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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반만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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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등을 하나 켜 놓고. 무릎을 세운 채로 그 사이에 턱을 괴고 가만히 책상을 바라보고 있다. 솔직히 수면에는 방해... 지만.

뭐 해? 안 자고..
아아... 응...

그러자 꾸물꾸물 내 옆자리로 기어들어오지만 잠들 기색이 없다. 나보다 손가락 한마디 크면서도 내 품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면 안 돼? 몸을 옆으로 비틀어 자리를 더 많이 내주었다. 움찔하며 죽은 듯 굳어 있다. 나는 한숨 같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올라와.

아까 전과 같이 꿈틀꿈틀. 나와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와 누웠다. 이 조그만 머리통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난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해주려고 했는데. 수마를 견디지 못했다. 그가 내 팔을 베고 자게 되었는지, 옆으로 펼쳐진 나의 팔을 접어두고 반대로 나를 끌어안고 자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녀올게.

응...

그를 깨우지 않고 출근 준비를 했다. 언제나와 그렇듯.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둑어둑한데도 난 이미 어둠에 적응한 듯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 둔 오니기리를 입 안에 쑤셔넣으면서, 잘 때마저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서, 엄지손가락을 뻗어 그 미간을 살살 쓸어 반듯하게 펴주었다.

낮에도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면서 내가 집을 떠날 때 항상 잠에 취해 있다. 그게 한편으로는 참 미우면서도. 도무지 어떤 식으로도 힐난할 수가 없어서 침울해진다. 귓가에 대고 아주 조용히, 行ってくる、속삭였다. 깊게 잠들지도 못한 듯 기껏 내가 펴 준 미간을 다시 찌푸리면서 잠꼬대인지 대답인지 모를 단말마를 뱉어낸다.

밥, 잘 먹고.

으응...

일어나면, 창문 열고.

응. 알아.

잠이 깼어?

아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응...

잘 안 되면 안 해도 되니까.

싫어, 그건.

그래. 알겠어, 이 고집아.

잘 다녀와... 다치지 마.

그래. 나 안 다쳐.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탓에 내 발치만큼 내려와 있다. 나는 그걸 다시 조심스레 펴서 그에게 덮어준 채로 집 밖을 나왔다. 철제 계단이 깡깡대며 운다.

금세 점심시간이 됐다. 왜인지는 몰라도 식판을 들 힘도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 자리에 앉았는데 반장 아저씨 대각선의 자리였다. 비어 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체할까 봐 일부러 그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반장 아저씨는 내가 밥 먹는 걸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 식판 위로 가라아게를 하나 툭 던져주고는, 식판을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쓱 숙여 인사했다.

부실하게 먹으면 너 갑자기 병가 낼 수도 있잖아? 그런 의미였을 테지만. 난 동정에는 신물이 난다. 그러므로 이런 것쯤 동정 따위가 아닌 걸 잘 안다. 마지막으로 한입에 그 넘겨받은 가라아게를 쑤셔넣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사장에서 흡연구역을 정해놓는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곳에서 나도 부싯돌을 긁었다. 마루야마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온다. 마루야마는 몇 주 전 실수로 왼손이 박살났다. 산재 처리 해 준대? 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다면서 머리를 긁었다. 왼손이 붕대로 뚤뚤 감겨 있어서 형체도 알아볼 수가....

산재 해 준대.

아, 그래.

나 그런 거 잘 몰랐는데. 니노가 얘기해 줘서 집에 가서 얘기했더니 유우쨩이 어떻게 저렇게.

유우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응. 바쁘니까.

바쁘니까?

나 돈이라도 못 벌면 완전 가정주부로 전환했어야 했거든.

나쁘지 않잖아.

재미없잖아..

너 지금 주부 무시했어.

그런 게 아니고.

됐어. 무슨 말인지 알아. 너 손이 그런데 일은 어떻게 해?

이제 슬슬 적응됐어. 살릴 수가 없대서...

담배를 든 채로 머리를 긁적이던 마루야마가 그 머리털을 다 태울 뻔했다. 나는 소리지르며 덩달아 내 담배도 말통에 던져 껐다. 슬슬 복귀할 시간이라 돌아가려고 하자, 다시 한 번 잡히고 말았다. 왜? 난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물었다. 마루야마도 그것에 맞춰서, 소리 없이 잔을 넘기는 제스처를 했다. 잡힌 팔을 떼어내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집에 가야 해.



땀에 쩔은 채로 전철에 올라탔다. 샤워실이 너무 붐벼서 도무지 그걸 다 기다릴 만큼 느긋하지가 못했다. 함께 타 있는 사람들에겐 참 미안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육체노동이 다 이런데.

냉장고 상태를 생각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집에 먹을 거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답장이 왔다.

[응. 마트 갔다 왔어.]

별로 외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 날이 좋긴 했지.

[지금 퇴근?]

[응]

[가고 있어]

가고 있다는 말 끝에는 어딘지 조잡해 보이는 스탬프가 하나 날아왔다. 얼른 오라는 건지 조심해서 오라는 건지. 난 전화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금보다 날이 더 더워지면 어지간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느리적느리적 집으로 향했다. 역에서 걸어서 15분. 자전거라도 있다면 5분도 안 될 거지만. 자전거까지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의 쓰지 못하고 처박혀 있을 텐데 아깝지 않느냐며 그가 나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난 있으면 언젠간 쓸 테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축축 처지는 다리를 끌고 계단을 오른다. 텅텅텅. 일전에 물은 적이 있는데. 집에만 있으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다 다르다 했다. 그럼 난 어떤데? 느려... 엄청. 그래서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어. 그렇게 말했다.

나 왔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구멍에 맞추고, 문고리를 돌리고, 현관으로 들어가 다시 뒤돌아 열쇠를 잠갔다. 신발장 위에 열쇠더미를 던져놓자마자, 안쪽에서 번개같이 그가 뛰쳐나왔다.

있지!

으응. 근데 나 안 씻었는데.

나 어떡해? 카즈. 나, 아무것도, 오늘 아무것도 못 썼어. 한 자도. 나 여기가 텅 비었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 나 어떡해야 해. 응?

냄새 안 나?

응. 그런 거. 다 괜찮아. 카즈는 다 괜찮아. 미안해. 나 아무것도 못 해서. 나 어떡하지. 이대로 아무것도 못 쓰면 어떡하지? 여기 더 이상 아무것도 안 차면 어떡해. 이렇게 텅 빈 채로 살아야 하면!

그는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면서 나에게 매달렸다. 난 땀으로 푹 젖었다가 전철의 미지근한 에어컨에 식었다가 15분을 걷는 동안 다시 땀에 젖었는데, 그는 그런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나의 굳은살 배긴 손을 가져다가 자기 가슴팍에 가져다대고 막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곳이 다 텅 비었다고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나와?

응... 미안해. 나 때문에 이렇게.

괜찮아. 잘못한 거 없어. 나 씻고 올 동안 기다릴 수 있어?

싫어. 가지 마.

나 어디 안 가는데.

싫어...

나에게 의존적으로 변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난 짐을 현관 근처에 떨어트려 놓고, 내 어깨에 매달린 그를 밀어 뒷걸음질치게 해서, 방으로 향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그러니 이 방에 나는 없고 그밖에 없는 동안. 한참을 물어뜯어서 부르튼 입술을 내가 덮어주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부드럽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딱이는 소리가 귓가에 몰아친다.

고개를 돌리자 시킨 대로 창문을 잘 열어 두었다. 소리가 새기 십상이야. 난 그를 잠깐 혼자 둔 채로 일어나서 창문을 닫았다.

싫어. 싫어.

뭐가 그렇게 싫어. 나도 싫어?

아냐... 그런 건. 나...

응.

티셔츠를 벗겨주었다. 나의 말에는 착실하게 대답을 해준다. 솔직히, 씻고 싶은데. 일전에 한번 이런 채로, 도무지 찝찝함을 못 참겠어서, 그를 내버려두고 씻으러 들어갔다 송장 치울 뻔한 적이 있다. 나에게 한번도 위압적이지를 못하면서. 그 어떤 불안도 방향은 모두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걸 알게 되어서. 난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손바닥이며 관절과는 다르게 그의 몸은 부드러웠다. 내가 다 먹여서 살을 붙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니 얼굴이 반쪽이 되었던 게 엊그제 같다. 턱에 입맞추고 귀를 빨았다.

나...

으응.

미안해서...

뭐가?

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치만...

자꾸 얘기하면 나 씻으러 갈래.

아, 아. 싫, 싫어. 그건. 미안. 이제 얘기 안 할게. 응? 미안...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너 나한테 미안해?

미안은 하지.

듣기 싫으니까 미안해도 미안하다고 하지 마.

응... 화났어?

화 안 났어.

목덜미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그의 속이 썩어가는 것과 반대급부로 겉에서는 좋은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차라리 바뀐다면 어떨까? 그도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의 옷을 벗겨준다.

그래. 전말은 이렇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갈 길을 찾지 못해 벌어 둔 돈으로 도피적 독립을 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집이었으므로 부모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나와는 다르게 아주 잘 사는 집의 자제분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냐면. 그의 부모는 그를 멀끔한 허우대에 맞춰 멀끔한 직장을 갖게 하고 멀끔한 사람을 붙여 멀끔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단 하나도 원하지 않았다. 글을 쓰겠다 했다. 난 그를 봐 와서 잘 알았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임을.

그런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줄은 몰랐다. 그땐 내가 야간 편의점을 하던 때였는데. 내가 퇴근해서 해가 막 뜰 무렵 집으로 돌아오자 보스턴백 하나와 백팩 하나를 터질 만큼 꽉 채워 온 그가 나의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아... 니노. 나 절연당했어.

대뜸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까지 연약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기에 그 절연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때는 금세 이 집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심산이었다고도 생각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낙방에 낙방. 뜯기지도 않은 채로 반송되는 때도 있었다. 집에 원고지가 트럭처럼 쌓여가기 시작하고 어떤 신문사에서도 어떤 출판사에서도 어떤 연락 하나도 도무지 아무리 찾아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자 그는 좀먹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배에 혀를 가져다대자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내 어깨며 머리통에 손을 가져다대고 한참을 쓰다듬더니, 나의 손이 속옷까지 내려가자 나를 막아선다.

카즈 거 빨고 싶어...

응?

내가 해 주고 싶어.

그래? 나 진짜로 못 씻고 왔어. 샤워실 줄이 너무 길어서. 괜찮아?

위치를 바꿔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었다. 정말 괜찮나. 더이상 말하면 그도 화를 낼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성기를 입에 머금고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끝으로 그의 귀를 만진다.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어디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이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안쓰러운데. 차마 말할 수도 없다.

침소리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움직이고 있다. 난 따뜻한 볼 점막과 혀끝에 공략당해 더는 뭘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화난 적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걸로 화가 풀릴 사람이 아닌데, 그도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마치 속죄하듯이 나에게 순종적으로 굴었다. 그게 나의 속을 몇번이고 뒤집어놓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 좋, 조아?
응… 엄청.
막 칭찬을 원하는 어린애처럼 나를 겨우 올려다보았다. 이럴 때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난 애초에 이렇게 사는 걸 원해서 서로 다른 집에 살기 위했지만, 그는 이러면 안 되었다. 세상은 그를 이런 취급 해서는 안 된다. 자꾸만 버림받아서 스스로도 자신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 나라도 그를 끌어올려내줘야 한다. 세상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도록.
내가 집에서 나가기 전과 똑같은 자세로 돌아왔다. 로션이 차가워서 또 한 번 파르르 떨었다. 구멍을 풀어주고 있는데 내 팔을 잡아뜯듯이 당기면서 재촉했다.
안 돼.
으응...
내가 싫어.
그냥, 그냥 해도, 되, 되는데...
그렇게 하지 마. 내가 하고 싶어서 해 주는 거야.
으흑...
그리고 말야. 손가락만으로도 이렇게 좁은데 내가 어떻게 들어가.
진지해지면 안 돼. 진지해지면. 일부러 저급하고 추잡스러운 말을 써서라도...
난 손을 뻗어서 콘돔 박스를 건네주었다. 이거 뜯고 있어. 그럼 되지? 그는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했다. 축축하고 뜨끈하고 뻑뻑했다. 손에 꼽을 수도 없게 관계했는데도 그는 항상 똑같다.
쿨쩍쿨쩍하고 로션이 체온에 녹아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릴 무렵 구멍을 풀어주는 걸 그만두었다. 손을 티슈에 닦고, 그의 허벅지를 벌린 뒤 잡아당겨 바짝 가져다댔다.
고, 고무...
응. 끼워 줘.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서 내 성기에 대고 콘돔을 펴 씌우기 시작했다. 그의 손바닥이 뜨끈뜨끈하고 땀으로 한참이나 축축했다.
긴장했어?
조금...
왜? 처녀도 아니고.
모르겠어...
왜 바보가 되어 있는 거야. 자기 마음을 자기가 가장 모르면 어떻게 해. 당장이라도 윽박질러서 글쓰는 걸 그만두게라도 하고 싶어진다. 침을 꽉 삼켰다. 글쓰는 게 널 이렇게까지 잡아먹으면 제발 그만해, 하고.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모두가 그를 부정하면 나만이라도 그를 긍정해주어야 한다. 나에게 응당 주어진 역할이다.
콘돔의 윤활액이 진득하게 성기에 닿는 기분도 슬슬 잊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성기를 그의 성기와 맞닿게 하고 비비적대자 앓는 소리를 냈다.

넣지 않고 한참을 아랫배에 비비고 있자 그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그의 자존심을 썩게 만든 것을 내가 들어내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건 그 자신이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밖에 없다.

구멍에 성기 끝만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자 그가 나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화를 내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요즘들어 화내는 법도 잊어버린 사람 같다.

제발...

제발?

얼른.

응?

카즈랑 하나 되고 싶어... 장난 그만 하고 빨리.

엄청 야한 말을 하네.

별로.

응. 미안.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며. 그럼 너도 미안하다고 하지 마. 나도 그 말 듣기 싫어. 그러면 진짜 내가 못된 사람 된 것 같잖아.

그래애.

그의 구멍에 성기를 끝까지 삽입했다. 숨을 막 들이키느냐고 흉곽이 부풀었다. 나는 그걸 살며시 내리누르면서, 입을 맞추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혀를 마음껏 유린했다. 그의 좁고 따뜻한 구멍도 나를 기다렸다는 듯 졸라오기 시작했다.

보채지 마... 나도 참고 있는데.

왜 참아... 차, 참지 마. 응? 으응, 으...

그야 나 일하고 와서 힘들고. 너 달래는 것도 힘들고.

힘들어...?

응. 엄청나게. 그래도 괜찮아. 그래서 좋아. 집으로 갈 이유가 있잖아. 너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을 거잖아.

나를 기다리는 건 그밖에 없다. 나를 반겨 주는 것도 그뿐이다. 갈 곳을 참 잃어버린 것 같아도. 한 글자도 써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쿠라이 쇼가 있다면, 난 지구상 어디에 떨어져도, 얼마나 느린 걸음이라 하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올 작정이다.


자기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 그건 내가 손 쓸 도리 없이 야금야금 그를 잡아삼키고 있다. 내가 어쩔 수가 없다. 그건 그가 알아서 떨쳐내야 한다. 날밤을 꼬박 새워 그의 곁에 서 있든 앉아 있든, 그가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 한 장을 다 쓰기에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의 턱을 빨고 목덜미를 핥고 쇄골을 깨물어도.

고개를 돌려 책상을 쳐다보았다. 책상은 내가 나가기 전과 같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종이들. 원고지의 형태를 한. 그 위에 굴러다니는 연필. 샤프. 볼펜. 그의 부친이 그에게 스물 생일에 선물해 준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 그 옆에 점점 화면이 어두워지고 있는 노트북. 커서가 한곳에 멈춘 채로 무한대로 깜빡이고 있다. 화면이 꺼지면 커서도 숨을 멈출까.

그의 고개 옆에 내려앉은 내 손. 내 손을 가져가서 깍지를 꼈다. 왜 그래? 난 입을 뻐끔대며 물었다. 흔들리는 내 몸. 다시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 땀이 턱을 따라 그의 몸 위에 하나하나 떨어진다. 대답을 듣기 전에 혀를 빼서 나의 땀을 핥았다. 핥아서 내가 없애버린 건지 그의 몸에 스며들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대답이 없고, 축축해진 손바닥은 나와 0.1미리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그곳에 힘을 더해가기 시작한다. 고집스럽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게 삼켜진 건 아니라는 걸 이런 것으로 때때로 알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난 하염없이 기뻐진다. 가슴이 빠듯하게 벅찬다. 남들이 보기엔 별 꼴값일 수도 있겠으나.

있지... 으, 핫, 아아, 앙, 읏, 윽!

응... 으으, 하, 하고 싶은 말 있어?

으응.. 욱.. 윽.. 어, 없어...

그럼 왜, 불렀어,

깍지 꼈던 손을 빼서 내 어깨 위로 팔을 걸쳤다. 그가 팔에 힘을 줘서 내 상체를 그의 상체와 맞닿게 해 버렸다. 발딱 서서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질질 흘리고 있는 그의 성기가 서로의 뱃가죽 사이에 끼었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상스러운 감촉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야 말았다.

카즈나리......

응. 나 여기 있어.

그냥, 부르고 싶어서....

응, 부르고 싶은 만큼 불러.

너 없을 때, 니, 이름 부르면 엄청 허전해, 너어, 하앗, 그거 알아?

알아. 나도 너 잘 때 니 이름 많이 불러.

왜애...

응? 부르고 싶어서.

왜 잘 때 불러... 내가 못 듣잖아...

가까워진 탓에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가 내 어깨 근처에 이마를 갖다대고 비비적댄다.


절정. 그게 다가올 땐 서로 어떤 정보값 있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웅얼거림. 습기 가득한 신음소리. 내가 사정할 것처럼 속도를 올리자 고개를 퍼뜩 들어서, 내 아랫배를 밀어내듯 붙잡았다. 눈썹을 팔자로 해서, 응? 하고 묻자, 같이 가고 싶어, 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왼손을 들어 그의 성기를 쥐었다. 박인 지 오래된 굳은살 위로 돋은 새살들이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난 별로 그런 것까지는 말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속도에 맞춰 그를 사정시켰다.

땀냄새, 정말 안 났어?

났어.

그러게 씻고 온다니까.

괜찮아. 기분 안 나빠. 같이 씻자.

너, 이게 목적이었지? 난 축축 처지기 시작한 몸을, 서둘러 일으켜 함께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와서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마트 갔는데 카즈가 좋아할 거 같아서. 가라아게였다. 낮에 한 개 더 얻어먹은. 난 내가 먹은 만큼 그에게 하나 양보해 주었다. 그는 모른다. 내 식판에 어떤 게 올라와 있었는지.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는 그릇들을 싱크대에 가져다 주고,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책상 앞으로 뛰어들어갔다. 거의 기는 자세로 책상에 엎어져 연필을 쥐었다. 그래. 그렇게 해. 계속 해야 돼, 너.

베란다 같지도 않은 곳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여기서 이 고철이 뚝 떨어져버리면, 너 어떡할래? 그런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이 어떻게 될지보다는 그게 더 궁금했다. 그는 잘할 수 있을 거다. 원래도 그러니까. 내가 있어서 저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은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의 머리 위에 달린 창문. 아까 내가 닫은 그대로였다. 나는 창문을 전부 열어젖혔다. 집 안의 공기가 바깥의 아직은 시원한 바람과 교체되어간다. 그는 지금 한참 집중하고 있는 탓에 나는 안중에도 없다. 차라리 이렇게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좋겠어. 속으로 그렇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난 이렇게 나를 기다리는 그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를 붙잡는 걸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파렴치한이다. 정신적으로 삭아버린 사람의 의존증을 전부 받아주는 게, 실은 자기만족이라니.


창문 밑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되새김질했다. 그는 밝고 웃음이 많았다. 그래도 펜을 쥐면 지금이랑 한톨도 다를 것 없는 표정을 대뜸 해 버리고, 한참이나 나를 이곳에 내버려두고, 저 공간에 처박히고는 했다. 나도 글이라면 글을 썼지만. 별로 나의 길이 아니라는 건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다. 해야 되는 만큼만 했고 되지 않는 것은 빠르게 처리해버렸다. 오히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그럴 수 있는 사실 자체를 신기해했다.

아니, 난 이렇게도 글이라는 거에 매달리는 니가 더 신기해.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젠 언제 그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장을 뽑아내 생명줄로 글을 쓰는 것처럼 펜 하나에 이렇게도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퍼내고 퍼내고 퍼내서 남은 게 없다고 했다. 그럴 리 없어. 그게 다시 안 차오를 리가 없어. 나는 술에 취했는데도 또렷한 눈을 하고 내 눈앞의 그에게 말했었다. 말하자면 뒷배도 없고 근거도 없는 허풍을 해 버린 셈이다. 어쩌면 헛된 기대를 불어넣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말을 해야만 했다.

그가 교내 신문에 제출한 뒤 당선되었던 시나리오. 내지 못하고 처박아뒀던 소설. 그런 걸 난 죄다 봤으니까. 쓰다 만 것도, 폐기해 버린 것도, 그가 별볼일 없는 것처럼 생각한 모든 걸, 난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듯이 전부 읽었고 전부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연약한 사쿠라이 쇼는 좋아하지 않아. 나에게 의존하는 것도 끝이 찾아올 거야. 난 그렇게 믿는다. 언젠간 빛이 찾아올 거야. 세간이 몰라주는 너를 언젠간 이 수렁에서 끌어내 주는 기회는, 분명히 찾아올 거야.

창문을 반만 닫고. 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같은 샴푸 냄새가 난다. 그는 모를 만큼, 소리 없이 대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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