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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을 거면 그렇게 좀 하지 말라니까.”
“니가 먹을래?”
“됐어.”
화장실에서 나오는 도중 내가 포크로 먹다 남은 디저트를 뭉개고 있는 걸 본 쇼가 눈썹을 찌푸리며 나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난 포크를 돌려주는 척하며 물었지만 쇼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먹지 않을 디저트는 뭐하러 시킨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내 앞에 마주보며 앉는 게 아니고 내 옆자리에 다시 돌아와 앉았다. 그의 앞에는 얼음이 느리게 녹아가고 있는 라떼 한 잔. 비웃고 싶다.
사람도 아닌 게.
사람도 아니면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스 커피를 시켜 주고 자기 몫으로 라떼까지 시킨 뒤, 자신은 먹을 수 없는 디저트를 하나 꼭 고르고 만다. 그 점은 고쳐지지 않을까. 난 매번 일부러 못되게 그가 시킨 디저트를 보란 듯이 짓이긴다. 마치 자기가 뭉개지는 것처럼 그 꼴을 보면서 눈썹을 찌푸리지만. 포크를 가져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그가 디저트조차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양팔을 내리고 고개를 숙여 빨대를 입에 머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만다. 나는 쇼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에 이미 커피를 다 마셔 버렸다. 얼음만이 절그럭대며 컵에 잔뜩 쌓여 있다. 때때로 녹아가며 빙하가 무너지는 듯한 액션도 취해 주는 그런 얼음.
그러고 보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웃기다. 어떤 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용변을 볼 리 없으니까.
내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방금 전 잠깐 짜증을 냈던 건 금세 휘발된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이며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아니. 별로.”
정말로 별거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었을 뿐이다.
거슬러가자면 처음은. 내가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암막 커튼을 시원하게 쳐 놓고 한참이나 잠에 취해 있던 여느 때와 같은 어느 날 중 하루. 우리 집은 택배함이 있는데도 누군가가 끈덕지게 벨을 눌러 대고 인터폰을 호출했다. 베개로 귀를 막고 집에 없는 척하고 싶었지만 이젠 인터폰을 넘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치하기를 십여 분. 난 전략적으로 백기를 들었다.
문 밖에 누가 서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나는 그걸 벌컥 열어젖혔다.
“드디어 문을 열어 주시는군요.”
“에?”
“니노미야 카즈나리 씨 되시죠? 확인하셨으면 싸인이나 도장 부탁드립니다.”
집배원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손목으로 이마를 닦았다. 복도가 그렇게 더웠나? 집배원이 건네준 볼펜으로 이름 넉 자 휘갈기면서 속으로는 최근에 택배를 시킨 적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주변엔 택배 박스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볼펜을 되돌려 주었다.
“근데 뭐가 배달...”
“안녕.”
나의 질문엔 대답도 하지 않고 집배원은 쏜살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나는 문을 홱 잡아당기고 그 너머로 사라지는 파란 유니폼을 쳐다보았다. 하...? 이거 내 싸인을 가져다가 어디 사기에 써먹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디 신고를 할까 싶었는데. 다시 한 번 들은 적 없는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안녕. 여기 계속 세워 둘 거야?”
“에...?”
“싸인했잖아. 들여보내 주지 않을 거야?”
난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서 내 앞의 무언가를 올려다보았다. 내 얼굴에 잔뜩 그림자를 지게 만든. 머리는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피부가 반들반들하고, 단정하게 차려 입은. 사람이었다.
그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사람...? 나... 인신매매에 휘말린 건가?”
“아니야. 난 안드로이드야. 소유권이 너한테 상속되었기 때문에 배달된 것뿐.”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었다.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방금 전 얼굴이 잔뜩 땀범벅이었던 집배원과는 달리, 이 사람은, 정정하자면 이 안드로이드는, 얼굴에 땀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난 안드로이드를 산 적도 받은 적도 없는데.
“설명이 필요하다면 설명해 줄게. 궁금해 보여서. 여기 세워 두고 얘기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단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 미안. 아니, 죄송해요. 들어오세요.”
“존댓말 안 해도 돼. 설정된 나이는 너보다 조금 많긴 한데... 만들어진 거로만 치자면 네가 더 먼저 태어났으니까.”
그 안드로이드는 내가 문을 열고 있는 사이를 벌리고 들어와서,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말을 건넨 뒤, 신발을 벗고, 뒤돌아서 신발을 바르게 정리해 두었다. 안드로이드라는 게 이렇게까지 예의라는 걸 갖추는 생명체였든가?
나는 어벙하게 문을 더 열고 서 있다가, 그 안드로이드가 뒤돌아 왜 문을 닫고 들어오지 않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 깨닫고 성급하게 문을 닫았다. 하마터면 손가락이 끼일 뻔했지만.
“마실 거라도 내올까? 요...”
“준다면 고맙게 마실게. 없는데 체면 차릴 필요는 없어. 존댓말이 편하면 존댓말해도 되지만, 아까 말했듯이 꼭 존댓말할 필요는 없어.”
거실에 반듯하게 앉은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말했다. 이질감. 나의 주변엔 나를 이렇게 대한 사람도, 이런 말투를 쓰는 사람도 없었다. 난 그 불편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떻게 잘 알았는지. 냉장고가 텅 비어서 도무지 내놓을 게 없었다. 그나마 유통기한이 며칠 남지 않은 우유뿐. 머쓱하게 스물이 훌쩍 넘은 남자가 짝이 맞지 않는 아무 컵에 우유를 따라서 들고 양손에 쥔 채 거실로 돌아갔다.
“우유?”
“아.. 못 마시면 안 마셔도 돼...”
“흐흥.”
우유가 담긴 컵을 빤히 바라본 안드로이드는 금세 받아들고 한모금 마셨다. 입가에 하얗게 우유가 묻었다. 그걸 닦아줄까 말까 고민하면서 얼굴을 너무 쳐다봤는지. 안드로이드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하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읽으면서 설명 듣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아, 그럼.”
서류가방? 눈치채지 못했는데 서류가방 같은 걸 들고 있었나 보다. 거기서 파일에 가지런히 들어가 있는 제법 두툼한 서류들을 파일채로 나에게 건넸다. 대충 훑어보려는 속셈으로 꺼내들었고. 안드로이드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쇼. 태어난 것은 10년 전. 내가 중학생일 시절. 우리 아버지가 가정을 드디어 내다 버린 지 3년이나 지나서야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사설 안드로이드 제작 회사 연구원이었다. 안드로이드라는 게 이 세상에 출범해서 너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사고 팔고 찍어내고 버리고 다시 새 것을 사들이고. 그렇게 된 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로봇청소기는 잘만 사서 쓰면서. 인공지능에게는 통장 비밀번호도 알려 주면서. 사람들은 참 거부감이 심했었다. 우리 집엔 그런 게 발을 들일 기회도 없었다. 다시금 말하자면 아버지가 가정을 내다 버리고 안드로이드를 만들러 가게 되었으니. 그 전부터 엄마는 그 로봇 고철 깡통 뭐시기 등등에게는 이미 진절머리가 났다. 따지자면 엄마는 안드로이드라는 존재에 의해 아버지에게 바람맞은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엄마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이혼해! 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누나에게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얻어맞았다. 왜 때려.. 넌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법이야. 엄마는 말 한마디도 안 했는데 누나가 대화를 끝내버렸다.
아버지가 엄마를 누나를 나를 버리고 회사에서 살면서 만들어낸 생명체. 그게 쇼다. 서류에 뭐라고 더 적혀 있었는데 난 잘 모르는 용어들뿐이라 덮어두었다. 프로토타입? 쇼라는 개체로 양산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안드로이드는 오로지 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해서 스스로 만든 생명체. 내부를 만들고 외피를 붙이고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3년도 더 걸린 아름다운 안드로이드.
태어난 이후로는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고 했다. 내 아버지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박사님이라고 부른다. 나를 니노미야라고 부르는 것을 어색해한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도 니노미야니까. 난 그럼 원하는 대로 부르라고 했는데. 그것까지는 설정되지 않아서 직접 시스템을 만져야 한다고 했다.
우습게도 나는 중학생 시절 이미 기계를 만지는 것을 배운 적 있다. 팔자라는 건지. 가족력이라는 건지. 고등학교도 공고를 나오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대학마저 기계과를 나왔으니. 아버지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자신의 아들처럼 만들고 키우고 기른 개인용 맞춤 비서형 안드로이드를, 조금 기계치인 누나나, 당연히 이 안드로이드를 만든다고 뒷전 삼아 버린 엄마에게는 보낼 수 없으니, 나에게 보내 버린 것이다. 내가 거절할 수도 없게 상속으로 넘겨 주었다.
내가 미간을 긁으면서, 상속을 포기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내 앞의 안드로이드는 다리도 저리지 않은지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잠깐 멈추었다가, 서글퍼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나는 파기되도록 서류 절차가 끝나 있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정말 곤란했다. 나의 의사는 생전 단 한 번도 묻지 않은 이기적인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단 하나의 유산. 아플 정도로 생생하게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안드로이드.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던 기억도 없어지지가 않는데... 그 표정으로 나에게 절차를 읊어 주는 쇼라는 안드로이드를 도무지 내칠 수가 없었다.
내가 받기 싫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존재했었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답 없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안드로이드는 자켓 안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린 뒤 밀어 나에게 주었다. 아버지의 자필.
친애하는 아들 카즈나리에게.
어쩌구저쩌구. 흠. 꽤나 자기연민에 찌들어 있는 유서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거 아버지 유서야?”
“유서는 따로 변호사에게 전달했어. 이건 네 앞으로 쓰인 편지야.”
암튼간 내용은 단촐했다. 안드로이드를 만드느라 가정을 저버려서 미안하다. 알면 됐네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몸이 안 좋아졌다. 천벌이에요. 너도 알다시피 네 누나나 엄마에겐 보낼 수가 없어서. 참, 자기객관화라는 건 죽도록 잘되는 남자야. 쇼의 소유권을 너에게 상속한다. 이 편지는 법적인 효과가 없지만, 나의 유서에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와... 진짜 대단하다.
편지를 다 읽고 다시 접어 봉투에 넣은 뒤 탁자에 돌려둘 동안, 안드로이드는 말이 없었다. 내가 묻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난 그래서 이 안드로이드는 붙임성이 별로 없고 말수도 적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나중 얘기고.
“더 마셔, 우유.”
“아, 그래. 고마워.”
내가 시킨대로, 아까 전 한모금밖에 마시지 않고 내려둔 우유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반쯤 비운 뒤 컵을 내려놓긴 했지만. 컵에 맺힌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떨어져 안드로이드가 입은 바지에 자국을 남겼다.
어떡해야 하는 거야...? 나는 이런 거 가질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어... 아버지! 아버지 아들은 지금... 직장도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산단 말이에요...! 하늘에 대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이제 이해가 됐을까?”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 안드로이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 안드로이드를 참 빤히도 바라보았다. 이 성격도 말투도 얼굴도 다 우리 아버지가 만들었단 건가.
“별로.”
“그럼, 이해는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속에 대해서는 파악이 다 됐을까?”
“별~로.”
“흐흠. 내가 보기에는, 이해도 했고, 파악도 했는데, 나에게 괜히 심술 부리는 것 같아.”
“귀신 같네...”
“귀신은 아니지. 나는 죽어도 귀신은 되지 않아. 영혼이랄 게 없으니까.”
말은 잘하네. 이것도 아버지가? 아, 안드로이드에 대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나오고 있었다.
“나 돈 없어.”
“괜찮아. 박사님이 나에게 주신 자금이 제법 있거든.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너한테도 일정 유류분은 다 지급됐어.”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그럼 그냥 적금으로 두는 것도 나쁘진 않아.”
속 편한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거취도 어떻게 할 줄 모르겠는데 웬 군식구가 들어앉는다는 거잖아.
머리털을 다 쥐어뜯을 것처럼 헤집자 안드로이드가 움찔했다. 방어본능?
“난 앞으로 너를 뭐라고 불러야 돼?”
“원하는대로.”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뭐라고 불렸는데. 그게 제일 편할 거 아냐.”
“그게 궁금해? 나한텐 딱히 편하다든가 하는 건 없는데도.”
“응. 궁금해.”
“박사님은 말이지. 나를 쇼라고 불렀어. 그러니 너도 그렇게 부르면 돼.”
“그럼 넌 나를 뭐라고 부를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소유자가 직접 설정해야 하는 문제라서...”
“그건 알아. 나 바보 아니거든. 본인이 정하고 싶으면 어떻게 부르고 싶냐고.”
“글쎄? 아들?”
그렇게 말하면서 안드로이드는 갑자기 쿡쿡 웃기 시작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웃긴 농담이었던 것처럼. 난 웃음이 안 났다. 아버지가 만든 또 다른 아들이 나를 아들이라고 부른다면 꼴이 너무 우스워지지 않는가. 내가 웃지 않자 안드로이드는 다시 표정을 감추었다. 그건 너무 기계 같아. 실은, 아버지가 이후로 만들어낸 그 어떤 개체에도 쇼한테만큼의 섬세함은 일부러인지 양산형의 기능적 문제인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쇼에게는, 내가 조각조각 뜯어내듯이 최대한의 기계같음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절대 안드로이드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재미없어.”
“미안. 정말 생각이 안 나서. 박사님도, 너를 가끔 얘기할 땐, 그냥 아들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어떻게 불러야 적당할지 모르겠어.”
“헤에. 안드로이드가 모르는 것도 있어?”
“있지. 많아. 업데이트해 주지 않으면, 난 엄청나게 도태되니까.”
“도태되면 뭐 얼마나 된다고. 인간도 아닌 게.”
빡!
눈앞이 순간 어질어질했다. 뭐야? 안드로이드를 올려다보자 아무래도 그가 나를 때린 듯했다. 꿀밤?
“하?”
“버릇없어.”
“너, 막 사람을 때려! 이거 로봇 3원칙에 어긋나잖아!”
“유감스럽게도. 박사님은 나의 편의를 엄청 봐 주시거든. 너는 건드리지 못하는 유언으로 아들의 훈육을 위한 체벌은 허용한다고 되어 있어.”
“이건 월권이야. 아버지가 언제 날 훈육했다고. 아버지가 언제 날 체벌했다고.”
눈물이 핑 돌았다. 주먹 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슬퍼서가 아니고 아파서다. 그러자 나를 걱정하는 듯이, 안드로이드는 눈썹을 팔자로 휘었다.
“나도 별로 너 때리고 싶지 않아. 나 폭력 안 좋아해.”
“그런 것 치고 엄청 잘 때렸잖아!”
“응. 아무래도. 사람보다는 아팠을 거라고 생각해. 그 점은 미안. 그치만 네가 먼저 버릇없게 굴었으니까. 난 프로토콜에 따른 것뿐이야.”
혹 난 거 아냐? 난 정수리를 문지르면서 방금 꿀밤을 먹은 곳을 확인했다. 엄청나게 아팠다. 다시는 이 깡통에게 맞을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떻게 부를까?”
“그냥 니노라고 불러. 그게 제일 편해.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을 거잖아.”
“응. 그럼, 여기 설정.”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을 때부터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다리를 풀러 내 앞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안드로이드는, 등이 보이게 뒤돌아서 뒷목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스스로 들어올렸다. 방금 전 나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과 같은 존재라고는 생각도 안 될 정도로 대단히 순종적인 자세였다.
서류들 틈에 간단한 설정법 같은 게 써 있는 설명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다급하게 서류들을 뒤져 설명서를 찾아냈다. 그쪽 어드메를 쓰다듬으면 살짝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시킨 대로 쓰다듬자 달칵 하고 외피가 열렸다. 기계과를 나오긴 했지만 안드로이드를 만져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한두 푼 하는 게 아니잖아... 왠지 욕지기가 치밀어 삼켜내고는 손을 집어넣었다. 지문인식을 해서 소유자 등록을 했다. 버튼을 꾹 누르고 있자, 쇼라는 안드로이드에게서, 쇼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왠지 무서워져서 빠르게 나를 니노라 부르라 설정한 뒤 손을 빼내고 외피를 아플 만큼 세게 밀어 닫았다.
“끝났어?”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나에게 등을 보인 채로. 안드로이드는 어쩐지 긴장이 풀린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난 그대로 손을 내밀어 젖힌 탓에 뻗쳐 있는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끝났다고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니노’.”
나의 손을 겹쳐 잡고서는, 자세를 다시 바르게 돌려서, 눈을 쳐다보면서, 안드로이드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은 쇼.
“집안일은 좀 할 줄 알아?”
“음.. 아니.”
“밥은?”
“전혀!”
“그럼 청소.”
“뭐어. 그럭저럭.”
“청소에 그럭저럭이 어디 있어? 하면 하는 거지. 빨래는?”
“그건, 어차피 세탁기가 해 주잖아. 혹시, 건조기 없어?”
“허. 건조기라니 세탁기라니. 우리 집엔 그런 게 없단다. 빨래는 코인세탁소를 이용하도록.”
“으응.”
“그럼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서류 정리. 스케줄 잡기. 박사님이랑은 주로 연구를 같이 했고. 내가 조수에 가까웠어.”
“우리 집에선 전혀 쓸모가 없는 능력이구만.”
쇼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였다. 그 자세가 편한 듯이. 나는 그 사이에 열댓 번은 더 자세를 바꿨는데. 아무튼. 이왕 안드로이드가 생긴 거, 귀찮은 건 다 시켜버리려고 했는데. 할 줄 아는 집안일이 하나도 없댄다. 아버지. 나한테 보낼 때 가사도우미 사양을 넣어 주지 그랬어요?
“따로 필요한 건 있어?”
“내가 챙겨와서 니노가 준비해 줄 건 없어. 대신 남는 콘센트 하나만 있으면 돼. 문어발은 안 되고!”
“아... 남는 거 거실에... 그래. 거기. 그거밖에 없는데. 괜찮아?”
“응. 충분해.”
“에? 그럼 밥 안 먹어?”
“나 참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 그런 말 많이 들어. 그래도 난 안드로이드니까. 니노가 필요한 식사는 나에겐 불필요하단 거야.”
“에에. 그렇군. 그럼 아까 우유는 왜 마셨어?”
“박사님은 연구가 막히면 티타임을 가지셨었거든. 그때 혼자 마시는 게 적적하다면서 나한테도 기능을 추가해 주셨어.”
“헤에... 희한한 아저씨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옷은?”
“챙겨온 게 있어. 필요하면 알아서 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계속 하고는 있지만, 난 독립한 이후로는 항상 혼자였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종종 집에 들이닥쳐 멋대로 자고 가는 아이바 같은 바보에 진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 연구를 도와줬다는 초성능의 가짜 사람. 아니, 진짜 안드로이드니까.
잠을 설쳤다. 새벽 세시쯤. 눈을 뜨고야 말았다. 일어난 김에 화장실이나 다녀올까 싶어서 문을 열었는데. 거실에 사람 형체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그게 나에게 주어진 안드로이드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자는 건가? 안드로이드라는 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여러 기계들 중에 정말 흥미가 없는 분야여서, 안드로이드는. 수업 때에도 집중하지 않았었다. 실습용으로 나온 안드로이드들은 하나같이 재미가 없었고. 박색이었고. 박색이라기보단, 표준적으로 생긴 얼굴들이었고. 생기도 없었고. 정말 말 그대로 인간형 로봇 같은 면모만을 보여줬었기 때문에 더욱이 질리고 말았었는데.
난 가만히 쇼에게로 다가갔다. 아까 내가 알려준 콘센트에 코드가 꽂혀 있었다. 어딘가 옷 밖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충전 전원이 있는 듯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까 커튼을 걷어 놓고 다시 치지 않은 탓에 바깥 불빛이 아른아른 들이치고 있다.
가사노동도 못하고. 난 연구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는데, 태어난 뒤로 해 온 건, 우리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만 했고. 때때로 티타임. 막막하다.
방금 뒷목을 열어 보긴 했지만, 요즘은 사이보그들도 많으니까. 그런 것쯤, 인간이어도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자 나는 이 안드로이드가 정말 로봇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아닌 걸 눈으로 보고만 싶은 거다.
분명 충전 중에는 잠을 깨우는 정도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그가 입고 있는 스웨트를 걷어 올렸다. 복근이 보기 좋게 붙어 있었는데. 난 참 허망했다. 그리고 또 고작 자기 연구를 도와줄 조수 안드로이드를 만든 거면서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예쁘게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징그러워지기까지 했다.
그 배를 조금씩 더듬어 봤다. 아까 전 뒷목을 만진 것처럼, 어딘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아무리 더듬어도 그런 부분은 만져지지 않았다. 이대로 경찰이라도 들이닥친다면 야밤에 성추행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야... 난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조급해져서 손에 힘을 좀 주고 범위를 더 넓혀서 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꼽 위에 좀 특이하게 생긴 부분.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자 아무래도 피어싱 자국이었다. 뭐야, 이건. 로봇한테 무슨 피어싱. 합선 날 일 있나.
그 수상한 부분을 꾹 누르자 뱃가죽이 덜컹 하고 들렸다. 헉.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낼 뻔했다. 혹시 실수로 전선이라도 끊어먹지 않을까 하고 그 뱃가죽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안에는 여러 기판들. 기계 내장들. 온갖 전선들이 어지럽게 들어 있었다.
그래. 확실하게, 그는 안드로이드임에 틀림없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어라. 이거 분명 정리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 뭐 해?”
“우와! 아...”
“남의 배를 함부로 열어 보면 안 되지, 니노...”
“아, 미안. 진짜.”
“변태 치한.”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난 그냥...”
“그냥?”
안드로이드가. 쇼가 눈을 떴다. 아주 가자미눈을 뜨고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변태에 치한이라며 힐난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왠지 억울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변명에 입을 삐죽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뱃가죽 뚜껑을 쥐고 있던 손이 떨어졌으니, 쇼는 그 뱃가죽을 다시 쥐고 조심스럽게 닫았다. 저렇게 닫히니 이음새도 보이지 않고 정말 사람 같아.
“그냥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
“낮에 확인했잖아. 뒷목.”
“그건... 뭔가 그냥 사람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 진짜그런취향아니고정말변태아니고그런성벽없고나정말”
“알겠어. 이번 한 번은 봐줄게.”
내가 올려놨던 스웨트까지 내리고, 몰래 뽑아낸 전원 코드도 조심스레 정리하고 있었다. 그치만 나, 참을 수 없는 의문이 하나 더.
“근데. 그거 전선들이라고 해야 되나? 너 배 안에 있는 거. 그런 거 정리해야 되지 않아? 넘 복잡하던데? 아버지가 십 년이나 애지중지했다고는 생각 안 되는 상태던데?”
그렇게 묻고야 말았다. 쪼그려 앉은 채 물어보는 나를 살짝 쳐다보더니. 왠지 부끄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맞아. 해야 해.”
“근데 왜 그래?”
“... 나, 청소라든가 정리라든가 잘 못해서.”
“헤에. 그럼 처음부터 그랬어? 처음엔 안 그랬을 거 아냐. 울 아버지가 만들었잖아, 너.”
“응. 그래서... 박사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냥 내가 대충 했더니 이렇게...”
아하. 본인 솜씨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드러나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안 되겠네, 안드로이드.”
“응?”
“자기 배도 정리 못하는 안드로이드라니. 얼마나 아껴준 거야.”
“......”
“불쌍하네. 박사님 없으면,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태어난 목적도 없고.”
“......”
“일단 지금은 마저 더 충전해. 해 뜨면, 내가 정리해 줄게.”
“응?”
마치 졸린 것처럼,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나의 비난조의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던 쇼가. 응? 하고 되물었다. 난 나도 순간적으로 뱉어버린 말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 잠시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너 배. 내가 정리해 준다고. 앞으로.”
난 니노미야 박사의 아들이고, 쇼라고 하는 이 안드로이드는 니노미야 박사가 만들어서 십 년이나 옆구리에 끼고 살다가, 아들이라는 나에게 소유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응당, 박사라는 사람이 해 주고 있던 걸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하고. 멋대로.
그러자 쇼는 다시 충전 코드를 끼우려고 옷 안으로 몸체를 더듬다가, 나를 바라보고 살짝 웃었다. 마치 기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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