이드라면 사람이랑 같은 게 아니냐면서. 그도 나를 사랑했다고. 증거도 있다고. 그도 그렇게 느꼈다고... 그건 단순히 남자가 나의 집에 들어와 티비 같은 가전을 부순 것이 아니라면서. 그건 분명히 폭행이고 살인이라고. 어쨌든 여자는 울면서 데이터를 복구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서로를 잡아먹잖아. 만약 정말 사람이라면 데이터로 복구 같은 것, 할 수 없겠지. 복구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좋아한 상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개체인 것도 아니고. 난 속으로 중얼대면서 구직 사이트의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리고 있었다... 죄다 인공지능 아니면 안드로이드. 하다 못해 아르바이트도 비품 조립. 도대체 삶은 누가 살고 있는 거냐.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내리사랑에 총량이 있다면 난 그걸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그럼 그 남은 내리사랑이 어디로 갔는가 하면, 아버지가 빚고 만들고 키우고 기르고 닦아낸 저 안드로이드에게 다 가 버린 거라고.

만약 내가 저 안드로이드에게서 그 내리사랑을 갈취해버릴 수 있는 거라면, 난 마땅히 해도 되지 않을까...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거실에선 말없이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돌아 보니 쇼가 거실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이라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인간인 나도 읽지 않는 책.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런 것쯤 알아서 학습해버릴 수 있는 거 아냐? 같이.

거실에 앉은 그를 무시하고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습관처럼 불을 붙이려다가 문을 다 닫지 않은 걸 알아채고, 뒤돌아 그에게 물었다.

“담배 냄새, 싫어?”

그런 걸 물을 줄 몰랐다는 듯, 쇼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다가, 눈을 굽혀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알아서 정화하면 되니까, 별로, 괜찮아, 라면서.

난 반발심에 일부러 문을 닫지 않고 불을 당겼다. 이봐. 정화라니? 공기청정기 같은 건 우리 집에도 누나 집에서 쓰다가 건너온 헌 것 하나 있거든... 고장도 안 났고 잘 돌아가거든.

어렸을 적부터 난 스스로가 독립적이고 외로움도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까지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도 다 자신들이 고백해 왔고 자신들이 나를 차고 떠나 버렸다. 난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좋다고 하면 그렇다고 하고 이제 싫어졌다고 하면 그러라고 했다. 왜 붙잡지 않느냐는 말에는 떠나고 싶다는데 어떻게 잡느냐고 대답했고 자기를 한 번이라도 사랑은 했냐는 울음 섞인 말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 번이야 사랑은 했겠지, 하고. 섹스야 사랑 없이도 해 버릴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사랑 사랑에 사랑. 그렇게 필요할까. 그렇게 갖고 싶을까. 그 사랑이라는 거. 난 왠지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가족을 향한 사랑. 그런 건 이미 충분히 있었다고 지금도 그때도 생각은 한다. 왜냐면,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땐 나, 눈물 한 방울 나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죽는다고 한다면, 정말 끔찍하게 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그런데 저 안드로이드가 나의 현관 앞에 도착한 후부터 조금씩 뒤틀린 것 같다. 아버지가 나 아닌 다른 아들을 만들고 나에게 줬어야 할 내리사랑을 자신이 만든 아들에게 줘 버린 거라는 생각에 휩싸이고 만 거다. 그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나의 생각이. 아버지는 내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고 쇼가 좋아서 떠나 버린 거라고 한다면. 그럼 진짜 아들인 내가 가짜 아들인 쇼보다 좀 더 그 내리사랑이란 걸 받을 수 있었다면 괜찮았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걸 지금에서라도 뺏어버리면 난 괜찮을까? 아버지의 내리사랑을 잔뜩 받아서 로봇 주제에 티타임까지도 즐길 수 있고 말도 잘 할 수 있도록 혀도 침도 기능하도록 해 둔 저 안드로이드에게서, 그걸 다 뺏어버린다면, 난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나에게 인간으로서 결핍되어 있는 게 있다고 누나가 나에게 언젠가 말한 적 있었는데. 만약 그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줬어야 하는 내리사랑인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걸 다 받아내고 싶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도 원래 내 앞으로 돌아왔어야 하는 몫을 가져가버리고 싶다.

문을 닫고 들어오자 쇼는 책을 읽다 말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난 그의 바로 위에서 불빛을 가리듯이 쇼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물었다. 왠지 모르게 천진난만해보이는 얼굴. 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넘겨 봤다. 머리칼이 사락사락 손가락에 감겨 왔다. 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차마 제지하지는 않았다.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고 드러난 이마를 살짝 만져 봤다. 옆에서 보면 딱 예쁠 정도로 튀어나와 있고 반질반질. 이런 것도 신경 쓴 아버지가 징그러울 정도로. 어린애 열을 재듯이 손바닥으로 그 이마를 한번 다 가리고 덮어 봤다. 니노, 나, 감기 같은 건 안 걸리는데... 쇼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은 눈. 한참이나 마주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뒀나 싶을 정도로 인간다웠다. 눈을 깜빡이고 인공 근육을 써서 표정을 만드는 데에 하나의 이질감도 없었다. 코끝을 톡 건드리자 쇼가 놀란 듯 눈을 슬쩍 감았다.

“쫄았어?”

“아니.. 갑자기 왜 그런가 해서...”

“안 죽이니까 걱정 마.”

“요즘은 안드로이드법에 이것저것 붙어서 말이야...”

“시끄러. 그런 거 물어본 거 아냐.”

“응. 미안.”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하고. 그런데 아버지의 절대 유언 같은 그 프로토콜 하나 때문에 나를 때리기까지도 하고. 코끝에서 손가락을 떨어트려 입술에 올려 두었다. 감촉은 부드러웠다. 손바닥을 벌려서 턱을 잡고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눌러 입을 벌리게 했다. 왜애, 그런 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지만 난 또 그 말을 무시했다. 입으로 손을 넣어 보자 축축했다. 침샘이 활성화되어 있는 느낌. 냄새도 하나 나지 않고... 혀 밑을 만졌다가 볼 안쪽에 손을 댔다가 입천장을 쓸어내리면서 밖으로 손을 빼냈다. 입천장까지도 사람처럼 주름져 있었다.

손에 묻은 액체를 쇼의 얼굴이나 목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았다. 기분이 나쁜 듯 눈썹을 찌푸렸지만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이것까진 아까처럼 때릴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 건지... 손을 계속 밑으로 내려 갔다. 가벼운 티셔츠 밑으로 내가 방금 열어 봤던 배. 이 밑에는 장기가 아니고 내가 손수 정리해 둔 전선들이 기판들이 하염없이 존재한다. 그걸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 봐서인지 더욱. 내 눈 앞에 있고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생명체가 더 인간이 아님을 상기하게 했다.

인간도 아닌 가짜 아들에게, 나한테 줘야 할 몫의 그 사랑을 다 줘 버린 거라면, 나도 검증해 보고 싶다. 나도 니노미야 박사의 아들이니까. 니노미야의 피가 반응하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아버지가 준 사랑을 다 뺏을 수 없다면 내가 그걸 다 망쳐 버리고 싶다. 아니면, 망치지도 못하고, 니노미야 박사의 아들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나도 이 로봇에게 또 그런 사랑을 줘 버릴지도 모르고...

바지 고무까지 손이 내려가자 그제서야 쇼는 내 손을 잡고서는 막아냈다.

“뭐 하는 거야?”

“확인하는 거야.”

“무슨 확인? 이제 와서?”

“응. 하고 싶어졌어. 왜? 안 돼? 너 내 소유의 안드로이드잖아.”

“이런 건...”

“왜?”

“이런 건 불공평해...”

소유라는 말을 듣자 쇼의 손에서 힘이 점점 풀렸다. 그러면서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가 아무것도 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공평하다는 걸까? 난 그 면전에 대고, 네가 이 세상에 만들어진 게 나에겐 불공평한 일이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졌다가, 하지 않고 싶어졌다.

내가 밀친 대로 상체를 뒤로 한 채 팔로 그 상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내가 뭐...

하려는 짓은 강간이나 다름없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지를 확 벗겨버렸다. 쇼는 퍼뜩 놀라며 바지춤을 잡으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기 때문에 그는 텅 빈 손을 한 번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생각해 보면 성기라는 건 배설과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안드로이드에게 그런 건 전혀 필요없는 부품이니까. 아버지는 그걸 달아놓지 않은 거다.

“너 그럼 물 이런 거 마신 건 다 어디로 가는 건데?”

“일단 나 적당량은 몸 안에 있는 수조에서 자체적으로 정화해서 쓰고... 정 안 되면 그냥 뱉어내지.”

“그냥 입으로?”

“응. 그냥 토해내. 토한다고 할까. 나한테선 그냥 나오는 걸 처리하는 것뿐이지만... 그거 보려고 내 바지 벗긴 거야?”

내가 멍하니 그 민둥한 아랫도리를 바라보는 동안, 쇼는 나의 손에서 바지를 뺏어서 다시 챙겨 입고 있었다. 난 왜 당연하게...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아버지가 아들뻘인 안드로이드를 만들어서 그런 용도로는 쓰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는 생각. 그건 아무래도 범죄에 가까운 행위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다행이지 않은 건...... 나였다.

난 쇼의 그 아무것도 없는 아랫도리를 보고 발기해버리고 말았다. 무릎을 꿇은 채여서 그건 바지를 입느라고 일어난 쇼의 눈에도 한번에 들어오고 말았고, 내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치자 쇼는 나를 엄청나게 징그러운, 인간 이하의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을 한 번 했다가, 다시 점잖아졌다. 왜?

“섰어?”

“...어. 응. 그게.”

“너 신기하다. 나한테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세운 거야?”

“그게, 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요...?”

일어설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쇼가 자리에 다시 돌아와 앉았다. 아까처럼 머리라도 얻어맞는 게 아닐까 하다가, 다시 나를 모른 척하고 할 일을 하기 시작한 쇼에게 일종의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럼 이거 니가 해결해 줘.”

라는 막무가내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책 사이에 연필을 꽂아 덮어 두면서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내 집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거실에선 등에 벽이 닿고야 만다. 막다른 길에 앉아 버린 쇼는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난 좀 더 힘을 줘서 그 손을 더 꽉 잡았다. 이만큼 세게 쥔다고 해서 부러질 것 같지도 않고.

그의 손을 붙든 채로, 바지를 내린 뒤 나의 성기에 그의 손을 겹쳐 댔다. 으으응. 쇼는 당장이라도 이 행위를 그만두고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이 움직였지만 난 그의 무릎을 모아 내 허벅지 안에 가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정말이지 못되게 굴 생각을 처음부터 한 건 아니었다. 문득 내 걸 뺏어간 가짜 아들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난 일곱 살때처럼 돌아간 것만 같았다. 쇼의 손바닥은 무척 부드러웠다. 난 그걸 겹쳐 잡고 자위를 시작했다. 쇼의 머리 위 벽에 손 한 쪽을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쇼의 손을 겹쳐 쥐고. 저, 이거 아버지가 보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이럴 거면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고 싸고 돌고 집까지 나가 버린 이 안드로이드, 아들이 이렇게 다룰 걸 알았으면 그냥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폐기처분해버릴걸, 하고 생각하려나? 그러니까 쇼의 손바닥은 부드럽고 적당히 따뜻했으며 적당히 말랑말랑했다. 살면서 이런 손바닥은 만져 본 적 없었다. 손에 힘을 최대한 빼려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그 손을 감싸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내 성기를 직접 만진 채 쥐고 흔드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혹스럽고 낭패에 갇힌 얼굴. 그러면서도 차마 나를 올려다보거나 나에게 주먹질하거나 해서 반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이 생명체. 눈을 내리 깔고 이쪽을 전혀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쇼의 정수리를 쳐다보면서 자위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이 모순적인 존재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말았다.

나의 것을 뺏어갔으면서도 뺏어간 줄도 모르고. 주인이 변경되었다는 그 가냘픈 구속 한 줄로 나의 말에 이렇게나 반항하지도 못하고. 그렇지만 방금 전.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골목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하게 바라보던 눈빛. 내가 졸 만큼 졸린 영화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그렇게나 감상적으로 받아들인 것. 담배 냄새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면서 정화 같은 말을 꺼내서 굳이 안드로이드라는 걸 상기시켜버리는 약간 못된 성격. 그렇지만 나에게 웃어줬던 그 얼굴.

어쩐지 그런 걸 봐 버린 이상, 난 전혀 이 로봇을 싫어할 수 없겠다고 느껴 버렸다. 손을 빼고 싶었는지 갑자기 힘을 주는 탓에 난 미처 빼지 못하고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쇼의 얼굴과 가슴팍에 정액이 튀고 말아서 난 티슈를 가져와 닦아주기 시작했다. 물론 바지는 추켜올리고. 얼굴과 가슴팍을 다 닦아내고서 티슈를 버리고 온 쇼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성격 진짜 안 좋구나. 박사님이랑 똑같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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