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염없이 그의 연락을 기다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연락처를 모르고 나도 그의 연락처를 모르는데.... 하고.
이제 와서 또 번잡스럽게 사쿠라이를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다. 병원에 대고 연예인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발을 동동대다 다시 생각이 들었다.
아, 나, 명함을 줬었지.
그래. 나만 그를 모르는 거다. 어쨌든 다음의 권한은 그에게 있다. 내가 제안한 터무니없는 정자은행 같은 얘기, 그가 모른 척 대답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된다.
아쉬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일텐데도. 더 욕정하고 욕망하는 쪽이 바닥에 기는 불합리한 형세.
하도 연락이 없어서 이젠 단념할 즈음. 일요일 저녁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는 그게 사쿠라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일부러 더 모른 척하며. “나예요.” 사쿠라이는 묵묵히 얘기했다. 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누군지 모르는데요.” 왜 이제서야 연락했냐는 말은 하기가 싫으니까. “끊을까요?” 그래, 역시. 내가 을이고 그가 갑이다. 난 서둘러서 전화기를 고쳐 잡았다.
“아니에요. 알아요.”
“지금 올 수 있어?”
“지금? 어디로?”
“문자 할게.”
“헤..”
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전화가 뚝 끊겼다. 뭐야. 간다 만다 얘기도 듣지 않고. 사쿠라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호텔 주소가 적힌 문자를 간결하게 보내왔다. 생각보다 집에서 가까웠다. 그가 내 집을 알 리는 없지만. 괜히 긴장한 탓에 순식간에 샤워를 하고 뛰쳐나오느라 택시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머리카락 끝이 축축했다.
내 돈으로 예약한다면 절대 올 일 없는 곳. 하하. 지배인의 인사를 받으며 익숙한 척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잠깐. 카드가 없으면 층수를 찍을 수가 없는데. 다시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금세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엘리베이터 앞 직원에게 호실 얘기하면 돼.”
“엣... 아. 또 끊었네. 뭐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몰랐다. 히트사이클이니 러트니 뭐니 하는 발정기라는 걸. 그야 당연하지. 여태까지 그런 것들 겪어 본 적, 들은 적 없이 살지 않았는가. 그가 이렇게 급하고, 갑작스럽게 나를 불러낸 것에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쿠라이가 시킨 대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는 직원에게 호실을 얘기하자. 바로 1층에 멈춰서 있던 엘리베이터를 열어주고. 마스터키를 대고 층수를 눌렀다. 난 카드키도 없이 그의 방에 가고 있다.
텅 빈 엘리베이터. 거울 같이 반사되는 부분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방금 씻은 탓에 머리카락이 힘없이 흔들흔들. 좀 어려 보이나.
복도에 내려 방 앞에 섰다. 노크를 할까, 초인종을 누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쿠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문을 열고 나를 잡아끌었다.
우왓. 하마터면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새큼한 냄새에 뒤덮였다.
“왜 이렇게...”
“시간, 얼마나 있어?”
“아 뭐... 내일 출근이니까 집에만 가면...”
“나보다 많으니까. 빨리 벗어.”
왠지 급하게 그는 나의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렇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 아, 하고 뒤늦은 깨달음이 나를 찾아오고 말았다. 그렇다. 그는 발정기에 남편이 아닌 나를 찾은 것이다.
내가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도 않자, 사쿠라이는 예처럼 괜시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난 어깨를 한번 으쓱해 주고 벨트를 풀러 의자에 걸쳐 두었다. 그러고 보니 사쿠라이는 이미 샤워 가운 차림.
“남편한테는 뭐라고 했어요?” 키스하면서 입천장을 건드렸더니 등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 느끼나? “아, 아무, 약속, 있다고... 늦으, 늦는다고...” 사쿠라이는 내 팔뚝을 세게 쥐었다가, 너무 힘을 준 것 같다고 느꼈는지 금세 힘을 풀었다. 그정도쯤 아무렇지 않았는데. 남을 굉장히 신경 쓰네.
무릎으로 가랑이 사이를 갈랐는데 놀랍게, 인지, 당연하게, 인지, 속옷이 없었다. 바지를 미처 벗지 못했는데. 덕분에 무릎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버린 탓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으, 읏...”
“왜요?”
“빨, 빨리...”
되게 보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내가 바지를 벗고 속옷도 벗어 두는 동안, 그는 쉴 틈 없이 나를 더듬었다. 셔츠를 입고 왔다면 아무래도 단추를 뜯어내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쿠라이가 하도 재촉하며 티셔츠를 벗기는 탓에 코가 콱 눌리고 말았다.
“잠깐. 확인은 하고..” 내 티셔츠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도 한계란 찾아온다. 좋은 냄새... “무슨 확인?” 사쿠라이는 나를 보면서 왠지 괜히 더 짜증을 내는 듯하다. “동의한 거예요? 내 제안.” 난 그렇게 말하면서 사쿠라이의 양 팔뚝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얼른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지 몸을 있는 힘껏 비틀었다.
“확인 안 받으면 나, 못 해요.”
“뭐가, 왜!”
확실히 다르다. 그때 나의 도발에 넘어왔던 때도 아니고, 병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도 아니고, 내 제안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를 도발해 나에게서 스토커 자백을 받아갔을 때도 아니고. 당연하게도 어떤 스크린에서도 모니터에서도 본 적 없는 사쿠라이의 모습. 조급해하고 있고 떨고 있다. 그게 다...
이 페로몬 하나 때문이라니.
“나한테서 스토커 자백 녹취해 갔잖아요. 그런 거 있는 사람한테, 어떤 대답도 못 듣고 해 버리면, 강간하는 거랑 다름없어요. 알면서...”
“그런 걸, 걱정해?”
내 표정이 이전보다도 진지해 보였는지. 그는 왠지 코웃음을 짓는 듯했다. 그럼 걱정하지. 이 사회에서 가진 게 더 많은 사람이 어느 쪽인데. 내가 그의 팔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자 그는 눈가를 찌푸렸다. 숨을 깊게 내쉬었는데 또 그 달큰한 냄새가 한바탕 퍼지기 시작한다.
“걱정해요. 나 준법시민이잖아.”
“합의하에 한 거잖아.”
“마음 바뀌면 어떡해요, 그쪽이. 그리고 내가 제안한 건 그냥 섹스하자고 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럼 너도 녹취해. 그럼 됐지?”
그 말을 듣자마자 어딘가 떨어져 있던 전화기를 찾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사쿠라이의 팔을 쥔 손은 풀어주고. 녹음 버튼을 눌러 켜고 그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눈 깜짝 하지 않은 채 그에게 말을 하라 강요했다.
“하....”
“왜 한숨이에요.”
“알겠어.. 나 사쿠라이 쇼. 오늘 하는 섹스는 전부 합의 하에 이루어진 행위입니다. 이상. 됐지. 빨리 치워...”
사쿠라이가 거의 랩을 하듯이 말을 쏟아붓고는 멋대로 녹음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정지시키고는, 저장까지 끝마친 뒤 내 손에서 전화기를 치워 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젠 나에겐 어떤 선택지도 없다.
먼저 손이 나의 성기를 쥐고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목석처럼 서 있어도 그는 아무 신경이 안 쓰이나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목석까진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충분히 흥분하고 있다. 그놈의 페로몬. 페로몬. 페로몬. 짐승새끼들 마냥.
나의 의지는 제발로 이곳에 걸어왔다는 것에서 이미 증명되었다는 것처럼. 그는 게걸스럽게 내 성기를 쥐고 빨았다. 나는 사쿠라이의 얼굴을 어떻게든 쓰다듬으면서. 귀를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웠다. 그리고 어쩌면 사쿠라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부러 만지는 손길에 힘을 실어 보았더니 맞는 듯했다.
혀에 힘을 푸르고 기둥을 훑어 올리자 듣기 힘들 만큼 추접스러운 침소리가 흘렀다. 혓바닥이 말랑말랑하게 성기를 훑어올리다가. 혀끝에 힘을 주고는 귀두 언저리를 마음껏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참았던 숨을 한번 뱉어냈다. 사쿠라이는 내가 그만큼 흥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신음을 흘려내기 시작하자 어떤 확신이 든 듯, 손짓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남편이 아닌 남자의 성기를 빨면서 사쿠라이는 스스로의 젖은 구멍을 풀고 있었다. 어쩌면 힘겨워보이기까지 하는 자세를 하고서. 내 손은 이제 사쿠라이의 귓구멍까지 부드럽게 훑어내고 있었는데. 말리지 않는 걸 보니 그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건 분명했다.
헤에. 그러고 보니 무릎이 축축했었지. 오메가라는 게 그렇게 편리한 인체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일부러 사쿠라이의 턱에서 내 성기를 빼내고 그의 어깨에 힘을 주어 밀쳤다. 사쿠라이가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내가 그의 오금에 손을 얹자 그는 굳은 듯이 멈추고 말았다.
“유연성이 좀 부족하네.”
“나도 알아...”
내가 습관처럼 콘돔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자 사쿠라이는 짜증난 듯이 다리 사이에 나를 가두고 발뒤꿈치로 내 허리를 가격해서, 나의 상체를 자신 쪽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나도 내 템포가 있는데. 덩달아 나도 짜증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려고 한 순간. 그가 먼저 혀를 내밀어 내 귓불을 삼켰다. 사탕이라도 빨듯이. 한참이나 공들여서 귀를 애무하던 사쿠라이가 떨어져나갔다. 귀가 시뻘개진 게 느껴졌다.
“너어. 변태야.”
“응. 알아.. 그니까 이제 얼른.”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달변가처럼 말하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까 전부터 그는 이렇게 짧은 말뿐이었다. 그거, 오메가의 히트사이클이라는 거, 지능에도 약간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의 사쿠라이에게는 그런 걸 물어도 어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구멍에 내 자지를 가져다댔다. 내가 얼마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마치 약이라도 먹은 여자애처럼 구멍이 한참이나 질척해져 있었다. “원해?” 나의 제일 천사 같은 얼굴.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호시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내 턱에 입을 맞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느릿하게 구멍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전립선이 지근하게 눌리는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의 입에서 탁 터지듯이 신음이 흘렀다. 이젠 나도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처럼. 슬슬 페로몬인지 뭔지의 농간에 신체가 반응해가는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면 내 참을성이 발군인 건지. 나도 사쿠라이와의 상성이 좋지는 않은 건지... 아. 그래. 생각이 쇼트하기 시작한다. 이성이 꼬리를 감춘다.
그 뒤로는 그에게서도 나에게서도 어떤 영양가 있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번식기의 짝짓기하는 짐승. 그것 말고는 더 할 말이 없다. 그의 부드럽고 뜨거운 내벽이 이전에 없던 것처럼 자지를 빨아들이는 이 감각. 절대 느껴본 적 없는 이 느낌. 난 추삽질을 계속하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곳에서 자꾸만 좋은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어. 그곳을 할 수만 있다면 뜯어내버릴 정도로 이를 세우고 핥아내서 침으로 범벅을 만들었다. 내가 그의 쇄골뼈 어드메를 이로 긁을 때마다. 그는 왜인지 모르게 허리를 경직시키고 구멍에 힘을 주었다.
아, 정말 싫다. 나는 웃으면서 사쿠라이의 혀를 빨았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 그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동물적 존재로 느껴지는 바람에. 난 스스로를 저주하고 싶다. 알파라는 게 뭔데? 어쩐지 상대가 누구라도 좋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된다, 하는 생명체로 전락해버린 기분에 사쿠라이의 구멍에 자지를 처박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래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리면 돼. 짝도 아니면서 짝짓기에 열망하고 오메가라는 것 하나에 자지를 세우고 이렇게까지 욕망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해버리면 돼. 사쿠라이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유두를 애무하고 있었다. 나는 괜히 나쁜 마음이 들어서 그 손을 확 붙잡아버릴까 하다가.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 탓에 그에게서 상체를 떼어냈다.
사쿠라이의 앞쪽 성기는 이미 할 수 있는 만큼 다 싸지른 것처럼 한계까지 축축했다. 내 아랫배까지 적시면서. 유두는 한참이나 빳빳해져서 그의 손길로는 도무지 만족이 안 되는 듯했다. 나는 웃으면서 허리를 다시 숙여 사쿠라이의 가슴팍에 혀를 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앗, 아아... 핫, 아아, 읏, 아, 가, 가고 있, 가고 있어,”
“응, 엄청 싸고 있어, 구멍도, 되게 젖었어, 있지, 나, 안에 싸도 돼?”
내가 그의 유두를 핥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사쿠라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물론 그가 허락하지 않았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였지만. 물어본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순종적이었다. 그러자 괜시리 속이 부글부글 뒤집어졌다. 그렇다면 말야.
나에게도 섹스할 때만큼은 이렇게까지 순종적이라면. 남편에겐 얼마나 더 착하게 굴어 주는 거야?
하지만 알고 있다. 나에겐 이런 이기적인 질투심을 가질 권리가 없다. 사쿠라이의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뿐이지. 그 사실이 나에게 정당성을 전혀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알기 때문에 이런 스스로가 너무나도 치졸하게 느껴질 뿐. 난 괜히 화풀이하듯 사쿠라이의 성기를 예고 없이 확 거세게 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허리를 확 굽혀버리며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너, 너...!”
“아, 미안, 뭔가,”
철퍽철퍽, 하는 소리가 난다. 사쿠라이를 옆으로 돌려 두고 나 좋을 대로 쑤셔박고 있으려니 그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난 일부러 모른 척, 그의 오금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고 말았다.
사쿠라이가 지쳐 떨어져나갈 때까지, 섹스했다. 그게 전부. 나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그를 씻겨주려고 했는데, 이만큼 질펀한 성관계가 그의 발정기를 벗어나게 하는 데에 도움이라도 된 건지. 가랑이 사이에서 정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사쿠라이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벌떡 일어나서 나를 욕실에서 쫓아냈다. 나는 비 맞은 개 같은 꼴로 머리가 푹 젖은 채 그가 나올 때까지 방에서 멍하니 서서 기다렸다.
그는 나를 본 척 만 척. 욕실에서 나와서는, 왠지 내가 씻으러 들어가면 그 사이에 훌쩍 돌아가버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쿠라이가 드라이기 전원을 켠 탓에 그 사이에 내가 부른 소리가 묻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겹쳐 쥐고 드라이기 전원을 콱. 꺼 버렸다.
“뭐, 갑자기.”
“차가워, 태도가. 갈 거예요? 머리 다 말리고.”
“응. 더 늦으면 전화 올 것 같아서. 내가 말해 두고 갈 테니까, 너도 다 씻으면 그냥 가도 돼. 미안. 너 핸드폰 내가 어디다 던졌는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렇게 말하고, 사쿠라이는 나를 살짝 내려다보고서는, 일전의 그 선글라스를 내려 썼을 때의 웃음을 지었다. 난 그게 오늘에 와서야 대단히 가식적이라는 느낌을 받고야 말았다. 급격히 기분이 안 좋아졌지만. 티 내는 것도 왠지 웃기다는 생각에 네에네에 대답해버리고는 샤워를 시작했다.
왜 기분이 안 좋아졌을까. 사쿠라이가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을 왠지 기꺼워한다는 느낌에. 그러나 그게 당연하잖아. 그는 유부남이고. 세상에 공표까지 해 버린 만인의 부부인데. 난 그 사이에 끼어든 이물질? 그것도 적당한 표현은 아니다. 둘 사이의 문제를 몰래 해결하기 위한 거니까.
그렇다고 해도 엄밀히는 불륜의 일종에 다다른다. 내가 아무리 그에게서 동의와 합의와 녹취까지 따낸다고 하더라도. 그런 혐오감. 나와 그. 그와 나. 모두에게서 느끼고 마는 불쾌감.
당연하게도 그는 내가 나온 사이에 쏠랑 사라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를 찾아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구겨진 자켓을 털어서 입고. 문 근처에 제멋대로 나뒹구는 벨트를 주워 차고.
나... 지금 먹버당한 건가.
의외로.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사쿠라이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 왔다. 이번에는 야밤에 다짜고짜 전화도 아니고. 월요일 낮. 메일로 정중하게. 그 주 주말, 시간과 장소를 먼저 지정하면서. 나는 마치 비즈니스 미팅 같은 그 메일에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해버렸다. 다시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갑작스럽게 한 개도 알 수 없게 된 이 순간에.
사쿠라이가 알려 준 주소로 가자. 적당히 붐비는 카페가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근처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사쿠라이는 여전히 선글라스. 난 그게 더 눈에 띄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그런 걸 함부로 또 말할 사이는 아니지 싶었다. 왜냐하면. 난 연예인의 생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근처로 다가가자 그는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냥 커피 시켰는데. 못 마시는 건 아니죠?”
“왜요? 못 마시면 다른 거 시켜 주실래요?”
“응? 못 마시면 알아서 시키라는 뜻이었는데. 알아서.”
그러니까 말야. 내가 봐 온 미디어에서의 사쿠라이 쇼는 이렇지 않았는데. 분명 좀 더 착하고 고분고분하고. 다정하고. 지금도, 좀 더 배려해 줄 것 같은데....
난 역시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땐 잘 들어갔어요?”
“그때?”
“응. 저번에. 미안, 갑자기 불러냈어서. 나도 그게 좀. 갑자기... 예상을 못했어서....”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냐.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지만.
사쿠라이는 나를 앞에 앉혀 두고 중얼중얼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와는 일절 관계없는 듯한 얘기들뿐이라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실은 아까 전부터 두통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왜요?”
덩달아 표정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는 나의 표정을 보고, 지뢰라도 밟은 걸까 하는 마음에 지레 겁먹은 듯한 얼굴을 한다. 아냐. 당신 탓은 아냐. 아마도...
“나한테 뭐 했어요? 그날? 나한테? 뭐라도... 뭘... 어떻게.”
사쿠라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래를 푹 숙이고 마는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나의 고간을 움켜쥐었다. 헉. 시발.
뭐하는 거냐면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완력은 아무래도 나보다 강건했다.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봐요... 라고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슬그머니 손을 떼 주었다. 뭐야, 방금!
“자꾸 이러면. 남편이 알아채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쿠라이가 고개를 젓는 게 느껴졌다.
“확신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사랑해요?”
다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랑...”
“말했잖아. 그 사람, 가짜라니까.... 절반은.. 알파라는 거.... 그거, 너만 알고 있는 거야...”
“그 사람도 당신, 사랑해요?”
난 두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한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사쿠라이가 웃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사랑해 줄게요. 알 수 있게. 의심도 못하고, 확실하게... 네? 나랑 각인해요. 나랑. 그 사람이랑 맞지 않는 거, 나는 다 알아요. 나한테는 알 수 있어요. 그때도 다 얘기했잖아요.”
어디 칼이라도 찔린 것처럼. 말이 자꾸만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섹스한 적은 있다. 이시카와랑. 이시카와는 사쿠라이의 페로몬에 발정한다. 그러나 사쿠라이에겐 그 페로몬이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진다는 걸... 니노미야는 알 수 있는 거다. 그걸 알 수 있고. 알고. 노리고 말았던 거다. 지금껏.
기자회견 같은 건, 왜 해 버렸어......
“결혼을 물러요...”
“그런 건 할 수 없어...”
“왜요... 그 사람 사랑해서?”
“유치해... 결혼은 사랑하기만 해서 성립되는 게 아냐... 잘 모르는구나.”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의 뒷덜미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치 어린애를 달래듯.
“당신은 잘 알아요? 사랑이라든가 결혼이라든가.”
“니노미야군. 발정은 사랑하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 결혼도 마찬가지야. 내 직업은 배우고. 게다가 아역 출신인걸. 나, 일평생을 연기하면서 살아왔어.”
“그럼. 나도 사랑한다고는 못 하겠어요. 사랑인지 모르겠으니까. 그치만 엄청 욕정하는걸. 처음 만났을 때도. 테레비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밤을 새워서 다 봤어요. 출연작. 유명한 거. 그렇지 않은 것. 아역으로 나온 것. 단역. 카메오... 다... 볼 때마다 반찬삼아서 자위했어요. 화면 넘어서도 느껴지잖아요... 네?”
니노미야는 그런 사쿠라이의 어깨에 기대듯이 안겨서는. 그의 귓가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조금 흘긋대는 듯했지만, 그들에게 들릴 볼륨은 아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배신 못하겠으면 배신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처럼 연기하면 돼요. 잘 속여봐요. 지금처럼요. 그 사람도...”
사쿠라이는 그런 니노미야를 조금 떨어트려놓으려고, 몸을 살짝 움직였지만. 오히려 니노미야는 그와 붙어 있는 사쿠라이의 팔뚝을 세게 움켜쥐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전히 미간이 한참이나 구겨진 채로.
“그럼 나도 속아줄게요. 속은 내가 바보인 걸로 하고. 속아서 꼬셔낸 것도 다 내가 무뢰한이라서 그런 걸로 해요. 그럼 되죠. 내가 나쁜 걸로. 나만 나쁘면 문제 없으니까. 녹취록도 당신한테 유리하잖아요. 여차하면 그렇게, 하면 되니까...”
“그렇게는 안 돼... 어떻게 그래...”
취한 사람처럼 니노미야는 그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을 다 끝내고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꽉 틀어막았다. 사쿠라이에게서 자꾸만 흘러나오는 냄새. 이것 때문에 머리가 이렇게까지 아픈 거야. 니노미야는 방금 전까지 그를 힘껏 붙잡고 있었으면서, 이제는, 그를 팽개치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버림받은 적도 없는데 사쿠라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얼음이 다 녹아서 한참이나 맛을 잃은 아이스 카페라떼를 들이켰다. 니노미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니노미야군... 이건, 나에 대한 고백인지. 나를 차버린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 전혀 알 수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쿠라이는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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